08년 촛불의 확대는 광우병 때문이 아니었다
보수언론과 수꼴들이 자꾸 08년 촛불정국을 '괴담'에 '선동'당한 사람들의 헛짓거리 정도로만 취급하고, 이런 인식이 포탈사이트등을 통해 꽤 광범위하게 퍼져있는데

촛불정국이 심각해진건 광우병 때문이 아니라 경찰의 과잉진압을 비롯한 민주주의 위기론이 생겼기 때문이었습니다.



관련 논문 자료에서 일부 인용하자면


http://academic.naver.com/view.nhn?dir_id=1&unFold=false&sort=0&query=%EA%B4%91%EC%9A%B0%EB%B3%91+%EC%A7%84%EC%95%95&gk_qvt=0&citedSearch=false&field=0&gk_adt=0&qvt=1&doc_id=56396219&page.page=1&ndsCategoryId=110


이를 위해 2008년 촛불집회에서 등장한 운동의 프레임을 크게 ‘먹거리 위기 프레임’, ‘민주주의 위기 프레임’, ‘공공성 위기 프레임’의 세 가지로 개념화하고, 전체 운동의 전개과정 속에서 각각의 프레임이 주류화 되는 양상을 ‘출현’, ‘내용’, ‘조직연계’, ‘과정’의 네 가지 차원에서 분석하였다. 
첫째, ‘먹거리 위기 프레임’은 촛불집회의 초기 국면에 부각된 프레임으로서, 한미 쇠고기 협상의 타결 전후로 형성되기 시작하여 MBC 의 방영 직후 참여자들의 동원을 효과적으로 이끌어냈다. 광우병 위험에 대한 불안감과 먹거리주권의 수호를 그 주요 내용으로 하며, 여러 시민단체들과 인터넷 까페, 야당으로 구성된 ‘광우병 국민대책회의’의 발족과 함께 프레임 연결의 과정을 거친다. 
둘째, ‘민주주의 위기 프레임’은 촛불집회의 확대와 함께 부각된 프레임으로서, 졸속적인 한미 쇠고기 협상 과정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하였다. 이는 정부의 재협상 불가 방침에 분노한 참여자들이 첫 거리시위에 나서고 이를 경찰이 과도하게 진압하면서 전면적으로 부상하는데, 87년 6월항쟁에 대한 회고와 맞물리면서 프레임 증폭의 과정을 거친다.
셋째, ‘공공성 위기 프레임’은 촛불집회의 확장과 더불어 부각된 프레임이다. 근본적으로는 정부의 신자유주의적 정책들에 대한 비판적 인식으로부터 비롯되었으며, KBS 특별감사와 함께 가시화된 정부의 이른바 ‘공영방송 장악’ 움직임에 의해 활성화되었다. 이는 광우병 국민대책회의가 ‘1+5 의제’를 공식적으로 채택함으로써 명확해졌는데, 여기에는 공영방송 사수뿐만 아니라 의료 및 공기업 민영화 반대, 물 사유화 반대, 교육자율화 반대, 대운하 반대 등의 내용이 포함되었다. 이것은 신자유주의에 대한 대중적 문제제기와도 같았다. 이러한 ‘공공성 위기 프레임’은 거리에서의 대국민토론회와 인터넷 공론장을 통해 프레임 확장의 과정을 거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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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회의 초기단계에서 가장 핵심의제는 분명 광우병이 맞았습니다. 확실하지 않은 광우병 위협에 대한 공포가 사회적으로 심했고, 동시에 그 확실하지 않은 위협을 막지 않은 정부에 대한 분노(검역주권 포기)가 시위의 핵심이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다만 당시 집회의 규모는 아무리 커도 1만명을 넘지 않는 규모였습니다. 시위가 한달 내도록 지속되었지만 사회적인 관심도 역시 그 뒤의 시기와는 명백히 차이가 있었습니다

비록 신뢰도에 문제가 있긴 하겠지만 위키백과의 당시 집회 관련 일지에도 기록이 있습니다.http://ko.wikipedia.org/wiki/2008%EB%85%84_%EB%8C%80%ED%95%9C%EB%AF%BC%EA%B5%AD%EC%9D%98_%EC%B4%9B%EB%B6%88_%EC%8B%9C%EC%9C%84#2008.EB.85.84_5.EC.9B.94


