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의 날 잡문 - 교사의 체벌권에 대한 주절주절
스승의 날 잡문 -

스승의 날이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내가 기억하는 스승들 중에는, 감사를 표할만한 스승들보다, 짜증스런 꼰대선생들이 더 많이 떠오른다. 초등학교때 촌지거부를 이유로 개무시하던 선생부터 고등학교때 공공연히 내 반항정신을 일깨우게 만든 학생주임까지. 좋은 사람도 많지만, 나쁜 사람도 많은건 어느 직업군이나 그렇듯 교직도 마찬가지인듯 싶다.

그래서 그 교직에 있는 사람, 하니까 떠오르는것이 바로 교사의 체벌권이다. 최근 학생인권조례 통과등으로 체벌자체가 금지되고 있는 추세에 대해 말들이 많다. 재밌는 것은, 사람이 사람에게 공공연하게 폭력을 가하고도 옹호받을수 있는 몇안되는 직업군 중 하나가 교사라는 점이다. 

도대체 체벌의 효용이 무엇인가? 
체벌은 타인의 신체적 자유를 심각하게 구속한다. '자유는 타인의 자유를 침해하지않는 범위에서 최대한 누릴수있다'는 자유주의 원칙을 감안하면 체벌이 이 원칙에 걸맞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물론 타학생들의 수업권을 위해 자유를 제한해야할 여러가지 상황이 있을수 있겠지만, 그 상황중에서 체벌이라는 신체적 구속이 가해져야할 상황은 그야말로 예외적이지 않을까?

요새 애들은 패야 제맛이라거나, 때려야 사람되는 놈들이 있다는 말로 체벌을 옹호하는 여론을 볼때마다 불쾌감이 느껴진다. 물론 적절한 체벌을 통해 공공선을 증대시키는 경우가 아예 없지는 않을것이다. 하지만 실제 교육현장에서 그동안 체벌이라는 행위는 관습적으로 이루어졌다는 점은 분명한 사실이다. 
막상 체벌행위를 당한 학생은 단순히 매를 무서워할뿐, 자신의 잘못을 쉽게 고치지 않는다. 고치기 위해서는 체벌이 아닌 다른 방법이 필요하다. 오히려 잘못된 체벌로 인해 반항심이 커지는 경우가 더 많다. 그리고 어떤경우 체벌행위가 아동과 청소년들의 성장과정에 트라우마로 남을수도 있다. 

체벌을 통해 사람되는 케이스보다 체벌을 통해 사람이 망가지는 케이스가 더 많다면 그건 분명 비합리적이지 않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에서 체벌은 합리적으로 용인된다. 그것은 체벌이 가져오는 훈육효과 - 매의 공포로 다스리는 - 때문일 것이다. 마치 군대에서의 각종 갈굼이 올바르지 않지만 용인되는 것과 비슷한 이치랄까.  
체벌을 통한 공공선의 증대 + 체벌이 가져오는 훈육효과 > 체벌로 인해 발생하는 피해라는 착시가 발생하면서 우리는 체벌을 합리적이라고 생각한다. 도구적 합리성이 실질적 합리성을 전복하는 하나의 현상이랄까.

마지막으로 지적하고 싶은 것은, 언론 - 특히 보수언론- 에서 경쟁적으로 체벌의 필요성을 주장하기 위한 사례들을 들고 온다는 점이다. 이는 명백히 학생인권조례를 공격해서 곽노현 교육감을 흔들기 위한 정략적 행위다. 언론은 교사들의 여론을 인용하면서 소위 교육현장의 요청은 체벌을 필요로 한다고 얘기한다. 하지만 교육현장의 목소리 중에, 왜인지 학생들의 목소리는 빠져있다. 몇개의 청소년 인권단체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대표해주지 않는 목소리다. 한국사회에서 10대의 대표성이 대표되지 않는 문제를 단적으로 드러내는 사례가 아닐까 싶다. 

