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권이 무너진다고? 웃기고 있네.
학생인권조례 공포 3일이 지난 지금, 교권이 무너진다 뭐 이런 종류의 얘기가 많다.
하지만 나는 지금 교권 추락을 논하는 사람들이 기본적으로 교권의 정의에 대해서 알고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는 인상을 강하게 받곤 한다. 사실 나 역시도 엄밀한 의미에서 '교권'의 의미에 대해 안 것이 얼마 안되었고 말이다. 

네이버 백과사전을 열고 '교권'이란 단어를 검색해보자.

넓은 의미에서의 교권은 교육권을 의미하며, 교육을 할 권리와 함께 교육을 받을 권리를 포괄적으로 의미한다. 
좁은 의미에서 교권은 교사의 교육권이라는 제한적인 의미로 사용되는데, 이중 첫번째 의미는 흔히 교수권이라 불리는 교육내용의 자율성에 대한 논의이며, 두 번째 의미는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에 해당한다.
 
교권에 대한 정의를 엄밀하게 적용하면 지금 언론에서 여론몰이하는 형태의 '교사의 훈육권'은 교권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물론 넓은 의미로 확장시키자면 훈육권 역시 교수권과 함께 논의될 수 있는 문제겠지만 이 경우에도 더 핵심에 해당되는 교수권에 비하면, 훈육권은 부차적인 문제에 불과한 것이다.

다시 말해 오소독스한 의미에서 교권에 대한 논의를 적용하자면, 사람들이 흔히 얘기하는 '교권 추락'이라는 말은 학문적인 개념은 될 수 없다. 오로지 한국이라는 특수한 환경에서 발생하고 있는 '교사의 권위 추락'이라는 한 가지에만 해당할 뿐이다. 아니 더 엄밀하게 말하면 '교실 안에서의 교사 권위 추락'에만 한정되는 이야기에 불과하다. 애시당초 교실 바깥에서 교사의 권리가 한국에서 원활하게 보장되고 있는가 하면, 별로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상당수 교사들은 자신이 가르치고 싶은 내용을 가르칠 수 없다. 입시라는 지상과제를 목전에 두고, 예체능 교사들에게 교수권이란 사치에 불과한 개념이다. 게다가 교직원의 신분상의 권리를 따지자면, 교사들에겐 당장 노조조차 허용되지 않는 것이 한국의 현실이 아니던가!

기본적으로 교권 추락은 학생 인권조례와 상관없이 학교에서의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다. '병영국가' 대한민국에서 학교라는 공간은 학교-병영, 교실-막사, 운동장-연병장의 대칭 위에서 학생들을 권위로 다스리면서 사회에 필요한 부품으로 만들어내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시대의 변화에 따라서 한국사회의 권위주의는 조금씩 해체되어가는 추세에 있고, 권위주의에 의존하는 학교교육이 위기론에 처한 것은 너무도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심심하면 나오는, 군기강이 해이해져서 전투력이 약해진다는 얘기랑 질적으로 같은 얘기다)

지금 교권추락을 논하는 가장 큰 여론이 보수언론들에서 나오고 있으며, 이 여론들은 한국사회에서 권위주의의 해체를 조금이라도 늦추고, 가능하다면 과거와 같은 권위주의적 교육으로 시대를 역행하려 한다.  

하지만 단언컨데! 학생들을 훈육 한답시고 학생의 뺨을 때리고, 그 폭행에 저항한다는 이유로 퇴학시키겠다며 협박하는(7년전, 내가 고등학교때 당했던 일이다) 그런 종류의 권위가 '교권'이라면 그따위 교권은 몇 번이라도 추락시켜야할 일이다. 
지금 '교사의 권위'가 추락한다며 아우성을 치는 많은 보수언론및 교총은 정신차리고 '교권'에 대한 대중의 올바른 이해를 방해하며, 선동하는 짓거리를 멈추고, 제발 '교실밖에서의 교사의 권위'에 대해서나 논의했으면 싶지만... 애초에 기대하면 그게 바보지 뭐. 
by Goldmund | 2012/01/30 23:52 | 트랙백 | 덧글(0)
언론캠프 다녀온 후기(1) - 최악이었던 정연주 전 KBS사장의 강연
1월 27일부터 29일까지 대학언론캠프를 다녀왔다.
전체적으로 캠프의 내용 중 가장 핵심적이었던 것은 사실 대학생 기자들간의 만남과 토론의 과정이었다. 대학언론들 사이의 연대관계 형성이 중요한 과제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실현가능성에 대해 회의적이었던 내게도 새로운 동력이 되었다는 점에서는 매우 유익한 시간이었다. 공자가 얘기했듯이 길을 세 사람이 걸으면 그 중에 반드시 스승이 있다고 했듯. 사람들간의 만남과 interaction속에서 내가 배울 일은 무궁무진한 일이겠지.

어쨌거나 내가 지금 이 포스팅을 하는 것은 언론캠프에서 있었던 하나하나의 사건들을 기록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캠프 도중 있었던 세 개의 강연, 그리고 사람들과의 토론 과정에서 느꼈던 여러 가지 생각들을 정리하기 위함이다. 

먼저 정연주 전 KBS사장의 강연의 주제는 -대한민국에서 언론인으로 산다는 것- 이었다. 강연 자체에 대한 기대치가 크지는 않았지만, 어쨌거나 언론인으로서 현장을 누비면서 있었던 생생한 이야기들과, 언론인이 가져야할 저널리스트로서의 태도에 대한 강연을 기대했다. 그리고 강연의 최초 30분과 질의응답시간 30분 정도는 그런 점에서 유익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강연의 인상은 그렇지 않았기에 실망스러웠다. 
그의 강연 내용중 상당한 분량은 이명박 정권 이후 한국에서 언론자유가 얼만큼 후퇴했느냐에 대한, 너무나도 뻔한 이야기에 할애되었다. 물론 언론자유의 후퇴는 분명한 사실이며 이를 잘 모르는 사람도 있었겠지만, 기본적으로 대학생 기자를 앉혀놓고 이를 얘기하는 것이 얼마나 유의미한 일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이어서 그는 대한민국의 보수 콘크리트 37~38%의 존재를 지적하고, 트위터등 SNS혁명과 함께 세상을 바꾸는것은 20대의 정치참여가 될 거라는 뻔하디 뻔한 스테레오타입의 이야기로 강연을 마쳤다. 적어도 내게 있어서 그의 강연은 너무도 이분법적인 세계관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었고, 어떤 새로운 깨달음도 주지않는 재미없는 강연이었다. 

게다가 더욱 실망스러웠던 것은 정연주사장에게서 느껴진 노인특유의 꼰대기질이었다. 그가 언론인으로서 살아온 세월은 존중받아야하는 시간이겠지만, 그의 20대를 대하는 가치관은 여러가지로 나를 불편하게 했다. 예를 들자면 SNS를 찬양한 동시에 20대는 너무 단문에 익숙해서 안된다. 책좀 읽어라 라는 식의 발언을 하는 것들이었다. 
절정이었던 것은 강연도중 나와 감정 대립을 보여주었던 부분이었다. 강연 도중 나는 두어번의 혼잣말과 두번의 하품(그래도 입은 가렸다), 한번의 문자질을 시전했는데 그 행동들이 어지간히도 불편했던 모양인지 강연도중 나를 지적하면서 "You are annoying me"라는 말을 했다. 한글도 아니고 영어로 이런 표현을 했다는 것은 굉장히 감정적인 반응이라고 밖에 생각되지 않았다. 특히 나를 비난하는 그의 근거는 강연을 듣는 청중들에 대한 '공동체윤리'의 부족이었는데, 사실 청중들은 내 행동에 대해서 아무런 불편함이 없었다. 그가 나에게 문제를 제기하고 싶었다면 그것은 강사에 대한 예의부족 정도가 정당한 죄목이었다. 감정적인 발언을 통해 나를 공동체윤리없는 개인주의자로 매도한 것은 내 입장에선 굉장히 불쾌한 일이었다. 오히려 공동체윤리로 따지자면 자신의 불쾌함을 이겨내고 평정심을 유지하며 강연을 이어나가는 것이 강사로서의 프로페셔널한 태도가 아니었을까? 나는 이런 생각을 제기하고 싶었지만, 괜히 강연의 분위기를 망치고 싶지 않았기때문에 사과하고 한발 물러섰다. 