저는 개인적으로 이 단계에서는 광우병 의제에 별로 공감하지 않았기 때문에 집회에 나가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제가 집회를 나가게된 계기는 5월말에 있었던 경찰의 과잉진압 이슈가 터지면서부터였습니다. 이 시기 집회의 규모는 1만명 수준에서 5만 이상으로 늘어났습니다. 광우병 이슈에는 소극적으로 반응하던 저같은 사람들이, '민주주의'와 '경찰의 폭력'에는 훨씬 민감하게 반응했기 때문입니다. 
시위대의 규모가 커지고, 경찰에 대한 분노가 커짐과 동시에 시위양상이 과격해지기 시작한것도 이시기부터입니다. 처음부터 유언비어에 낚인 사람들이 과격시위를 벌인게 아닙니다.


시위가 수십만명이 참가할 정도로 규모가 불어난 다음 1+5 의제라는게 채택되고 공영방송 사수, 민영화반대와 4대강 반대같은 이슈들이 광우병 못지 않게 커다란 이슈가 되었습니다. 나온 사람들이 전부 광우병 때메 나온게 아니라 다들 생각이 달랐던 겁니다. 특히 저같은 경우 신방과 학생이었기 때문에 저희과 전체가 공영방송 관련 이슈로 한강 건너서 행진하기도 하고 그랬습니다.


집회가 커지고 사람이 많아지면 어떤 집회를 가더라도 여러가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모이기 마련입니다. 구호도 다양해집니다. 그건 '순수하지 않은' 게 아니라 당연한 현상입니다. 


애초에 순수한 추모를 얘기하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당시 순수하게 광우병이 걱정되어서 갔다는 사람들은 유언비어에 낚인 좀비 취급하고, 광우병 관심없고 민주주의 위기 프레임때문에 광장에 나간 저같은 사람들은 '시위꾼' 취급하실건데 대체 원하는게 뭐냐구요. 그냥 시위 하는거 자체가 싫다고 솔직하게 얘기하시죠?
by Goldmund | 2015/04/21 00:00 | 트랙백 | 덧글(47)
"이만 사랑하는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라" 는 국가의 폭력에 맞서

오늘 광화문에서 경찰이 불법집회 경고방송 해산방송을 하는 와중에 반복했다는 코멘트입니다. 이걸 전해 들었을때 피가 거꾸로 솟더군요.


광화문엔 알다시피 세월호 유족들이 있었습니다
그 유족들은 사랑하는 가족을 세월호에서 잃은 사람들입니다.
사랑하는 가족이 세월호에서 죽어서, 갖은 욕 먹고 고생을 감수해가며 일년째 싸우는 사람들입니다.
국가는 그런 사람들을 범법자로 부르면서 집에 가라고 얘기했습니다.


이게 대한민국이란 국가의 민낯이라 생각하니 침통하기 그지 없습니다.


불법시위, 폭력시위가 문제라고 생각하시는 분들, 많은줄로 압니다.


그런데 묻고 싶습니다. 
불법시위가 왜 불법시위인지 폭력시위가 왜 폭력시위인지를 묻고 싶습니다.


폭력시위는 폭력의 사용으로 인해 공공의 안정과 질서에 문제가 생기기 때문에 폭력시위입니다.
그런데 시위대가 뭐 지나가는 시민들에게 화풀이하고 폭력을 휘두르는게 아니잖아요.
시위대가 뭐 청와대까지 가서 대통령의 권력에 위해를 가할 것도 아니고, 그까짓거 광화문까지 뚫어주면 공공의 안정이 그렇게 어지러워집니까?


시위대가 행진하면, 교통체증 좀 생길 수 있고 시민불편 있을 수 있습니다.
근데 시위대가 행진하기도 전에, 경찰들은 이미 차벽으로 시위대보다 앞서서 광화문 사거리 다 통제하고 있었습니다.