지금까지 내가 체벌을 적나라하게 비판했지만, 난 사실 체벌을 원칙적으로 아예 0으로 만들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이제까지 한국의 학교처럼 학생들을 관성적으로 패왔던 습관으로부터 벗어날 필요는 분명하다고 본다. 
나도 학교를 다니면서 참 많이 맞았지만, 적어도 '말죽거리 잔혹사'에 나오는 잔혹한 폭력을 당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내가 당한 폭력이 지금까지도 불쾌함으로 남은 경우가 몇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내 아이들이 다니게될 학교는 학생의 목소리를 존중하면서 학생사회가 납득할만한 수준의 체벌원칙이 만들어진, 그런 세상의 학교가 되었으면 하는 소망을 피력해본다.
by Goldmund | 2012/05/15 22:42 | 트랙백 | 덧글(0)
Raison de'tre 혹은 알리바이
오늘 공장의 작업은 정말 더럽게 힘들었다. 내가 인간인지 기계인지조차 상관없는 그 곳에서, 저절로 터져나오는 18 소리 한번 낼수없이 묵묵히 일하다가,

나는 도대체 왜 살고 있는 것인가... 생각에 너무 답답해졌다.

Raison de'tre

뭐랄까, 삶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 자신에게 사형을 선고하지 않기 위해서- 일종의 알리바이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세상엔 다양한 사람들이 살고, 그만큼 온갖가지 삶의 알리바이가 존재할 것이다.

근데 그렇다면 내 알리바이는 무엇인가? 
나는 내가 죽어서는 안되는 알리바이를 찾을 수가 없다. 내적으로도, 외적으로도.

스무살에 그런 생각을 처음 했다. 고백하자면 그때부터 나는 언제나 내가 살아봐야 별 의미없는 존재라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겁이 많아서 죽을수가 없었고, 그때 내가 선택했던 알리바이는 가족의 존재였다. 불효하고 싶지 않다는 알리바이. 그렇게 질질 끌려가면서, 5년의 시간을 간신히 버텼다.

그래도 작년 한해는 내게 꽤나 의미있는 한해였다. 군대에서의 끔찍한 시간 이후, 나는 나름대로 내 삶의 알리바이를 찾기위해 노력했다. 복학후의 사회학 공부는 즐거웠고, 교지활동은 보람찼으며, 저널리스트가 되겠다는 구체적인 상도 생겼다. 그리고 연애를 했던 것은 화룡정점이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매일 볼 수 있는 삶은, 외롭지 않아서 좋았다. 나는 드디어, 삶의 알리바이를 찾았다고,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스스로 만들어낸 최초의 알리바이는 무너졌다. 비참하게도 그 것은 내가 과거 선택했던 알리바이의 결과였다. '가족'집단의 이기적 본성은 나의 의지를 무참히 꺾었다. 나는 결국 완전히 지친채로 질질 끌려다니며, 이별해야했고, 휴학해야했다. 그리고 질릴대로 질린 나는 부모와의 절연을 선언하고 홀로서기를 각오했다.

불과 두달전까지만 해도 내 삶의 전부였던 알리바이들은, 이제 내 옆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나에겐, 혼자서 알리바이를 다시 만들어야하는 무거운 숙제가 남았다.

죽음은 두렵다. 하지만 죽음보다 못한 삶을 사는 것은 더더욱 두려운 일이다. 
집행유예는 2년하고 두달 남았다. 

- 조만간 공장은 그만두고, 다른 일을 찾아봐야겠다 -
by Goldmund | 2012/05/14 23:40 | 트랙백 | 덧글(0)
안철수 현상이 신자유주의적이라는 비판 속에서 놓치는 것들
안철수가 정치지도자가 된다면 어떤 리더가 될까?

많은 좌파들은 안철수에 대한 세간의 기대는 비어있는 기표에 대한 지지에 불과하다는 것을 역설한다. 그리고 좀더 나아가서 안철수역시 이명박같은 CEO출신임을 지적하면서 '나쁜 사장님' 대신 '착한 사장님'을 데려오면, 과연 사장님이 노동자들의 이익을 대변해줄 수 있을까? 를 되물으면서 그에 대한 지지를 신자유주의적 현상의 하나로 규정짓기도 한다.