게다가 정연주씨 강연도중 언론자유 후퇴를 증명하기 위해 인용한 통계자료의 인용 가운데서도 문제가 있었다. 그는 '국경없는 기자회'에서 발표한 언론자유지수 순위를 인용했는데 2004년, 2005년, 2006년, 2008년, 2009년, 2010년의 통계를 제시했다. 2006년 31위에 달하던 언론자유가 2008년 47위, 2009년 69위로 급락했다는 얘기가 그 요지였다. 문제는 이 통계의 제시과정에서 2007년의 순위 -노무현 정부의 기자실 폐쇄 논란과 함께 순위가 39위로 떨어졌고, 이는 조선일보 등의 보수언론을 통해 크게 이슈가 되었다- 가 누락되었다는 점이었다. 나는 질의응답시간에 이 점을 지적하면서 2007년의 수치를 왜 얘기하지 않았음을 지적했고, 그는 실수였다는 답변을 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그의 누락이 정말로 실수였을까? 라는 의심을 풀 수가 없다. 정말 실수라고 하더라도, 아마도 외면하고 싶은 자료를 앞에 두고서 의도치 않은 무의식적 실수를 한 것이 아니었을까? 

아무튼 정연주 전사장의 강연은 누구나 아는 내용들의 동어반복으로 구성된 재미없는 강연이었으며, 나라는 개인의 입장을 전혀 존중하지 않은 최악의 강연이었다. 특히 그는 강연 도중 '원칙적으로는 보수도 존중하는게 당연하다'는 식으로 균형을 잡으려고 애쓰는 모습을 보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보수 37%는 발전적이지 않다'라는 뉘앙스의 애기를 하는등, 이분법적 세계관과 피해자 스탠스는 너무 분명해보였다. 아마도 배임혐의에 대한 무죄판결이 나기까지 법정투쟁을 해왔던 것이 크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by Goldmund | 2012/01/30 22:42 | 트랙백 | 덧글(3)
도덕의 계보학과 한국의 정치, 원한의 정치를 넘어서

 19세기는 거대한 계몽의 시대였다. 18세기에 나타난 계몽주의(enlightenment)는 글자 그대로 기독교의 중세적 세계관을 타파하고, 신의 섭리를 대신해서 인간의 이성을 중심으로 하는 새로운 세계관을 만들었다. 이후 산업혁명과 시민혁명이라는 일련의 과정 속에서 역사의 진보와 계몽에 대한 신화는 사람들의 가슴 속에 깊이 각인되었다. 학문 체계 역시 마찬가지였는데, 계몽의 신화를 바탕으로 설립된 실증주의적 관점은 19세기 대부분의 학문에서 주류를 형성했다. 특히 철학 분야에서 소크라테스적 합리주의와, 데카르트가 말했던 코기토적 주체에 대한 신화는 공고한 것이었다. 19세기 독일에서 주류를 형성했던 헤겔의 철학 또한 이러한 진보와 계몽의 역사관을 바탕으로 형성된 것이었다.

니체는 생전에 ‘망치를 든 철학자’를 자처했다. 니체 철학의 핵심은 사람들의 사고방식에 깊숙이 자리 잡은 신화들을 공격하는 작업이었다. 니체가 보기에 계몽주의를 바탕으로 한 학문체계는 사실 기독교적인 세계관으로부터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한 것이었다. 헤겔 철학은 절대정신이 실현된 체제를 향해 변증법적으로 발전하는 세계를 상정한다. 그런데 이는 사실 ‘신의 뜻’에 따른 종말론적 세계관 대신 ‘이성’의 힘을 중심에 넣은 것에 불과한 것이었다. 말년의 헤겔은 나폴레옹을 찬양하는가 하면, 프로이센을 최선의 정치체제로 찬양하는 등 보수화되었는데, 이런 변화는 사실 계몽주의적 세계관의 한계로 보았을 때 필연에 가까운 것이었다. 니체는 이런 관점에서 헤겔 철학을 ‘튀빙겐 신학’이라고 비판했다.

이런 의미에서 계몽의 신화는 19세기 만의 특별한 사유는 아니다. 기독교적 세계관이 지닌 목적론적 역사 서술은 계몽주의 이전에도 지배적인 사유였다. 그리고 포스트모더니즘을 얘기하는 지금도 실증주의를 기반으로 한 학문체계와 계몽의 신화는 완전히 무너지지 않았다. 니체가 자신의 저작에서 보여주는 일관된 기독교 비판은 이런 의미에서 아직도 현재적이다.

니체는 기독교를 비판하고 절대정신을 비판하기 위해 그만의 계보학적 방법을 사용했다. 계보학은 기존의 역사학이 지닌 보편적인 가치의 중시를 경계한다. 기원이나 목적을 찬미하기 위해 동원된 역사가 아니라, 보편화의 과정에서 휘어지고 상실된 맥락들을 확인하고자 한 것이다. 니체의 방법론을 계승한 푸코는 계보학을 ‘잃어버린 사건들의 해방’이라고 불렀다. 푸코와 들뢰즈 등의 포스트모던 철학자들은 니체의 계보학적 방법을 통해 개별 맥락들을 복원하고 ‘차이’의 중요성을 발견하고자 했던 것이다. 현재의 역사학계가 주목하고 있는 미시역사학, 망탈리테의 역사학 또한 목적론적 역사 서술을 포기하고 사건의 개별 맥락과 우연성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니체의 계보학과 유사하다.

니체가 보기에 보편적 역사관의 핵심은 바로 ‘도덕’이었다. 니체는 도덕을 가리켜 “어리석음, 어리석음, 어리석음, 소심함, 소심함, 소심함이 섞인 잡탕들”이라고 불렀다. 니체가 보기에 도덕은 지나칠 정도의 일반화를 추구하면서 타인에게 선을 요구하는데, 그 근저에는 타자에 대한 공포와 무지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도덕은 결국 무지와 공포를 해결하기 위해 동원된 인위적 조작행위에 불과하며, 인간의 본성에 어긋난다고 그는 주장했다.

니체에 따르면 도덕은 노예도덕과 주인도덕으로 구분되는데, 일반적으로 ‘도덕’이라고 일컬어지는 노예도덕을 만들어내는 것이 ‘원한’이었다. 열등감과 좌절된 복수심이야말로 도덕의 기초라는 것이다. 그리스 시대에는 선악의 개념이 아니라 좋고 나쁨만이 존재했지만, 이를 선악의 개념으로 만들어낸 것은 기독교였다. 기독교적 도덕을 만들어내는 사제의 삶은 생명력이 결여되어 있으며, 특히 전쟁과 같은 상황에서 무력했다. 또한 청빈, 겸손, 순결과 같은 금욕적 이상을 유지하는 사제의 삶은 자기모순일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가장 본래적이어야 할 인간의 삶이 가장 비인간적인 금욕적 이상을 견지하면서 그것을 절대적인 목표 내지는 근거로 삼기 때문이다.

이런 금욕적 관점에서 생긴 원한이 신학과 철학을 만들어내고, 온갖 가치들을 날조하기 때문에 도덕은 결국 노예도덕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 니체의 생각이었다. 이러한 의미에서 ‘원한’이라는 개념은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과도 많은 접점을 가지는 것이다. 프로이트나 라캉이 말하는 ‘무의식’에 따른 욕망의 결핍 또한 일종의 ‘원한’이라고 부를만한 것이다. 실제로 니체의 철학은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에 많은 영향을 끼쳤고, 프로이트는 자신의 학설에 니체의 영향을 최대한 부정하려 노력했다고 한다.

아무튼 19세기 후반 출현한 니체의 계보학과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은 ‘인간 중심’의 사유를 포기하고 거대한 구조를 발견하려 노력했다는 점에서 20세기의 사상사로 연결되는데 중요한 학문적 분기점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의 학문적 성과를 유사 과학 수준으로 격하시키려는 움직임은 항상 있어왔으며, 실증주의 과학철학이 만들어낸 학문적 체계는 아직 주류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특히 한국은 아직도 물질적으로 발전주의 신화가 공고하며, 유교적 가치관이 현실정치로 확산되면서 도덕이 일상을 지배하고 있는 공간이다. 우리가 오늘날 새롭게 니체에 주목하는 것은 바로 이런 의미에서 도덕주의를 극복하기 위한 시도여야 한다.