전경버스로 2km짜리 산성을 만들어 시위대는 물론 시민들의 모든 출입을 통제했습니다. 버스로 차벽을 만드는것은 위헌이라고 헌재판결이 몇년전에 났지만, 아랑곳없이 쌩까고 차벽을 만들었습니다. 까놓고말해서 광화문사거리 그런식으로 통제안하고, 도로 절반은 시위대에게 내어주면서 도로 절반은 차들의 통행을 위해 보호한다고 가정할때, 시위대는 그 폴리스라인 적극적으로 침범안합니다. 
전농대회나 노동자궐기대회나 그런거보면 도로 절반 내어주고 행진하도록 다 해줍니다. 관행이니까요. 그래도 길이 좀 밀린다 뿐이지 아무 문제 안생깁니다.


시간적으로 봤을때 교통 불편을 먼저 야기한건 경찰입니다. 불법을 먼저 저지른것도 경찰입니다.


막스 베버는 국가를 '폭력의 정당한 독점체'라고 정의했습니다. 국가가 폭력을 독점해서 질서를 지켜야하니까요. 근데 중요한 것은 그 폭력이 정당해야한다는 것입니다.


정당하지도 못한 국가폭력에 맞서는 시민의 저항은 당연한 시민의 권리입니다. 3.15 부정선고로 만들어진 부정한 정부의 폭력, 유신헌법으로 만들어진 국가의 폭력, 12.12로 만들어진 국가의 폭력. 우리는 그 국가의 정당하지 않은 폭력에 맞서 저항하면서 민주주의를 일궈왔습니다.


물론 작금의 세월호 집회가 4.19나 5.18이나 6.10에 등치할만큼 모두에게 공감받을 의제는 아닐 것입니다. 박근혜 정부의 정당성이 그 정부들만큼 없는 것도 물론 아닙니다.


하지만 적어도 오늘 시위진압에 있어서 먼저 불법을 저지르면서 공공의 안정을 저해한 것은 경찰의 과도한 폴리스라인 설정이었습니다. 시위대 인원보다도 더 많았던 만삼천명의 경찰들이었습니다. 캡사이신 얼굴에 직사하고 물대포 사람한테 직사한 경찰의 진압은 분명 불법진압입니다.


국가의 정당하지 않은 법집행과 폭력에 맞서 '불법'을 저지르는게 그렇게 욕먹어야할 일입니까? 
국가의 정당하지 않은 법집행과 폭력에 맞서 '물리력을 사용'해 저항한게 그렇게 욕먹어야할 일입니까?


시위대의 불법, 시위대의 폭력에만 초점을 맞추시는 많은 분들이
국가의 불법, 국가의 폭력에 대해서 좀더 민감하게, 다시한번 생각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by Goldmund | 2015/04/19 02:12 | 트랙백 | 덧글(29)
단원고 학생들의 '대학 입학 특례'를 바라보는 시선들
http://m.news.naver.com/comment/list.nhn?gno=news214%2C0000452984&sort=likability&aid=0000452984&oid=214&sid1=100&backUrl=%2FtvMainNews.nhn%3Fpage%3D1


반드시 대학입학 특례의 형태여야 했냐하면 의문은 남는다. 이전에도 많은 이들이 지적했듯, 대학 입학특례는 정치권 입장에서 볼때 '가장 싸게 먹히는 보상'이라는 측면이 존재한다. 

하지만 그래서 대학입학 특례가 아니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지를 애써 찾으려고 해도 여기에는 의문이 든다. 정의롭지 않다. 평등하지 않다. 그 이유말고는 떠올릴 것이 없다.
정말 정의롭지 않은지에 대해서는 충분히 생각해볼 여지는 있다. 대학입학에 앞서 사고를 겪는 모든 이들에게 국가가 혜택을 줄 수 있는것은 아니긴 하니까. 세월호가 국가가 배상의 책임을 지는게 옳은가 그른가. 거기에 대해서 의문을 가지는 거라면 차라리 이해하겠다. 


의문이라면 좋다, 그럴수 있다. 하지만 댓글이 보이는 분노는 의문의 레벨을 이미 넘어섰다. 입학 특례에 대한 심리적 반발은 물론 금전적 보상의 액수에 대해서도 태클이 들어가는 판이다. 세월호 유족들에게 이뤄지는 보상이 '무임 승차'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나는 요금을 내고도 이렇게 사는데 너는 왜 요금 외의 혜택을 받느냐. 