나도 어느정도는 이런 관점에서 안철수를 바라보는 부분이 있었는데, <안철수 밀어서 잠금해제>를 읽다가 생각해본게 안철수와 이명박의 차이는 착한 사장과 나쁜 사장의 차이보다 다른 곳에서 찾는 것이 나을 것 같다. 

이명박은 현대건설의 CEO였고, 안철수는 안철수연구소의 CEO였다. 건설회사CEO 대신 벤처 CEO가 국가의 리더가 된다는건, 소위 산업사회에서 후기산업사회(정보사회)로 넘어간다는 얘기랑도 유사한 부분이 있다고 보인다. 

이명박은 수출주도화와 대기업위주 성장사회의 인물이며, 기본적으로 낙수효과에 의한 경제발전 모델을 지지하던 사람이다. 그리고 안철수는 지속적으로 대기업 위주의 산업구조를 해체하는 경제민주화를 얘기한다. 그는 복지라는 '분배의 평등'에 대해서 말하고 있지는 않지만 '기회의 평등'에 대해서는 강력한 의지를 가지고 실현할 확률이 높다. 

다니엘벨의 후기산업사회론에 따르면 후기산업사회는 이전까지의 산업사회와 단절된 사회이며, 지식과 정보에 기반한 혁신을 통해 만들어진 완전히 새로운 시대이다. 그리고 이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연속론적 입장에서, 후기산업사회 역시 자본주의 생산양식에 새로운 변화를 가져오지 않기 때문에, 산업사회의 연장선에 있으며 오히려 계급문제를 은폐하는 쪽으로 작동한다는 마르크스주의 전통을 충실하게 계승한다. 
좌파적 관점에서 보면 태생부터 자본가인 안철수는 어쩔수 없이 삼명박에 불과하다. 그러나 지금 시점에서 좌파들이 안철수 현상을 '신자유주의적'이라고 비평하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는 의문이다. 자유주의가 property에 기반한다는 것을 비판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거기 대한 대안으로 폭력혁명을 통한 사유재산철폐! 뭐 이렇게 구좌파식으로 대응하는게 현실에 아무런 도움이 안되는 것과 다를것이 없다.

열정노동의 시대, 스스로를 노동자가 아닌 사장님으로 자리매김하고 싶어하는 시대. 이런 시대 속에서 안철수에 대한 지지는 분명 신자유주의적 욕망의 발현일지 모른다. 그러나 안철수의 스탠스 역시 신자유주의로 뭉뚱그리는 것은 현재로서는 무의미한 자위에 불과해보인다. 필요한 것은 합리적 중도가 노동문제와 마주치게 하려는 시도들이다. 안철수현상과 희망버스를 만나게 하는 그런 시도들이 이뤄져야한다는 것은, 너무 뻔하지만, 그만큼 중요한 지적이다.
by Goldmund | 2012/05/06 18:51 | 트랙백 | 덧글(6)
부천으로의 이사, 인간 풍경
흑석동을 떠나 부천.
태어나서 부천에 3일전에 온게 처음인데, 이렇게 갑작스레 이사라는게 우습다.
버려야할 짐들을 버리지 못해, 생각외로 짐이 많다.

고시텔치고는 좁지 않은 방이라 다행스럽다. 뭐 어차피 방안에서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면 길어야 하루 4시간이겠지만서도.
다만 낮에는 몰랐으나 밤이 되니 이 건물 아래층에 성인 마사지 업소가 있는걸 알게되었다. 건물 입구에서 호객행위 하는걸 보니 왠지 마음이 편하지 않다.