정치란 무엇인가를 얘기하면서 많은 개념들이 상존한다. 사회과학에서 말하는 정치는 지극히 개인적인 것에서 출발한다. 자신을 둘러싼 사회적 관계들의 변화라는 관점에서, 정치는 자기실현의 도구로 존재한다. 하지만 정치학에서 얘기하는 정치는 다양한 개인들의 상존하는 욕망을 어떤 식으로 보편화시킬 것인가의 문제가 그 핵심에 존재한다. 보편화될 수 없는 욕망들을 보편화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배제가 일어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특히나 한국에서 정치는 자기실현의 수단으로서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 과거 권위주의 체제에 대한 반대는 자신의 실존을 걸었다는 점에서 다분히 자기실현적이었고, 결국 민주화라는 긍정적 결과를 가져왔다. 그러나 현재 한국 정치는 자기실현과 거리가 먼 추상적이고 비도덕적인 것으로 존재한다. 정치인 개개인의 도덕성에 큰 의미를 부여하면서도 정치인 집단 전체에 대해서는 불신으로 일관하는 한국인의 정치관은 다분히 도덕주의적이다. 사람들에게 정치적 행위는 자기실현의 수단으로서 배제되었지만, 자기실현의 수단으로서 정치의 필요는 여전하다. 그래서 이제 사람들은 자신의 ‘원한’을 해결해줄 메시아의 출현을 기다리게 된다. 한국에서 이런 ‘메시아’의 출현은 현재 노무현과 박정희라는 두 대통령에 대한 향수로 표상할 수 있다.

2002년 노무현은 서민들을 위한 새로운 정치에 대한 열망을 바탕으로 대통령이 되었다. 그러나 자신을 대통령으로 만든 사람들의 욕망을 실현하는 대신, 신자유주의를 바탕으로 금융세계화의 전면에 한국을 몰아넣으면서 많은 사람들을 절망하게 만들었다. 그의 정치는 결코 구시대의 정치와 다른 것이 아니었기에 많은 사람들은 실망했다. 그러나 대통령 노무현의 실패와 달리, 인간 노무현은 여전히 성공적이었는데, 임기를 마치고 보여준 인간적이고 서민적인 이미지는 현 이명박 정권의 무능과 겹치면서 노무현에 대한 새로운 평가를 만들었다. 그리고 2009년 5월 노무현은 스스로의 죽음을 통해 시대의 순교자가 되어버리면서 신화를 만들었다. 노무현의 죽음을 접한 대중의 반응이 노무현의 죽음이 타살일 것이라는 음모론으로 나타났다는 점은 원한의 분출이라는 점에서 되짚어볼만 하다.

죽음을 통해 신화가 된 노무현은 이제 노무현 대통령의 정책적 실패와 무능에 대한 망각을 부르는 동시에 ‘노무현’으로 대변되는 많은 가치들에 대한 신화화와 그 신화의 승계로 이어졌다. 지난해 지방선거를 통해 나타난 유시민, 이광재, 안희정 등을 위시로 한 친노 정치인들의 부활은 그만큼 극적이었다. 그리고 이런 의미에서의 노무현 신화는 현재에도 매우 유효하며, 다른 형태로 변주되고 확장되면서 야권에 대한 지지를 뒷받침하는 거대한 이데올로기가 되어 존재한다. 특히 나꼼수가 보여주는 세계관은 이런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나꼼수가 입버릇처럼 말하는 ‘쫄지마 씨팔’이라는 원색적 구호는 ‘가카’라는 적을 상정하면서 대중의 원한을 정치적으로 동원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나꼼수를 듣는 사람들 중 상당수가 친노적 성향을 지니고 있는 것은 나꼼수가 정치적 ‘카타르시스’를 제공해주는 과정에서 억눌린 욕망과 ‘원한’의 해결을 대신해주는 일종의 종교로서 기능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노무현에 대한 욕망의 대칭에는 박정희에 대한 욕망이 존재한다. 물론 이런 욕망의 근저에는 경제성장의 신화가 만들어낸 발전의 신화가 있다. 이명박 대통령의 당선 역시 박정희 신화의 핵심에 존재하는 개발주의와 국가발전에 대한 신화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었다. 발전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효율성’만을 우선적 가치로 상정하는 사람들은 박정희로 대변되는 유능한 경제대통령을 소망한다. 동시에 박정희 대통령 개인 역시 신화적 상징이 되었다. 사실 대한민국의 경제 발전을 이룬 공로는 박정희 대통령 개인에게 돌릴 수 없는 것이지만, 경제발전의 공로를 박정희가 독식하게 된 것이다. 현재 여당의 유력한 대선 후보 박근혜 대표는 이런 의미에서 이상적 대통령 박정희의 신화에 상당부분 기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최근 새롭게 주목받고 있는 안철수 후보에 대한 대중들의 열망 역시 ‘원한’을 바탕으로 설명할 수 있다. ‘스펙 종결자’ 안철수가 자신의 열등감을 해소해줄 메시아가 되어 그들이 기대하고 있는 노무현적 가치와 박정희적 가치를 동시에 실현해줄 것이라는 열망이 존재하는 것이다. 특히 안철수에 대한 지지는 노무현 지지자와 상당부분 공집합을 이루는데, 그들의 열망은 안철수가 얘기하는 탈정치 노선이 맞닿아 있다. 노무현을 죽인 정치논리에 대한 원한을 바탕으로 모든 정치적인 것에 딱지를 갔다 붙이고 가장 정치적인 방식으로 정치를 제거하는 그들의 행위는 한국에서 정당정치에 대한 불신을 심화시키고 있다.

니체는 ‘원한’을 바탕으로 한 노예도덕을 거부하면서 ‘주인도덕’을 답으로 내세웠다. 그는 ‘디오니소스적 욕망’을 발현하는 인간상을 얘기하면서 다원주의를 찬양했지만, 그가 말한 ‘힘에의 의지’라는 개념은 가장 악랄한 방식으로 보편을 지향한 국가사회주의 파시스트들에 의해 악용당하고 말았다는 점은 아이러니하다. 하지만 파시즘은 단순히 20세기 초 일부 국가들에서 나타난 특수한 정치체제이며, 인류 역사의 실수라고만 치부할 수 없다. 실제로 2차 대전에서 가장 대립적이었던 히틀러의 독일과 스탈린의 소련은 많은 면에서 유사한 전체주의적 성향을 보여주었다. 현실 사회주의뿐만 아니라 많은 권위주의 통치체제들이 사실 파시즘과 유사성을 지니고 있기도 하다. 파시즘적 통치는 흔히 생각되는 것과 달리 대중에 대한 억압이 아니라 대중의 동의를 통해 가능하다. 파시즘의 시작은 언제나 투표에서의 승리를 통해서 합법적으로 집권하는 형식을 취했다는 점에서 그 진정한 무서움이 있다. 임지현 교수가 <우리안의 파시즘>에서 지적한 대로 파시즘은 거시적이기에 앞서 미시적인 성격을 지닌다.

노무현과 안철수의 추종자들이 가장 정치적인 방식으로 정당정치를 붕괴시키는 모습은 어딘가 1차 대전 이후 독일과 이탈리아를 닮아있다. 히틀러나 무솔리니로 표방되는 카리스마적 정치인에 대한 기대감과 동일시 현상은 파시즘 출현의 기본조건에 해당한다. 또한 좌파정당이 우경화되거나 정치적 테러의 대상이 되는 것 또한 당시의 독일이나 이탈리아의 특징이었는데, 한국의 경우 민노당의 우경화현상, FTA반대집회에서 진보신당 연설자가 폭행을 당한다던가 ‘다함께’와 같은 일부 좌파 세력이 프락치로 몰리는 등 터부가 확산되고 있는 현상 또한 파시즘이 준동하던 시대와 유사한 부분이 있어 보인다.

정치란 기본적으로 대중의 원한을 해소하기 위해 존재하는 일종의 보편화 작업이다. 그리고 파시즘은 대중의 원한을 가장 극적인 방법으로 동원하면서 자발적으로 해소한다는 점에서 언제나 대중들에게 환영받을 수밖에 없다. 이런 관점에서 정치란 언제나 파시즘으로의 이행 가능성이 상존하는 보편화작업일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정치활동에서 필연적인 보편화작업을 포기할 수는 없다. 혹자는 법과 제도의 민주화가 언제나 상존하는 파시즘이나 전체주의의 출현을 저지하는 훌륭한 수단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파시즘이 출현했던 독일의 바이마르 헌법은 당시의 인류가 고안했던 최상의 법률 체계였다는 점에서, 법과 제도만으로는 충분치 못한 부분이 있음은 명백해 보인다.