무임승차에 대한 거부감. 
재특회의 일본인들이 '재일 조선인의 혜택' '부라쿠민의 혜택'을 얘기하는 모양처럼.
우파는 물론 깨시민들까지 한목소리로 '불법체류자의 지나친 복지혜택'을 얘기하는 것처럼.
묻 남성들이 여성 취업에 대한 유리천장에 대해서 의식하기를 거부하고 '김치녀'를 규탄하는 것처럼


기꺼이 그들 소수자가 되라고 하면, 그러지 못할 사람들이 무임승차를 비난하며 장그래를 코스프레한다. 그들 중 어느 누구도 고졸구직자에 대한 배려를 인정할 요량이 없으면서도, '나를 을로 만드는 것들'을 찾아내어 적대한다.


황망한 기분에 더 이상 무슨 코멘트를 해야할지도 모르겠다. 다만 씁쓸한 마음에 잠이 들지 않아 이런 포스팅을 남겨본다.



덧 - 대학 입학특례가 그렇게 정의롭지 못한가? 이견이 있을수 있다고만 해두어서 헷갈리는 사람이 있을까봐 덧붙인다. 

우선 특례로 인한 역차별이 발생할 여지는 없다. 기사에 언급했듯, 선발은 어디까지나 정원외로 이뤄지기때문에 입시 질서에 어떤 교란도 일으킬 이유가 없다. 혜택자가 적어서 사회혼란이 일어날 일도 없다. 
대학입학특례에 사회적 배려자에 대한 특례가 있듯, 단원고 학생들을 배려해준다고 생각하면 좀 미흡하다 싶긴하지만 특례에 대한 근거가 없는것도 아니다.
그리고 금전적 보상은 성금으로 이뤄진다. 세금이 들어갈 일도 없을 확률이 높다. (아무렴 세수가 부족하신데) 

그렇다면 남는건 왜 민간기업이 낸 사고에 국가가 보상을 해주어야하냐는건데.. 이건 이견은 갈릴수 있다고본다. 하지만 구조과정에서의 과실에 대해 정부도 어느정도 인정을 하고 있기 때문에 보상이 논의되었다는 것이 대전제라는건 짚고 넘어가야한다. 정부는 국민을 보호해야한다는 사회계약론적 관점에서 정부 스스로가 보상하는것이 옳다고 결정했다. 그 결정을 만든것은 세월호 유가족이 아니라 여론이었고.
by Goldmund | 2015/01/07 03:42 | 트랙백 | 덧글(79)
<국제시장>을 세대론의 논리로 읽는 가운데 잊혀지는 것들

요새 하도 세대간 착취와 갈등에 대한 말이 많다보니, 나도 여기 매몰되어 있다보니 잠시 잊고 있었던게 있는데,
대한민국은 2013년 기준 48.1%의 노인빈곤률로 OECD 1위이며 노인자살률도 세계최고인 국가다.

<국제시장>에 대한 세대론적 반감은 이 사실과 결부되어 접근할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 이 반감은 주로 386세대와 그들의 유산을 바탕으로 한 정치적 반감의 측면을 띄었지만, 다른 측면이 필요하다. 사실 이건 세대론적 반감으로 보이지만 계급(계층)론적 반감을 포함하는 문제다.

어떤 노인은 <국제시장>에서 주인공의 대사처럼 '힘든 세월을 우리 자식이 아니라 우리가 겪은게 다행'이라고 말하는 동안, 어떤 노인은 공병과 폐지를 주어서 하루하루를 보내는 것이 고작이다. 
이런 와중에 국가는 그들에게 어떤 보호도 제대로 제공하지 않는다. 대통령은 '싸우다가도 경례를 하는 것이 애국심' 드립이나 치고 있고, 약속했던 20만원도 제대로 주지 않는 판이다.

정작 위로받아야할만큼 힘든 노인들은 (영화감상이라는 나름대로 저렴한) 문화생활을 하기 벅차서 영화를 보지못하는 동안에, <국제시장>을 산업화세대의 건국신화로 재포장하는 나팔소리만이 요란하다. 무엇이 공병줍는 노인과 나팔부는 노인의 차이를 만들었는가.

내 생각에 그 핵심에는 부동산이 있다. 국제시장에서 얼마를 벌어온것보다 중요한건, '부동산시장'에 뛰어들어 내집을 마련하고 자식에게 물려줄 정도의 부를 마련한 이들과 그렇지 못한 이들의 차이에 있다. 월세와 임대료와 아르바이트생을 부려서 받은 이익의 유무에 그 차이가 있다.