잠이 오지 않아서, 오랜만에 TV를 보며 밤늦게 하릴없이 채널을 이리저리 돌려보았다.
이따금 방안이 번쩍거려서 무슨 일인가 했더니, 족히 100M는 떨어진 건물의 모텔 조명이 여기까지 비춰온다. 신경쓰지 않는게 좋다는걸 알면서도 그게 쉽지 않았다.
여기나 저기나 사람들이 살고, 그 사람들의 바깥에 있는 나는 무엇인가 섞이지 못하는 찌꺼기의 느낌이다. 생각해보면, 19살 이후로 언제나 그랬다.

자신이 없다. 인간과 인간의 관계에서 내가 무엇을 해야하는 것인가. 
붙잡고 싶었던 연애는 실패로 귀결되었다. 
생각해보면 난 어디까지나 나의 지속에 대해서 고민해왔을 뿐이다. '관계의 지속'이란 과제를 어찌해야 할까.

비가 오고,
전화벨은 언제나처럼 울리지 않는다. 
그리고 그 것은 내가 내 친구라 불리우는 사람들의 전화벨을 울리게 하지 않기 때문이다.

잘못된 것은 없다. 모든 것이 이치대로 돌아가고 있을뿐. 
잘못되었다고 느낀다면 풍경과 관계를 맺는 시선의 문제일 뿐.
by Goldmund | 2012/04/21 13:17 | 트랙백 | 덧글(2)
4.11 총선 진보신당 지지를 부탁드리는 글
이제 총선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어떤 분들은 이미 부재자투표를 마쳤고, 어떤 분들은 투표가 힘들수도 있고, 어떤 분들은 내일 투표장에 갈까 말까를 아직 고민하고 있으실 겁니다. 그리고 어디를 찍어야할지도 고민하는 분들도 있으실 겁니다. 그 고민 속에서 저도 한마디를 보태고자합니다.

저는 투표가 민주시민의 '의무'니 '개념'이니 하는 말들을 싫어합니다. 
다만 투표가 민주주의 정치에서 '유일하게' 모든 사람에게 형식적 평등이 주어지는 유일한 행위라는 것은 분명합니다. 다른 방식의 수많은 정치참여방식들이 존재하지만, 투표만큼 쉬운 정치의사 표명은 존재하지 않으니까요. 

그러니 당신의 권리를 허공에 날려버리지 않고, 가능한 소중하게 사용했으면 좋겠습니다.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내키신다면 투표장에서 정당 비례명부 투표에서 16번 진보신당을 찍는 사람이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저 역시 어디를 찍어야할까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 고민의 결과는 진보신당이었습니다.

많은 진보정당 지지자 여러분들의 구호처럼, 비정규직 청소노동자 김순자를 국회로! 보내자는 그 꿈같은 희망이 현실이 되기를 원해서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제가 진보신당에 투표하는 이유는 비례대표 당선이 아니라 정당 해산을 막는데 힘을 보태고자 하는 생각 때문이 더 큽니다.
 
현 정당법상 비례대표 투표에서 2%의 지지율을 얻지 못한 정당은 해산되어야합니다.그래서 저는 진보신당이 최소한 2%의 지지율은 얻기를 원합니다. 

물론 많은 분들이 지적하신 것처럼, 진보신당이 한국사회에 왜 존재해야하는지를 생각해보면 불충분한 부분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진보신당이 존재해야할 근거의 상당부분은 지금 통합진보당이나 녹색당, 심지어 민주통합당에 의해서도 채워지고 있는 부분이 있으니까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 진보신당이 존재하는 것이 여러가지 가능성을 제공해줄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민주통합당, 통합진보당만이 반MB를 얘기하면서 우리의 미래를 얘기하는 과정에서 소외될 수 있는 많은 사람들을 대변해줄 수 있는 가능성은 분명 있다고 생각합니다. 