그렇다면 ‘원한’의 정치로서의 파시즘을 넘어선 정치는 어떻게 가능할 것인가? 우리는 니체적인 방식에서 다시 해석하는 주인도덕으로서의 정치를 고민해 보아야한다. 그 것은 적어도 카리스마적 정치인에게 정치를 맡기는 방식으로 해결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빌헬름 라이히는 <파시즘의 대중심리>라는 책을 통해 파시즘의 부상을 막기 위해서 “노동하는 인민대중들은 정치가들의 어깨가 아니라 바로 자신들의 어깨로 스스로의 삶에 대한 책임을 짊어져야 한다."고 말한바 있다. 대중들은 노무현과 박정희, 그리고 안철수, 유시민과 박근혜 혹은 이정희나 노회찬 같은 특정 정치인이 상징하는 기호를 소비한다. 그러나 그 기호는 언제나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켜줄 수 없는 오인에 불과하다. 진정한 정치는 정치인들의 이전투구가 아니라, 자신의 욕망을 직접적으로 실현하고자 하는 시도로부터 가능하다. 법과 제도는 바로 이런 의미에서 갈등들을 제도화하는 수단으로서만 의미가 있는 것이다. 억압의 내면화를 넘어서면서 서로의 차이를 인지하고 그 차이들 속에서 보편이 존재함을 사유해야 한다. ‘차이’의 정치 없는 보편적 정치만으로는 파시즘의 도래를 막을 수 없음을 우리는 언제나 인식해야 한다.  

by Goldmund | 2012/01/25 18:46 | 트랙백 | 덧글(6)
시빌리테! 사회적 관계 속에서의 변혁을 선언하며

 2011년 7월 23일, 노르웨이의 수도 오슬로에서 한 테러리스트에 의해 정부청사가 폭파되면서 8명이 사망, 수십 명이 부상당했다. 이어서 노동당 주최 청소년 캠프장에서 일어난 총기난사 사건으로 68명의 청년들이 목숨을 잃었다. 이 두 사건을 일으킨 범인 베링 브레이빅은 자신의 테러를 ‘잔혹했지만 필요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극우 기독교 근본주의자로서 인터뷰를 통해 ‘진보주의와 다원주의로 가장한 마르크스주의가 유럽 기독교 문명을 파괴하고 있다’면서 새로운 십자군 성전에 나서기 전에 문화적 마르크스주의자들을 제거해야한다는 1500페이지의 성명서를 발표했다. 한국에서 이 테러를 접한 많은 언론들은 브레이빅의 게임중독이나 싸이코패스라는 사실에 주목하면서 범죄자 개인의 동기에 초점을 맞추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 테러는 주도면밀하게 준비된 것이었고, 개인의 문제로 환원할 수 없는 사회적 범죄라는 점은 분명하다.

이 사건을 통해 새롭게 주목해야할 것은 바로 다문화주의를 바라보는 유럽인들의 시선 변화다. 몇 년 전 충격을 주었던 프랑스의 국민전선을 비롯해, 다문화주의에 반감을 지닌 극우파 정치세력의 준동은 전 유럽적인 현상이다. 특히 복지 국가의 모델로 유명한 노르웨이, 스웨덴, 덴마크, 핀란드의 북유럽 4개국에서 다문화주의에 대한 반감은 심각한 수준이다. 최근 몇 년간 심각해지고 있는 경제난의 결과로 실업률이 높아지는 상황에서 이민자들이 자신의 일자리를 빼앗고 있으며, 복지 예산의 지출을 늘리고 있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이미 독일이나 프랑스의 경우, 메르켈과 사르코지의 다문화주의 실패 선언과 함께 다문화 정책을 포기하는 추세다.

발리바르는 다문화주의가 붕괴되면서 인종적 배제가 일어나는 오늘날의 유럽에 대해 주목할 만한 진단을 내려준다. 오늘날 확산되고 있는 인종주의는 과거의 생물학적 인종주의와는 다르며, 그렇다고 해서 마르크스주의자들이 말하는 착취의 메커니즘으로 설명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발리바르는 인종주의를 ‘국가의 개입에 의해 중개된 타자와의 관계’로 분석한다. 인종주의의 문제는 어느 특수한 시대의 문제라기보다는 국민사회국가라는 제도 속에 기입된 것에 가깝다는 것이다. 현대의 인종주의는 제도적 인종주의로써, 국민국가를 유지하는 민족주의 이데올로기와 밀접한 연관을 지닌다. 발리바르 이외에도 여러 정치학자들이 지적했듯이, 근대 이후의 국가라는 체계는 국민주체로서의 호명을 바탕으로 유지되는 ‘상상의 공동체’이다. 자유민주주의의 모순적 결합은 기본적으로 국민국가를 바탕으로 가능한 것이었으며, 전쟁 수행을 위한 동원 체제 없이는 만들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포섭의 순간과 배제의 순간은 언제나 동시에 온다. 국민에게 시민권을 준다는 의미는 곧 국민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한 배제를 의미하는 것이다. 국민사회국가가 말하는 자유는 ‘국민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사람들의 부자유’가 된다. 특히 EU의 성립과 함께 유럽공동체를 구상하는 과정에서도 이러한 배제는 어김없이 발견된다. 발리바르는 유럽 시민권의 부여대상 역시 회원국의 국민으로 한정하는 과정에서, 유럽 바깥에서 유입되는 이주민들에 대해서 이중의 배제가 이루어진다는 점을 지적하며 ‘유럽적 아파르트헤이트’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그리고 아파르트헤이트를 넘어서기 위한 대안으로 시민권의 보편화와 시빌리테의 정치를 제시한다.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의 결과, 국민사회국가는 위기에 처했다. 하지만 발리바르는 이런 상황 속에서도 성급하게 포스트 국민정치나 세계시민주의를 주장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한다. 국가의 해체를 강조하는 관점들조차 선진국들이 지닌 민족주의를 전제하기 때문에 EU와 같이 배타적인 공동체의 형성으로 이어지기 쉬우며, 이는 세계적인 남북 격차를 심화시키는 동시에 민주주의를 강화하는데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다. 또한 ‘국가의 종언’을 전제로 한 프롤레탈리아 독재라는 마르크스주의의 기획 역시 낡은 것이라고 선언한다. 프롤레탈리아 독재란 그 자체로 ‘정치의 종언’이라는 결과를 낳기 때문이다.

발리바르의 이런 고민을 보면서 개인적으로도 많이 공감한 부분은 바로 이런 부분이었다. 많은 마르크스주의자들이 국민사회국가의 종언을 얘기하지만 지금의 대중들은 ‘국가’가 존재하지 않는 세상을 상상하지 못한다. 이는 단지 대중들만의 문제도 아니다. 많은 마르크스주의 이론가 및 활동가들이 태어나서 자라온 환경들은 어떠한가? 그들은 국가가 보장해주는 기본적 권리들을 해체한 이후의 세상에서 국가 없는 틀을 사고할 수 있는가? 현실 사회주의 실험을 이끌었던 사람들은 그렇지 못했다. 하지만 그 실패의 책임을 스탈린 개인에게만 돌리는 일, 혹은 문제설정의 틀이 레닌에 의해 혹은 엥겔스에 의해 변형되었음을 주장하는 것은 온당치 못하다. 마르크스 사후 시대는 급속히 변했고, 계급을 중심으로 한 마르크스의 문제설정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마르크스주의의 기획 자체가 가지고 있던 문제점들을 인정해야 한다. 아나키즘을 바탕으로 한 역사적 코뮌들은 언제나 민중의 피를 뿌리며 비극으로 끝나왔다. 결국 강제력을 동원할 수밖에 없었던 코뮌의 기획은 사실상 국민사회국가의 구조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론가 자신조차 상상할 수 없는 포스트-국가의 틀을 대중들에게 설득하고 이를 구현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남은 선택은 국가의 존재를 필연으로 보고, 국민사회국가의 틀이 지니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고, 마르크스적 기획을 실현하는 방법이다.

발리바르는 진정한 정치를 위해 해방, 변혁, 시빌리테의 세 가지 새로운 개념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해방이라는 개념은 정치의 자율성을 의미한다. 1789년의 인권선언에 기초한 모든 인간은 자유롭고 평등하다는 테제가 그 핵심이다. 모든 인간에게 주어진 보편적 권리가 존재하며, 이를 바탕으로 스스로를 실현하는 것이 바로 해방이다. 그러나 프랑스 혁명에서 선언한 ‘해방’은 지극히 한정된 사람들에게만 적용되는 것에 불과했다는 난점이 있다. ‘변혁’은 바로 이런 의미에서 정치의 타율성에 대해 얘기한다. ‘변혁’이라는 개념의 핵심에 있는 것이 바로 구조와 정세이다. 마르크스가 선언한 것처럼 정치 역시 사회적 관계들의 앙상블로서만 존재할 수 있다. 프랑스 혁명 이후의 인류 역사는 인권 선언을 기초로 한 권리들의 확장을 둘러싼 현실적 조건들의 투쟁사라는 점에서 해방과 변혁이라는 개념은 정치를 이해하는 데 있어 가장 기본적이다.