세대론은 그 차이를 감추고 있으며, 공병줍는 노인들의 삶을 은폐한다. 단언컨대 대한민국의 어떤 세대론과 어떤 계급론도 부동산의 소유여부를 떼어놓고 논할 수는 없으리라

by Goldmund | 2015/01/01 02:23 | 트랙백 | 덧글(16)
삶에서 영향을 준 책 10개를 꼽으며
 간만에 여유로운 오후를 보내면서 나도 영향을 받은책 10권 목록을 한번 정리해보았다. 사실 누군가 나에게 링크를 넘기지 않을까 살짝 기대했는데 아무도 안넘기더라.. 무슨 책을 읽었는지 다들 관심을 안가질만큼 막 살았구나 싶어서 좀 슬픈 기분이 들었다;;; 근데 정리하고보니 정말 목록도 심심하기 그지 없어서 더 슬퍼졌다.

삼국지 : 아마도 마지막으로 받은 크리스마스 선물로 기억한다. 너무 재밌어서 읽고 또 읽었다. 지금 와서는 좀 이상한 생각도 들지만 당시엔 조조 캐릭터가 너무 멋있기도 했다. 이전부터도 독서를 좋아하긴 했지만, 조금 더 독서 습관이 정착된 것은 이 책의 영향을 뺄 수 없을 것 같다.

나르치스와 골드문트(지와 사랑) : 헤르만 헤세의 책은 이상할 정도로 한국의 성장기 청소년들에게 열심히 읽힌다. 나 역시 예외가 아니어서 당시 그의 소설로부터 깊은 인상을 받았다. 아프락사스의 이야기가 나오는 데미안도 인상적이었지만, 한권을 꼽자면 나르치스와 골드문트다.  아 그리고 인간은 성행위를 해야 한꺼풀을 벗고 진화한다(!)는 생각도 이 책을 보면서 했던것 같다;;; 

로마인이야기 : 세계에서 가장 흥한 동인녀의 역사소설.. 이라는 평도 있지만, 역사를 대중에게 쉽게 읽히게 만든 책으로는 이걸 뺄 수가 없다. 이 책을 보면서 생긴 역사에 대한 관심이 나를 나중에 역사학과 지망생으로 만들기도 했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  중3~고1때쯤이었나 그때는 김진명 소설이 참 재밌었다. 망상하기도 좋았고... 당시 이런책과 데프콘같은 전쟁소설, 환단고기류 유사역사서를 읽으며 유사환빠 겸 강력한 국가주의&민족주의&제국주의자가 되었다. 

당신들의대한민국 : 고3때 역사선생님의 추천으로 읽은 책. 박노자와 홍세화의 책을 계기로 나는 국가관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고, 이전까지의 나에게(그리고 그런 모습을 만들어낸 내 주변의 환경에 대해) 어떤 두려움과 혐오를 가지게 되었다. 모든 것에 대한 의심과 비판은 이 시기의 영향이 굉장히 크다.

전태일평전 : 책을 보며 울었던 것이 몇번 되지는 않았는데, 이 책은 언제 읽어도 눈물이 흐를만큼 사람을 움직이게 만드는 책이다. 대학들어온 직후의 방황기에 좀 더 빨리 읽었다면 좋지 않았을까 싶은데.. 책 읽고 얼마 안되서 군대갔다.. 설명을 적다보니 영향을 받은걸로만 보면 여기에 끼면 안될듯 싶;;
 
벼랑끝에 선 사람들 : 군대 말년에 뭘하지 고민하던 내게 그래도 저널리즘이 이런걸 할 수 있구나 하고 생각하게 만들어준 책 중 하나였다. 그러고보니 이 책도 보면서 울었다.

자본주의 역사강의 : 복학 후 중앙문화 첫 세미나에서 다룬 책. 지금와서 하는 얘기지만 책에서 가장 인상적인건 세계체계론보다는 브로델의 삼층도식이었다. 이걸 읽으며 지적 자극도 꽤 받았었고, 무엇보다도 <중앙문화>에 들어가게 된 계기가 된 책이라는 점에서 소중한 책.