진보신당이 지금 저의 정치적 이해관계를 어떤 방식으로 얼마나 대변해줄 수 있는가에 대한 확신은 없습니다. 다만 현재 존재하는 정당들 그 어떤 것도 저의 이해관계를 잘 대변해주는 정당이라고 보기 힘들어보입니다. 
부자들을 위한 정당 새누리당은 말할 것도 없고, 민주통합당이 그들의 공약으로 내놓은 복지정책들을 시행할 거라고 순진하게 믿는 것 또한 힘듭니다. 그들을 견제할만한 다른 세력이 존재해야할테니까요. 그런데 전 이 부분에 있어서 통합진보당을 신뢰할 수가 없습니다. 통합진보당은 구 민주노동당, 국민참여당, 진보신당 탈당파의 3개 정파가 어디까지나 반MB라는 허구적인 구호를 위해 잠시 뭉쳐있는것에 불과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들 3개 정파가 합의할 수 있는 수준의 정책이란 결국 민주통합당의 그것과 크게 차별화되기 어렵다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또한 구 민주노동당 계열이 이번 총선후보 공천과정에서 저지른 패악질을 감안해볼때 그들이 하나의 정당으로 얼마나 오래갈 수 있을지조차 의심스럽습니다. 
녹색당의 경우, 전 녹색당이 원내 정당으로써 무엇인가를 하는 것보다 의회정치의 바깥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이 더 많으리라는 생각을 합니다.

마지막으로 부탁드리는 것은 사표론에 대한 경계입니다. 
진보정당을 지지하는 분들중, 사표가 될까봐 진보정당을 찍는것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당신이 당신의 정치적 의사를 표명하는 그 순간 한 표의 의미는 절대 '사표'가 될 수는 없습니다. 

특히나 이번 선거에서 진보신당에 대한 한표는 정당의 생존을 결정하는 한표가 될 수 있습니다. 진보신당의 존재가 어떤 종류의 정치적 가능성을 가진다는데 동의하는 분이라면 16번을 선택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by Goldmund | 2012/04/10 01:26 | 트랙백 | 덧글(25)
제주 해군기지 건설 반대론을 보며 아쉬운 점들
제주 해군기지 건설이 뜨거운 이슈다.
트위터 타임라인을 보니 하루종일 강정 이야기가 도배되어서 트위터에 들어가기가 싫어질 정도...가 되서 주변 사람들에게 까일 각오 하고, 내 생각을 조금 정리하고자 블로그에 끄적여본다.

현재 강정 해군기지 건설에 대한 반대론을 간단히 요약하자면

1. 환경,생태주의자들의 입장: 제주 해군기지 건설은 생태계를 심각하게 파괴할 것이다. 
2. 반전주의, 평화주의자들(+반미주의)의 입장: 해군기지 건설은 동북아 군비경쟁의 일환이며, 제주 해군기지는 미국의 이권을 위한 것이다. 
3. 민주적 의사결정의 문제: 다른 이유야 어찌되었든, 일단 당사자인 강정마을 주민들의 대다수가 반대하고 있다. 지역 주민을 설득하지 못한 상태로 공사를 강행하는 것은 적절치 못하다.
4. 군사전략, 외교적인 문제: 제주도 해군기지는 원래의 목적인 '중국과 일본의 해군력을 견제' 하는 수단으로서 적절치 못하다는 반대론

반면, 현재 해군기지건설 찬성론자들은 거의 대부분 5. 현지의 주민들 다수가 반대하고 있는 배경 자체를 모르고 있거나 6. 신성한 국가의 안보를 수호하기 위해서는 강정마을 주민들의 희생쯤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극우적 입장인듯 싶다. 
물론 그 외의 반대의견도 있겠지만 반대론의 대부분이 5,6번이고 그 외의 소수 반대론이 어떤지에 대해서는 솔직히 그닥 관심이 안가는게 사실. 