하지만 이 변혁이라는 개념 속에는 언제나 퇴행의 가능성이 상존한다. 시빌리테의 정치는 바로 변혁이라는 이유로 동일성의 정치에서 발생하는 폭력을 해결하기 위한 가능성을 제공해준다. 시빌리테의 정치란 “우리를 포위하고 있는 동일성들의 히스테리와 관련해 우리가 거리를 둘 수 있게 해주는 소통 및 삶의 형식들”을 발전시키고자 하는 고민이다. 이는 “동일성들을 사라지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개인들 및 집단들에게 자기 자신을 동일화하고 탈동일화할 수 있는, 동일성 속에서 이동할 수 있게 해주는 수단들을 부여하는 것”이다. 어느 한쪽을 위해 하나를 포기하는 것이 아닌, 차이 및 평등의 권리와 동시에 연대와 공동체의 권리를 함께 요구하는 것이 그 핵심인 것이다.

그러나 시빌리테의 정치가 제공해주는 가능성은 현실에서 많은 어려움을 지닌다. 특히 공동체 속을 흐르는 동일성의 원리가 극단적 폭력으로 이어지는 한국에서 그 어려움은 이루 말하기 힘들 정도다. 발리바르가 말한 ‘국가 없는 국가주의’라는 표현은 한국 사회를 매우 잘 드러내주고 있다. 발리바르 이론이 지닌 장점은 그의 탁월한 ‘정세분석’에서 나온다. 이런 맥락에서 한국사회 속에서 시빌리테의 정치가 지닌 가능성과 한계를 분석하기 위해서는 유럽의 정세와 한국적 정세가 다른 부분을 고려해야하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한국의 많은 좌파 학자들이 마르크스주의 이론을 도입해오는 과정에서 지나치게 한국적 맥락을 수용하지 않고 유럽의 이론에 매몰되어 있는 것은 아닌가라는 인상을 지니고 있다. 유럽이 얘기하는 탈냉전이라는 시대적 배경을 바탕으로 한 이론적 맥락들은 한국에서는 분명 다른 방식으로 수용되어야 한다. 게다가 한국은 여전히 민족주의의 틀이 강력하게 작동하고 있으며, 인종주의와 면밀하게 결합되어 있다. 게다가 유교 이데올로기에서 출발한 가부장주의 역시 서구보다 강력한 축으로 작동하고 있다. 한국의 진보정당들은 언제나 정당이념으로 계급정치를 그 핵심으로 표방하고 있으나, 계급적 틀에 대한 강조는 다른 갈등 축들을 축소하며, 심지어는 무시해버리는 경우가 잦다.

나는 특히 한국 사회에서 계급갈등 외에도 지역이라는 변수를 무시하는 것은 좌파들의 정치 기획에서 매우 옳지 않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진보 정당들이 자신의 지지층을 결속하는 것은 지방의 일부 공업도시를 제외한다면 언제나 수도권에 한정되었다. 수십 년 동안 한국사회에 지속되어온 호남의 소외 문제에 대해서 언급하는 진보 정치인을 나는 본 적이 없다. 그러나 호남 소외 문제는 명백히 현존하는 소수자들에 대한 박해의 형태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지역주의는 단순히 전근대적인 유물이나 3김이라는 정치세력에 의해 인위적으로 동원된 허상으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 지역주의는 명백히 물질적 토대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계급갈등과 과잉결정된 형태로 출현했으며, 앞으로 수도권과 지방의 대치구도를 통해 더더욱 계급적인 형태로 변화될 가능성이 있다. 수도권 과밀화에 따른 지방 소외는 언제나 희생양을 요구하고, 그 과정에서 지역감정이 새로운 방식으로 변주될 가능성은 상존한다. 계급정치에 대한 마르크스주의적 관점은 반드시 ‘지역’과 같은 많은 갈등 축들에 대한 고민 없이는 한국에서 무의미하다. 결론적으로 한국에서 시빌리테의 개념을 논의하기 위해서는 지역주의, 가부장주의와 같은 다양한 갈등 축들을 어떻게 시빌리테의 개념 속에 수용하고 대중들을 조직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것이다.

다문화 가정을 한국인으로 호명하면서 동일성 원리 안으로 끌어들이는 기획은 이미 유럽에서 실패로 끝났다. 그리고 한국에는 여전히 ‘국민 여러분’은 존재하지만 ‘시민 여러분’은 존재하지 않는다. 시빌리테의 실천은 결국 대중에게 그 가능성이 존재한다. 대중문화의 가능성에 대한 발터 벤야민과 아도르노의 상반된 관점이 생각난다. 언제나 지나친 낙관도, 지나친 비관도 대중을 기호로 소비할 뿐이라는 점에서 명백한 한계가 있다. 중요한 것은 변화하는 정세 속에서 기호로 존재하지 않는 살아 숨쉬는 대중을 잡아내는 것이다. 파시즘이야말로 이런 정세 속에서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는다는 점에서 언제나 그 생명력을 잃지 않아왔다. 특히 운동권이라는 악의 축을 설정하고 두산이라는 상징 속에서 자신을 동일시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폭력들이 아무렇지 않게 용인되는 현재의 중앙대 상황은 이런 점에서 파시즘의 출현을 연상케 하는 부분이 있다.

반파시즘으로서의 시빌리테라는 개념 역시 지나치게 고압적으로 대중을 계몽하는 방식으로는 한계가 분명하다. 시빌리테는 계몽의 폭력성을 배제하는 방식 속에서만 가능하다. 시빌리테라는 개념이 모호한 이론을 넘어서 자연스럽게 생체에 기입되는 형태를 취하지 않는 이상 언제나 파시즘의 기획에 뒤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동일성의 원리가 만들어내는 폭력을 지양하면서도 새로운 의미의 공동체를 만들어내어야 한다. 이 모순되는 과제의 실현이라는 시빌리테의 기획은 결국 풀뿌리 정치에서부터 시작될 것이다. 자신이 속해있는 공동체에 대한 애정이란 상상적 관계가 지닌 많은 가능성 속에서 어떤 방식으로 자신을 변혁해갈 것인가? 그들의 정치가 아닌 나의 정치, 복지국가를 넘어서 ‘권리들에 대한 권리’를 요구하는 자세를 위해서 무엇을 해야할 것인가?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이론을 통해 현실에 개입해 나가는 실천이다.

문제는 결국 나로부터 시작된다. 나는 학창시절 군국주의자나 다름없는 사상을 지녔던 국가주의자였으며, 노무현이라는 기호화된 정치인을 지나치게 신뢰하고 있던 한 사람의 대중이었다. 나이를 먹으며 다수성이 만들어내는 폭력을 직시하게 되면서 공부를 시작하게 되었지만 운동권 친구들이 말하는 ‘계몽’의 방식에 굉장한 불편을 느꼈던 것 또한 사실이었다. 그리고 지금, 학내에서 교지편집활동을 하는 운동권의 한 사람으로서 어떤 공동체를 만들어갈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분명한 것은 나의 변혁과 파시즘적 변혁이 지닌 유사성 속에서조차 가능성을 찾아야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퇴행하지 않기 위한 아슬아슬한 줄타기는 계속되어야한다는 점이다. 여러 이론이 지닌 난해함을 넘어 나의 것으로 소화해내기 위한 깊은 고민의 시간이 필요해 보이는 요즘이다.

by Goldmund | 2012/01/13 19:53 | 트랙백 | 덧글(3)
<감시와 처벌> 인간은 어디까지 자유로울 수 있나?

<감시와 처벌>과 권력의 미시물리학

프랑스의 철학자 루이 알튀세르는 자신만의 독특한 이데올로기론을 전개하면서 국가를 구성하는 장치들을 억압적 국가장치와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의 두 가지로 구분했다. 억압적 국가장치란 군대, 경찰과 같이 가시화된 실체적 폭력을 통해 국민을 통제하는 국가의 성격을 뜻한다. 반면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란 가족,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교육이나 문화, 미디어 등을 통해 개개인을 ‘국민 주체’로 만드는 모든 요소들을 뜻한다. 여기서 한 가지 재밌는 것은 ‘법’에 대한 알튀세르의 해석이다. 알튀세르에 따르면 법원-감옥의 체계는 기본적으로 억압적 국가장치에 속한다. 하지만 법률 체계는 억압적인 동시에 이데올로기로써 개개인에게 작동하는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에 속한다.