만들어진 현실 : 영향을 받은 책이라기엔 뭔가 좀 애매한 감이 없지않지만, 지역주의라던가 소수자혐오의 문제는 지금까지도 내가 흥미롭게 생각하는 주제다. 그리고 이 주제에 관심을 기울이게된 계기라는 측면에서 이 책과 이 책을 추천해준 친구에게 빚진 바가 크다.

뉴스가 지겨운 기자 : 가장 최근에 읽은 책이다. 대체 내가 저널리스트가 되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현실이 너무도 갑갑하고 절망적인 기분을 느끼게 하면서도, 동시에 위로도 많이 받은 책. 앞으로도 기자를 꿈꾼다면 두고두고 읽으며 공부해야할 것들을 많이금 생각하게 만들어주었다.
by Goldmund | 2014/09/30 16:49 | 트랙백 | 덧글(0)
과연 우리들은 무엇을 '창조'할 수 있을까

-창조경제는 과학기술과 산업이 융합하고, 문화와 산업이 융합하고, 산업간의 벽을 허문 경계선에 창조의 꽃을 피우는 것입니다. 기존의 시장을 단순히 확대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융합의 터전 위에 새로운 시장, 새로운 일자리를 만드는 것입니다

-창조경제는 사람이 핵심입니다. 이제 한 사람의 개인이 국가의 가치를 높이고, 경제를 살려낼 수 있는 시대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의 취임사에서 가장 많이 사용된 단어 중 하나는 '창조경제'였다. 총 7번이나 사용된 창조경제라는 표현을 비롯해 '창조' '새롭다' '만들다'와 같은 일군의 단어들은 취임사에서 두드러질 정도로 사용되었다.


그런데 박근혜가 그렇게 강조하는 창조경제라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실체가 무엇인지조차 모호한 이야기다. 창조경제를 선도하겠다는 장관 내정자도 창조경제가 뭔지 설명을 못하는 형편이다. 창조경제에 대해 지금까지 나온 정책들을 통합해 가장 기초적인 설명을 하자면 결국 ICT산업. 즉 방송과 통신기술에다가 다른 부서들을 협조시켜서 돈좀 벌어보자는 얘기다. 그런데 이 주장을 바로 15년전에 했던 선각자가 하나 있었으니 그게 바로 김대중 대통령이었다. 김대중 정부의 신지식인 육성 얘기랑 창조경제론은 굉장히 많은 부분에서 겹친다. 이미 많은 언론에서도 지적하는 얘기지만, 결국 예전에 김대중 노무현이 했던 IT육성 정책을 말만 바꾼 것에 불과하다. 창조경제란 결국 약파는 소리에 불과한 셈이다.


뭐 그래도 ICT산업을 성공적으로 발전시키면 그럭저럭 성장동력이 될 수는 있을거다. 그런데 여기서 하나 더 핵심적인 부분이 남는다. 과연 창조란 누가 할 것이며, 그 창조의 결과물은 누구에게 돌아갈 것인가의 문제다. 미안하지만 국부와 당신의 행복은 상관없을수 있으니까 말이다.

여기서 굳이 국부가 국민 개개인의 행복 증진에 얼마나 기여하는가를 놓고 벌어져온 유구한 이론적 싸움에 대해서 얘기하고 싶지는 않고, 어쨌거나 창조경제를 하는 사람이 돈을 벌 수 있는건 맞다고 치자. 그런데 그 창조란 도대체 무엇을 통해서 가능할까? 까놓고 말해서 핵심적 질문은 이거다 "우리들은 과연 창조할 역량이 있는가"


한강의 기적을 창조했다 말하는 이들. 예를 들자면 정부를 수립하고 한국전을 지휘하던 사람들의 나이는 몇이었을까? 요즘 전쟁영웅으로 TV에 오르내리는 백선엽씨는 30세에 장군을 달았다. 5.16 쿠데타 당시 핵심이었던 장교들 중 김종필은 36세, 이후락 38세, 차지철 같은 경우 고작 28세에 불과했다. 

장교들과 함께 국가정책의 핵심을 담당했던 미국유학 출신 관료들은 또 어떤가? 김종인씨가 박정희 정권 하에서 의료보험정책을 입안한 나이는 30대였다. 