일단 마음에 안드는 부분은 해군기지 반대론중 4에 근거한 치밀한 반대의견이 매우 소수에 불과해보인다는 점이다. 나 역시 제주 해군기지 건설이 '꼭 필요한 것' 인지' 있으면 좋고 없어도 상관없는' 것인지에 대해서 판단할 정도의 군사적, 외교적 지식이 부재한 상황이라 이에 입각해 정밀한 반대론을 펼치지는 못하겠다. 어쨌거나 분명한 것은 과거 노무현 대통령이 추진하던 대양해군 육성계획이 반절은 아작난 상황에서 전략기지를 건설하는 것은 그다지 적절해 보이지는 못해보인다. 해군기지의 필요성은 어디까지나 해군전력의 강화와 병행되어서 필요한 것이지, 해군기지 단독으로는 큰 의미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군기지 건설이 강행되고 있는 상황은 비논리적으로 보이며, 결국 해군기지가 '미국의 필요'와 관련된 것이 아니냐는 음모론적 제기 역시 어떤 면에서는 타당해 보이기까지 한다. 
아무튼 간에 해군기지 반대론중 국가정책과 군사전략에 입각한 반대론이 부재한 것으로 느껴지는 부분은 매우 아쉽다. 이에 관련해서 오창동씨 https://www.facebook.com/changdong5 페이스북에 참고할 만한 얘기가 많았는데, 극좌적이고 반전주의에 입각한 반대론보다 차라리 밀덕들 얘기가 현실적이라는 비판에 대해서는 십분 공감하는 바이다. 준비되지 않는 평화는 없는 법이니까.

4의 관점이 부재한 대신 그 자리를 채우고 있는 것이 1과 2의 관점이다. 하지만 앞 문단에서 살짝 언급했듯이 실력없는 평화는 없다. 반전과 평화를 위한 노력이 중요하다는 것은 첨언할 필요없는 사실이다. 한국이 해군의 군비경쟁과 전략기지 건설 자체를 전면 포기하는 것이 동북아 평화를 위해 긍정적으로 기능하게 될까? 여기 대해서 나는 회의적인 태도를 가질 수 밖에 없다. 해군력 증강과 전략기지 건설이 중/미/러/일의 이권 다툼에서 한국이 외교적으로 얻어터지는 것을 막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가치를 지닌다는 것은분명하다. 다만 그 가치의 크기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을 수 있다. 이를 완벽하게 논파하지 못한 상황에서 해군기지 건설자체를 전면 부정하는 것은 맹목적인 이데올로기 투쟁에 불과하다. 
한가지 더, 해군기지 건설에 반대하는 반전주의자들의 상당수가 '반미'성향을 지니고 있음은 명백한 사실이다. 민족주의나 반자본주의에 입각해 미국과 관련된 모든 정책에 대해서 반대하는 일부 단체들의 시도에 대해서 난 상당부분 기분이 나쁘다. 왜 한-EU FTA는 별 진통없이 통과되면서 한미 FTA는 그 정도의 반대에 부딪힌 것인가를 복기해보면 더더욱. 
기본적으로 제주 해군기지 건설의 이유는 미군을 위한 것이 아니라 '대양해군' 또는 '전략기동함대'론이었다. 해군기지 건설의 이유를 단순히 미군 때문으로 취급하면서, 대양해군론 자체를 논파하지 못한 평화주의자의 반대론은 극우들의 주장보다도 크게 나을 것이 없는 셈.