국가보안법을 예로 들어보자. 이명박 정권의 집권 이후 3년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약 400여명의 사람들이 기소되었다. 하지만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를 받은 사람들에 대한 기소율은 절반 이하, 그리고 실형을 받는 비율은 겨우 20%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국제엠네스티를 비롯한 많은 인권 단체들이 국가보안법이 표현의 자유를 심각하게 위반하는 법임을 지적하며 폐지를 요구하고 있지만 이는 보수 정치권 및 검찰의 반대로 실현되지 않고 있다. 분단국가의 특성상 국가보안법이 지니고 있는 상징적 안보의 문제 때문에 국가보안법의 폐지는 곤란하다는 것이다. 분명한 것은 국가보안법을 찬성하고, 반대하는 쪽이건 현재 국가보안법이 사실상 범죄자의 처벌을 위한 법률이 아니라는 점에 동의한다는 점이다. 국가보안법은 현재 일종의 상징적 기호로서 작동하고 있는 셈이다.

<감시와 처벌>은 바로 법과 규율이라는 제도화된 폭력이 어떤 상징적 기호가 되어서 우리의 삶을 구속하고 있는가를 다룬 문제적인 작품이다. 푸코는 이 책을 집필하는 과정에서 니체의 <도덕의 계보학>에서 많은 영감을 얻었다고 밝히면서 자신의 연구방법을 계보학적 방법론으로 명명하였다. 계보학은 전통적인 역사학의 틀을 거부하는 일종의 반역사로, 주체가 특정한 목적의식을 가지고 역사를 발전시켜나간다는 전통적인 역사 철학관의 이념을 거부한다. 니체가 그러했듯 이성적 합리성을 바탕으로 한 모더니티의 개념에 의문을 던지며 이를 전복하는 사고방식인 셈이다. 푸코는 이러한 맥락에서 계보학적 비판을 “우리의 현실을 만든 우연성과, 우리의 존재와 행위, 사유를 넘어설 수 있는 가능성을 분리해내는 작업”이라고 정의하기도 했다.

푸코의 지적 작업은 일반적으로 3가지의 단계를 가지고 진행되었다고 평가된다. <광기의 역사>를 시작으로 하는 고고학적 탐구의 시대, <감시와 처벌>을 그 시발점으로 하는 계보학적 탐구의 시대와 주체의 윤리학을 다룬 후기 푸코의 관점이 그 것이다. 그러나 후기 푸코를 제외하고 초기 푸코의 고고학적 방법론과, 68혁명 이후 계보학적 방법론은 하나의 일관된 사유로부터 출발한다고 볼 수 있다. 푸코는 원래 역사학을 전공하면서 아날학파가 제시한 ‘장기지속’이라던가 공간적 사유를 수용하여 그의 고고학적 탐구를 전개했다. 한 시대의 지식과 담론들을 질서지우고 분류하는 것이 내적 법칙이 아니라 인식론적 공간이라는 그의 연구는 근대 이후 ‘역사의 주체로서의 인간’을 과감히 부정한 것이었다.

푸코가 자신의 방법론을 수정하고 계보학을 차용한데는 68혁명과 그 이후 프랑스에서 유행했던 니체 르네상스에 그 이유가 있다. 68혁명은 결과론적으로 실패한 절반의 혁명이라고는 하지만, 그 절반의 의미는 결코 간과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프랑스를 사회, 문화적으로 변화시킨 점에 있어서의 의미는 물론이고, 지성사 측면에서도 푸코를 비롯한 당대 많은 지성들에게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 68혁명과 함께 근대적 ‘주체’의 문제가 제기되면서 후기구조주의와 포스트모던 담론이 유행했던 것이다. 푸코가 68혁명을 계기로 담론에 대한 계보학적 분석에 나선 것 또한 권력이 만들어낸 주체성의 문제를 떼놓고 얘기할 수 없는 것이었다. 푸코는 앞선 단계에서 지식 담론이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를 연구했다. 그런데 지식담론의 형성은 권력의 문제를 떼놓고 생각할 수 없는 것이었다. 푸코는 그의 계보학적 방법을 ‘권력의 미시물리학’에 대한 연구로 명명하면서 권력이 어떤 방식으로 주체를 구성하고, 그 사이에서 힘들의 역학관계가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보고자 시도하였다.


신체의 형벌에서 정신의 형벌로 - 자유롭지 않은 자유의 역설

<감시와 처벌>의 첫 문장은 1757년 프랑스에서 국왕을 시해하려했던 죄수가 어떤 방식으로 죽임을 당했는지를 장황하게 서술하면서 시작한다. 당시의 형벌은 신체를 그 직접적인 처벌 대상으로 삼는 신체형이었다. 신체형은 신민들에게 국왕의 권위를 알리는 일종의 의식과 같은 역할을 수행했다. 하지만 이런 의식에는 부작용도 존재했다. 의식의 진행 과정에서 죄인은 자신의 억울함과 사회에 대한 불만을 표출했고, 대중은 여기에 은근히 공감하면서 죄인을 오히려 영웅으로 만들기도 했다. 이는 18세기 후반 당시 앙시앙 레짐이 극단적으로 치닫는 과정에서 군주제 권력의 권위가 일정 부분 무너진 것과도 연관되는 것이었다.

군주제 권력의 약화와 동시에 국민국가의 개념이 생기는 과정에서 ‘신민’은 ‘시민’이 되었다. 이에 따라 형벌 역시 신민에게 보여주기 위한 형태가 아니라 시민을 훈육하기 위한 형벌로 그 형태를 변화시켰다. 이제 권력이 벌주는 대상은 범죄자의 신체로부터 정신으로 옮겨간다. 감옥살이는 정신개조의 과정으로, 범죄자가 스스로의 죄를 반성하고 사회에 알맞은 인간으로 재탄생되는 것을 그 목적으로 삼았다. 이 과정에서 형벌은 이전의 잔인한 모습을 버리고 보다 인간적인 형태를 취하게 되었다. 그러나 정작 죄인은 이 과정에서 권력이 어떤 의도를 가지고 있는 것인지를 의식하지 못하면서도 권력이 원하는 대로 행동하게 된다. 그리고 대중들은 새로운 권력이 만들어낸 법질서가 예전의 권력보다 훨씬 인간적이며 합리적이라고 믿고 기꺼이 법질서의 유지에 협력하게 된다. 이러한 변화는 시민혁명 이후 사회구성체의 변화를 떼어놓고 설명할 수 없는 것이었다.

여기서 내게 의문이 들었던 점은 근대 이전의 군주제에서 지니고 싶었던 과시하는 신체형이 하는 역할이 과연 현대사회에는 더 이상 필요하지 않았는가의 문제였다. 사실 과시하는 신체형은 절대 왕정의 시대에만 존재했던 것은 아니다. 봉건제 하에서 봉건 영주들 또한 자신의 권위를 과시하기 위해 적의 목을 효시하는 등의 형태의 신체형을 부과하기도 했다. 예수 그리스도가 받았던 십자가형 또한 군주와 결탁한 종교집단이 스스로의 권력을 과시하는 신체형으로 해석해볼 수도 있다. 다시 말해 과시적 신체형은 군주제 권력에 한정되어서만 일어나는 일은 아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었다. 일찍이 공론장의 변화에 대해 서술하면서 과시적 공론장에서 민주적 공론장으로의 변화를 언급한 위르겐 하버마스의 이론 또한, 현대 사회의 왜곡된 과시적 공론장이 재출현하고 있음을 경고하기도 했다. 이런 관점에서 보자면 현대 사회의 권력 또한 가끔은 권력의 과시를 통해 그 기능을 수행하기도 하다. 유신체제 하에서 인혁당 사건등, 수없이 조작된 간첩사건들, 나치즘이나 매카시즘이 만들었던 낙인찍기 행위는 현대 사회에서도 과시적 신체형이 끝나지 않았음을 명백히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국민국가의 탄생 이후 형벌이 점점 인간적인 형태로 변화되어간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형벌의 인간화, 합리화는 이제 다스림의 방법을 인치에서부터 법치로 변화시켰다. 분명 이러한 이행은 권력의 자의성을 줄였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음이 마땅하다. 하지만 민주주의 사회는 인류가 구현했던 수많은 사회들 중 최선이 아닌 차안의 사회에 불과하다는 표현처럼, 법치의 관념 또한 사람들에게는 또 다른 족쇄가 되고 말았다. 18C말부터 19C초 일련의 사법개혁을 관통하는 법철학의 중심에서 19C를 화려하게 수놓았던 계몽주의와 자유주의는 야누스적인 양면성을 지닌 사상이었던 것이다.

현대 사회를 포스트모던의 시대라고 하지만, 아직 모더니티에 대한 믿음은 사라지기는 커녕, 우리들을 강력하게 옭아매고 있다. 자유가 우리를 속박하고 있다니, 이 얼마나 모호한 역설인가!