그리고 산업화 이후 민주화의 시대. 자신들이 민주화를 달성한 덕에 부끄럽지 않은 대한민국을 창조했다고 말하는 이들, 그리고 오늘날 젊은이의 패기없음을 성토하는 사람들은 어떤가? 그들은 IMF 이전 학점을 개차반같이 받고 졸업을 해도 취직이 되던 사람들이다. 80년대 중반~90년대 초반은 대한민국 사상 가장 중산층들이 안정적인 삶을 영위하던 시대였다. 일례로 과외의 페이는 90년대에 이미 오늘날과 별 차이없는 월 30~40만원이었다. 전두환이 사교육시장 억압을 하다가 이게 풀린 이후 사교육시장은 급격히 팽창한다. 현재 사교육시장을 지배하는 큰손들이 386인데(예를 들어 NL의 분파 울산연합의 거두인 김창현씨는 울산의 학원재벌이다) 이건 우연이 아니다. 386은 놀아도 취직이 되던 사람이고, 창업이 망하거나 하는 실패를 겪어도 최소한 사교육시장에 편입되는 방법을 통해 돈을 벌수 있었다는 사실은 매우 핵심적이다.


그리고 하나 더, 생산수단의 소유문제와 함께 이데올로기의 문제가 남는다. 여기서 알튀세르의 얘기를 빌리자면,

모든 사회구성체는 존재하기 위해서 생산을 해야하며, 동시에 그 생산조건들을 재생산하지 않으면 안된다. 생산조건의 재생산은 생산력의 재생산과 생산관계의 재생산으로 나뉘는데 여기서 생산력의 재생산을 위한 핵심이 임금이라면, 생산관계의 재생산을 담당하는 핵심은 바로 이데올로기의 생산이다.

 

한국사회 이데올로기의 주요한 갈등축을 거칠게 요약하자면, 이는 결국 박정희와 함께 한국을 창조한 세대와 그의 자식들인 386의 헤게모니 싸움으로 요약될 수 있다. 

예를 들어 흔히 우리가 말하는 역사교육의 문제를 들여다보자. 2030세대의 다수는 이승만과 박정희가 건국의 영웅으로 추앙되는 것은 역사를 왜곡하는 친일파들의 소행이라 말한다. 그리고 뉴라이트와 같은 이들의 주장을 '비상식'으로 일축한다. 그런데 여기서 역사에 상식과 비상식을 나눈다고 할때, 합의된 상식은 누구에게서 나오는 것인가? 다수에 의해 공유되는 역사란 과연 옳은 것인가?


유감스럽게도 많은 이들에게 있어, 이승만 박정희의 카운터 헤게모니는 고작 김구나 장준하에 머무르는 것이 오늘날 대한민국의 저렴한 역사의식이다. 친일파 청산이 안되서 역사의식이 없다는 식의 맨날 거기서 거기인 이야기들.. 뉴라이트의 주장 중 맞는 부분을 인정하면서도 거기서부터 새롭게 나아가기보다는 뉴라이트를 묻어버리는게 우리의 일차원적 역사관이다. 한국사회에서 역사의식이란 보편적 관점에서의 역사를 합의하려는 시도가 아니다. 그냥 정답을 만들어내고 거기 안맞는걸 도덕으로 거르는 도구에 불과하다.

 

우리 청년세대는 결국 그들의 이데올로기를 대신할 다른 것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다.

386의 이해관계와 우리의 이해관계는 명백히 다르다. 그들은 90년대 중반 절정이었던 한국사회의 경제적 안정속에서이미 내 집을 마련한 사람들이지만, 우리들 청년세대는 앞으로도 영원히 전세와 월세를 떠도는 유랑극단처럼 살아야한다. 김어준같은 인간은 학교를 개같이 다녀도 포스코에 취직이 되고 그걸 박차고 나올수도 있었지만, 지금의 젊은 세대에게 그런 일은 허락되지 않는다. 김어준이 그런 경험을 자랑하며 자신을 하나의 섹시한 롤모델로 제시할때, 청년세대는 그를 비웃지 못한다. 앞으로 다시 오지 않을 시대에 기반한 주장을 우리가 지향해야할 미래로 착각하고 오인한다. 그리고 이 오인이 투표라는 동원으로 연결된다. 노무현이 만든 단일화게임이 그랬고, 안철수 현상 또한 이런 오인을 통해 몸집을 불렸다.