그리고 이제 환경주의자들의 관점에 대한 비판. 여기 대한 오창동씨의 의견에 나도 상당부분 동의한다. 문득 떠오르는것이 2018평창동계올림픽에 대한 환경주의자들의 반대여론이다. 동계올림픽 유치는 국토개발의 논리속에서 완벽하게 소외된 강원도민들 다수의 열망이었다. 그러나 환경주의자들은 환경 파괴를 이유로 동계올림픽 유치를 반대했다. 만약 평창동계올림픽 관련한 공사에 대해 환경주의자들이 지금 강정에서 벌이고 있는 것과 비슷한 시위를 한다고 가정해보자. 과연 지역주민들의 여론은 어느쪽으로 향하게 될까?
욕먹을 각오하고 좀더 세게 얘기해본다. 나는 기본적으로 녹색주의 가치관에 그닥 동의하지 않는다. 특히 녹색의 가치가 얘기하는 인간중심주의에 대한 비판에 대해서는 더더욱 동의하기 힘들다. 인간이 인간중심주의를 버리고살아간다는 것은 대단한 역설이다.그 사람의 삶에 대해 존경을 표할만한 일이지만, 자신의 가치관을 남에게 강요하게 된다면 거기서부터는 꼰대정신이 된다. 인간중심의 환경개발이 전지구를 보았을때는 너무도 해를 끼치고 있음은 분명하다. 그러나 대다수의 인간은 자신의 삶을 위해 자연을 이용하는 것을 포기하자는 것은, 인간의 욕망 자체를 최대한 제거하고 살자는 것과 연결되며, 이는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맹목적 이상론에 불과하다.
북미와 서유럽의 환경주의자들이 탄소감축을 결정하고 개발도상국의 무분별한 개발정책을 반대하는 그 순간에도, 세계의 남북 빈부격차는 강화되고 있으며, 선진국의 환경주의자들 한 사람 한 사람은 개도국 사람들의 그것에 비해 훨씬 많은, 최대 수백배까지 차이나는 자원을 소비하고 있다. 환경을 지키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개발의 열매는 자신들이 누리면서, 이를 나누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불편을 강요하는 일이 옳지 않음은 분명하다. 
선진국/개도국의 격차에 대해서 얘기했듯, 한국에서 수도권/지방의 격차는 점점 커져가고 있는 추세다. 만약 지역주민들이 필요로 하는 개발임에도 불구하고 생태주의에 입각해서 해군기지를 맹목적으로 반대한다면 그것은 '안보를 위해서 강정이 희생되어도 상관없다'는 극우파들의 의견과 비교해도 그닥 다를 것이 없다. 강정의 아름다운 풍경이 사라진다면 그것은 아쉬운 일이다. 막고자 노력할 수 있는 문제이긴 하다. 하지만 강정 주민들의 다수가 그것을 원한다면 그 또한 어쩔수 없는 일이 될 수밖에 없다. 

결론적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강정주민들의 이해관계이며, 자기결정권이다. 내가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에 대해 반대하는 이유 또한 그 것이다. 강정 주민들로 시작해서, 제주도지사를 비롯해 많은 도민들이 반대하고 있다. 해군기지 건설이 필요하다면 만드는것 자체를 반대하고싶지는 않다. 하지만 그것이 꼭 강정이어야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지금 이루어져야할 이유는 더더욱 없다. 최소한 지금처럼 지역주민들의 반대가 극심한 상황에서 하는 것은 절대적으로 옳지못한 일이다. 반대여론을 수렴한 다음 민주적으로 의사결정하는 것은 국가정책에 있어서 기본중의 기본이다. 그리고 그 기본을 어기고 있다는 점에서 현 행정부(+전임 행정부)와 국방부는 무슨 욕을 먹어도 할 말이 없다. 혹자의 표현처럼 국민의 군대인 '해군'의 이름이 아까운 '해적'에 다름아닌 것이다. 

강정마을에서 주민들과 한 목소리를 내면서 싸우는 사람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그러나 해군기지 반대가 생태, 평화를 위해 지역주민들의 이해관계를 담보로 해서 감성을 팔아먹는 일부 반대론자들의 의견과 미디어파워 속에 강정사람들이 역으로 소외받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특히나 해군기지 건설을 최초에 추진했던 노무현 행정부에서 한자리씩 해먹었던 유력 정치인들이 지금와서 환경을 보호하자는 얘기하는 꼴은 우습기 짝이 없다. 자신들은 책임으로부터 쏙 빠져나가서 MB OUT을 외치는 황건적 잔당들은 일단 오리발내밀지 말고 자기 잘못부터 반성하고 들어가자.

아무쪼록 강정주민들이 납득할수 있는, 개발의 이익을 지역주민들이 공유하면서도 환경에 지나치게 무리를 주지않는, 그런 결말이 나왔으면 좋겠다. 이를 위해서 정치인들의 역할이 중요한 상황...인데 미디어에서 이슈로 만들면서 굴러가는 꼴을 보니 그닥 기대가 안간다는게 슬프다.
by Goldmund | 2012/03/08 19:13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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