소비 사회와 법치사회, 기호들이 만들어내는 초과실재

앞에서 자유주의에 의한 부자유에 대해서 간단히 언급했지만 그 이유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나는 장 보들리야르가 정의한 소비사회, 시뮬라시옹의 사회로서의 모습이 이에 대한 설명이 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했다. 보들리야르 또한 푸코와 마찬가지로 프랑스 68혁명의 시대를 살아간 사람이었으며, 모더니티를 비판한 시대의 총아였다는 점에서 두 사람의 학설은 묘한 연결고리를 지닌다. 보들리야르는 소쉬르의 언어학적 개념을 차용해서 모든 사물은 각자 하나의 기호가 되면서, 각자의 의미와 기능을 기호 체계안에서 부여받는다고 보았다. 이러한 보들리야르의 관점은 그가 자신의 학설을 신봉하던 영화 <매트릭스>의 제작자 워쇼스키 형제를 비판한 부분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매트리스에서는 현실과 매트릭스의 구분은 일견 모호해 보이지만 명쾌하다. 매트릭스 속으로 들어간 사람들은 전화를 통해서 매트릭스에서 빠져나와 현실을 마주친다. 그러나 보들리야르에 따르면 ‘실재’는 애시당초 존재하지 않는다. 실재에 가깝게 모방된 파생실재, 초과실재만이 존재할 뿐이라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저서 <소비의 사회>를 통해 당시 서구 사회를 특징짓는 가장 중요한 상징체계로서의 '소비'에 주목하였다. <소비의 사회>는 60년대 프랑스의 일상생활에서 광고와 매스미디어, 에로티시즘, 레저 등이 풍요와 행복을 약속하는 소비 사회의 신화이며, 그 신화 속에서 현대인의 삶은 소외된다고 주장한다. 우리는 물건을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상품으로 기능하는 사회적 이미지, 기호를 소비하고, 생산자는 소비자의 필수품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소비자들의 욕망을 자극하는 상품을 생산하게 된다. 생산이 소비의 논리에 의해서 움직이게 됨에 따라 대중매체는 소비자의 욕망을 불러일으키기 위해서 광고를 통한 기호의 창출에 나선다. 결과적으로 이제 소비자가 원하는 것은 사용가치를 지닌 물건이 아니라 기호 그 자체가 된다. 구성원들이 기호를 욕망하고 기호를 소비하고 있는 새로운 자본주의의 사회가 바로 '소비의 사회'인 것이다. 이러한 소비사회에서 이제 실재와 기호의 구분은 의미가 없다. 기호가 만들어내는 이미지들이 실재보다 중요한 의미를 지니게 된다는 것이 보들리야르가 얘기한 초과실재의 개념이다.

문제는 이런 소비 사회가 개개인의 다양성을 침해하고 인간을 획일화시키는 권력을 그대로 보여준다는 점이다. 길거리를 지나가는 여성들의 핸드백을 보면 1분에 한번 꼴로 루이비통을 볼 수 있고, 학생들은 노스페이스 잠바를 교복처럼 입고 다닌다. 그러나 이런 소비가 만들어내는 몰개성화를 개개인의 책임으로 돌릴 수는 없다. 그 것은 엄연히 권력이 만들어낸 구조화된 폭력이기 때문이다.

보들리야르의 이런 이론은 푸코가 법을 바라보는 관점과도 연결되는 부분이 있다. 현대 사회에서 법은 일종의 기호체계로 작동한다. 법 자체가 지닌 실제적 의미보다도 ‘법치’가 만들어낸 사회구성체의 규율 유지라는 환상이 더욱 커지게 되는 것이다. 사실 법이 존재하지 않더라도 사회에 존재하는 명문화되지 않은 무엇인가에 따라 잘못을 저지른 자들은 그만큼의 대가를 받게 된다. 물론 어떤 사람들은 권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잘못을 저지르고도 대가를 치르지 않는 경우를 위해서 국가가 개입하는 것이 바로 법치의 핵심 개념이다. 그러나 실제의 법치는 과연 정의를 구현하는 것인가 라는 논쟁은 끊임없이 제기되어왔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지강헌의 말은 이런 의미에서 법치의 신화를 정면으로 논박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실제로 법치의 신화는 우리 사회의 대다수 구성원들의 머리에 자리 잡고 있다.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서 가장 먼저 외친 것은 바로 법질서의 확립이었고, 이는 대의라는 측면에서 크게 비판받지 않았다. 이런 관점에서 수많은 집회들은 ‘불법시위’나 ‘폭력시위’의 딱지를 받았고, 노동쟁의들은 ‘귀족노조’들에 의한 투정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이명박이 말한 법질서의 확립은 결국 ‘공익’이라는 가치를 위해서 다원성을 희생하겠다는 혐의를 벗을 수 없는 것이다. 서두에서 제시한 국가보안법이야말로 이런 기호화된 폭력으로서 법이 지니는 의미를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례로 볼 수 있다.

자유주의가 자유를 속박한다는 것은 바로 이런 법치의 신화와 비교해 생각해볼 수 있다. 자유주의라는 담론 역시 법철학의 담론처럼 지식과 권력이 결탁해서 사람들을 권력의 입맛에 맞도록 길들인다는 측면에서 그렇다. 자유주의와 법치사회는 모두 근대 시민국가의 형성과 시점을 맞추어 만들어진 담론들이다. 이 근대 시민국가는 그 구성원들에게 모든 자유를 제공해준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 자유에는 한 가지 조건이 있다. 어느 한 국가의 국민이 되라는 조건이다. 그리고 그 조건으로부터 납세와 국방의 의무를 부여한다.

요약컨대 자유주의가 말하는 자유에는 단 한 가지, 국가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자유가 빠져있는 자유다. 하지만 사회 구성원들은 자유의 공백이 국가권력에서 기인함을 쉽게 느끼면서 살아가기 힘들다. 그리고 자유주의 속에 국가로부터의 자유가 빠져있다고 지적하는 사람들의 주장은, 권력의 입장에서 유쾌하지 못한 일이기 때문에 가능한 한 이 사실을 은폐하려는 노력 속에 묻히곤 한다.

노르웨이 출신의 한국학자 박노자씨는, 한국을 일종의 동원체제를 바탕으로 한 병영국가로 규정한다. 그런데 이 병영국가라는 프레임은 사실 한국만이 지닌 것 이라기보다는 국민국가들이 공통으로 지니는 문제에 가깝다. 국민 국가 속에서 인간 개개인은 납세의 의무를 지니며 사회구성체의 재생산을 위한 노동력, 그리고 유사시 언제라도 전쟁에 징집되어야하는 부속품에 지나지 않게 되는 것이다.


판옵티콘의 사회와 생체권력, 통치성의 문제

<감시와 처벌>은 감옥의 권력이 감옥이 아닌 다른 조직들에서도 비슷한 규율을 통해 사람들을 통제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미 근대 이전부터 규율을 통해 사람들을 통제하는 수도원을 시작으로 군대, 학교, 병원 등은 꽉 짜인 일과를 통해 인간의 정신을 훈육하는 수단으로 이용되는 것이다. 이러한 집단의 규율체계 속에서 주목할 만한 것은 시간과 공간의 분할이다. 시공간의 분할과 규율의 폐쇄성으로 인해 사람들은 점차 개인화되는 과정을 면치 못한다. 그러나 그 개인화는 각자의 개성이나 다양성을 보장해주지 못하는 획일적 개인화이기도 했다. 소위 ‘광기’를 지닌 사람들은 비정상으로 판단되면서 사회로부터 배제되는 것이다.

특히 푸코가 감옥 내에서 작용하는 규율권력에 대해서 설명하면서 끌어온 논의가 바로 ‘판옵티콘’이었다. 판옵티콘은 원래 공리주의의 창시자 제레미 벤담이 얘기한 이상화된 감옥의 모델이었다. 원형의 감옥 형태에서 중앙의 감시탑이 존재하며, 조명을 비추는 행위를 통해 감시자는 죄수들을 볼 수 있지만, 죄수들은 감시자를 알 수 없는 감옥이 바로 판옵티콘이다. 유격훈련에서 조교들은 선글라스를 끼면서 자신의 표정을 감추지만, 훈련병들의 표정을 볼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판옵티콘에서 죄수들은 언제나 감시받고 있다는 압박 때문에 위험행위를 할 수 없고, 감시자는 그만큼 적은 숫자가 효율적으로 일할 수 있다는 것이 판옵티콘의 개념이었다.