우리 청년들에게는 우리만의 이데올로기가 없다. 철학도 없고 문학도 역사도 없다. 철학이 없으면 창조는 못한다. 생산수단을 소유하지 못하고 그나마의 벌이를 전월세의 형태로 착취당하는 가운데, 카운터 헤게모니조차 없으면 재생산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지금 세대는 부품에 머무른다.

혹자는 이거 보고 너무 암울한게 아니냐고, 싸이같은 케이스도 있는게 아니냐고 반문할지도 모른다. 유감스럽게도 그건 우리에게 보편적으로 주어진 기회가 아니다. 싸이의 성공은 싸이가 강남물을 쳐먹고 강남뽕을 맞아서 가능한거다. 벤처기업은 어떻냐고? 다음과 네이버 창업자인 이해진과 이재웅은 청담동 같은 아파트 살던사이다. 황무지에는 싹이 트지 않는 법이고 창조는 전 세대의 기반을 바탕으로 그 위에서 탄생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오늘날 대중문화의 트렌드를 리드하는 거의 모든 것은 강남에서 나온다. 사실은 세대론에서 말하는 세대라는게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세대론이 아니라 계급론 혹은 계층론에 가까운건 이것 때문이다. 소유한 문화자본의 양적 차이는 쉽사리 메울 수가 없다. 아비투스가 다른데 동일한 세대라고 말할 수 없다. 박근혜 대통령은 싸이의 음악이 창조경제의 훌륭한 표본이라며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지만, 싸이의 성공은 결코 청년세대의 성공도 한국사회의 성공도 될 수 없다. 강남엘리트들의 자유주의 개인주의적 문화가 마침내 글로벌 스탠다드에 근접했다는 신호를 보여줄 뿐이다.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한 3포세대. 청년세대의 현재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표현은 3포세대라는 말일 것이다. 전국평균 합계출산률은 부부 한 쌍당 1.24명에 불과하며, 그 중에서도 서울은 1.02명에 불과하다. 재생산을 위한 기반이 존재하지 않는 사회의 지속은 결국 노동력의 재생산이라는, 사회 유지를 위한 가장 기초적인 재생산조차 불가능한 상황으로 만들어가고 있다.

거기다 이렇게 줄어든 합계출산율은 현재의 청년세대를 더욱 비참하게 만드는 악순환을 낳는다. 장기적으로 10대와 20대 인구수 자체가 절대적으로 감소함에 따라 앞으로는 창업을 해도 젊은 세대의 취향에 맞춰서 소비할 인구가 줄어들 것이고, 비정규직이 확산되면서 개개인의 소비력이 줄어들 것이다. 이런데도 창업을 하고 도전을 하고 창조를 하라고?
망할 놈의 정부가 무책임한데도 정도가 있어야하는거 아닌가 싶은 기분이다.

창조경제론을 들으며 무엇보다도 빡이 오르게 만드는건 창조경제를 통해 양질의 고용이 창출된다는 개소리다. <열정은 어떻게 노동이 되는가>에 나오듯 벤처업계의 노동은 열정이란 이름의 착취에 불과하며, 전문직의 탈을 쓴 불안정노동들로 가득할 뿐이다. 자기들끼리 마지막까지 남은 사업들을 융합하고 또 융합해서 팔아먹고나면 청년들에게 돌아갈 몫은 없다. 80,90년대 미국에서 불었던 IT혁명의 결과 사회적으로 일자리는 창출되지 않았다. 오히려 슈퍼바이저, 즉 중간관리자 계층의 대량해고와 비정규직 고용의 증가라는 노동의 질적 하락이 나타났을 뿐이었다.


여기까지 암울한 얘기를 힘겹게 떠들었다. 그래서 희망이 없다고 말하고 싶은거냐 하면 사실 그러고 싶은게 아니긴 하다. 문제의 해결은 결국 지금 우리가 처한 현실을 오인하지 않고 직시하는 것에서 출발해야한다. 그게 안되면 우리세대는 산업화의 기성세대들과 빌어먹을 386들이 다 은퇴할때까지 기다린다음 빈 껍데기만을 받은다음 연금으로 그들을 먹여살리느라 영원히 고통받을지도 모른다. 그냥 그럴 수도 있겠다는 그런 얘기다.

by Goldmund | 2013/04/23 14:50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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