그런데 푸코는 판옵티콘을 단순한 감옥의 구조로부터 확장시켜 사회에 존재하는 구조 속에 판옵티콘의 형태가 존재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푸코는 이러한 구조의 대표적인 예로 학교와 병원을 들었다. 생활기록부, 진료기록부등을 통해 개인정보들이 수집된다. 특히 한국의 경우프랑스와 달리 주민등록번호를 통해 국민에 대한 전 방위적 통제가 이루어진다. 게다가 이 주민등록번호는 고객관리라는 명목 하에 기업들에게도 마구 유출된다. 권력은 이런 정보수집의 과정을 통해 힘을 지니고 사람들을 통제하며, 사람들은 이에 종속될 수밖에 없다. 조명 속에서 사실은 감시자가 존재하지 않더라도, 이를 의심하지 못하고 규율에 복종하게 되는 것이다. 푸코는 권력의 이러한 작용을 생체 권력이라는 이름으로 정의했다. 권력은 소유되는 것이 아니라 행사되는 것이라는 푸코의 말은 이런 측면에서 이해될 수 있다.

후기 푸코는 이러한 생체권력의 문제를 더욱 발전시켜서 통치성이라는 개념을 들고 나온다. 사람들은 이제 권력의 존재 앞에서 ‘알아서 기는’ 차원을 넘어서 아주 기쁘고 자발적으로 권력의 유지에 협조하는 주체가 된다. 자신은 자유롭다고 생각하고 행동하는데 사실은 권력의 유지에 기여하고 마는 것이다. 이 통치성의 결과는 호모 이코노미쿠스(경제적 인간)로의 주체화로 나타난다. 김대중 정부의 ‘신지식인’ 프로젝트에서 나타난 벤처기업형, 프로젝트형 인간이야말로 새로운 영웅이 되는 것이다. 창업하여 성공하는 인간이 되는 것이 자기실현이 된다. 자기실현을 위해 열정적으로 자기계발하지 않는 주체는 그 의미를 상실하게 된다. 이런 통치성 속에서 이명박은 프론티어 정신을 지닌 CEO이기 때문에 국가경영에도 우수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믿음 속에서 대통령이 되었다. 그리고 크게 다르지 않은 믿음이 안철수 교수를 기대하는 대중들의 마음속에서 존재한다.

특히 얼마 전에 있었던 중앙대학교의 원탁회의에 대한 반대여론은 바로 이런 통치성이 어떻게 주체들을 구성하는가를 보여주는 사례가 아닐 수 없다. 두산 재단의 통치 아래 학교발전이라는 이데올로기에 매몰된 학생들은, 학교발전에 반대되는 모든 다원적인 주장들을 깎아내리게 된다. 특히 언제나 두산 재단에 대한 비판을 일삼는 운동권 세력은 그들에 의해서 악의 축으로 새롭게 구성되며, 운동권 세력이 하는 어떤 행위도 올바르지 못한 일이 되어 버린다. 그들은 스스로가 자유로운 주체라고 느끼면서, 자신의 권리를 침해하는 운동권 집해에 맞서 플랜카드를 찢어버리거나 피켓을 드는 방식으로 자신의 의견을 표현한다. 하지만

그들이 자유라고 생각한 것은 결과적으로 재단이 지닌 권력을 강화시키는데 협조함을 통해 자신의 자유를 더욱 속박할 뿐인 것이다.


구조안에서의 주체, 해방은 가능할 것인가

구조주의나 포스트모던을 바탕으로 자유주의와 합리성, 모더니티를 비판한 이론가들은 저마다 “그래서 대안이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마주치게 된다. 이성 중심 사유를 극복하고 다원적인 사회를 열기 위한 대안은 도대체 존재하냐는 것이 그 질문의 핵심이다. 특히 보들리야르와 같은 학자들은 아예 이런 대답에 맞서서, 굳이 대안을 내가 얘기할 필요가 없다면서 테러리스트를 자임하는 식으로 대응하기도 했다.

미셸 푸코는 그의 말년에 진행했던 작업을 통해 대안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권력은 분명히 미시적으로 작동하기 때문에 잘 보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권력들은 완벽한 것은 아니다. 권력들은 단순히 일방향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권력들이 서로 힘들의 역학관계에 따라서 충돌한다. ‘저항’이 권력관계들 속에 내재하고 있는 것이다.

마르크스주의 혁명론에 따르면 사회적 구조의 변혁은 조직된 계급운동의 힘을 통해 가능하다. 고전적이고 도식적인 마르크스-레닌주의는 물론이고, 그람시의 카운터 헤게모니론 역시 이런 관점에서 전개되었다. 그러나 푸코에 따르면 저항은 외부를 통해 가능한 것이 아니라 내부를 통해 가능한 것이다. 권력은 사실 위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라 아래로부터 나오는 것이고 그렇기에 권력이 행사되는 바로 그 순간, 저항의 가능성도 존재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그리고 그 구체적 실천론으로서 특수지식인으로서의 저항, 사회적 타자들과의 연대를 통한 무한한 저항을 얘기했다.

나 역시 푸코의 후기 이론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의 이론을 자세히 설명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그러나 그의 이론을 나름대로 해석해보자면, 사실 그가 얘기하는 대안들은 이전에 제시되었던 그람시나 마르쿠제, 알튀세르의 이야기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유사점들이 눈에 띈다. 세밀한 방법론의 측면에서는 차이가 있지만, 커다란 틀에서는 모든 비판이론가들이 한 가지 결론을 보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이런 의미에서 나는 사회를 비판하고자 하는 사람들, 자신을 속박하는 권력의 존재에 대해서 끊임없이 직시하고자 노력하는 모든 사람들은 이미 그 자세만으로도 훌륭한 학자이며, 정치인이며, 혁명가들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인문과학이나 사회과학이 말하는 주체의 자율성은 결국 반쪽 자율성일 수밖에 없다. 자유주의가 반쪽 자유주의인 것처럼 태생적으로 한계가 있는 자율성인 것이다. 문제는 사슬의 양쪽 끝에서 구조의 존재에 너무 얽매여서 주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허무주의에 빠지지 않는 자세가 필요한 것이다. 또한 개인의 주체성만을 지나치게 강조하면서 다원주의의 극한으로 가버리는 것 또한 나는 훌륭한 대안은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결국 그만큼 다양성을 존중하고 균형 잡힌 사고를 해야 한다는 원론적이고 대책 없는 대안밖에 내놓을 수 없다. 물론 권력이 만들어낸 사회 구성체 속에서 우리는 재생산의 문제와 마주치기 때문에 이 대안은 불완전하다. 하지만 마르쿠제가 지적하듯이 생산력의 발전은 그만큼 우리에게 많은 가능성을 제공해준 것만은 사실이다. 구조는 주체들이 빠져도 하나의 거대한 톱니바퀴처럼 굴러간다. 하지만 영원기관은 존재하지 않고, 톱니바퀴는 녹이 슨다. 구조는 언제나 불변의 것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가 가능성을 찾는다면 결국, 마치 비판이론이 끝없이 발전하듯이 주체들도 그 노력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을 통해 가능한 것이 아닐까? 

by Goldmund | 2012/01/04 01:24 | 트랙백 | 덧글(0)
서울시 학생인권조례와 갈등의 제도화에 관하여

1. 서론

2011년 12월 19일, 한국 정치권에 있어 중요한 두 가지 사건이 일어났다. 한 가지는 매우 가시적이고 큰 것이어서 모든 미디어의 집중적 조명을 받았지만, 나머지 하나는 첫 번째 이슈에 묻히면서 그 의미를 과소 평가받고 있다. 첫 번째 이슈는 북한의 최고 통치자였던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망이었고, 두 번째 이슈는 서울시 학생인권조례가 논란에도 불구하고 통과되었다는 점이었다.

물론 앞의 사건에 비하면 서울시 학생인권조례 통과는 큰 의미가 없어 보이는 작은 일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실 김정일 위원장의 죽음은 늦든 빠르든 일어났어야하는 일이었다면, 학생인권조례의 통과는 그 누구도 쉽게 예상하지 못한 과정을 통해서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그 의미를 과소평가할 수 없으며, 장기적으로 급진적 시민운동의 제도적 성취를 위해서 중요한 기원을 이룩한 사례였다.

이 글에서는 E.E 샤츠슈나이더와 최장집의 이론을 바탕으로 갈등의 제도화가 지니는 중요성을 분석한다. 또한 이에 반대되는 급진적 운동론과 대비하면서 양자 간의 모순점과 약점을 지적하며, 서울시 학생인권조례 통과의 사례에서 드러난 갈등의 제도화 사례를 살펴보고자 한다.


2. 갈등의 제도화- 샤츠슈나이더와 최장집의 이론을 중심으로

샤츠슈나이더의 <절반의 인민주권>은 후마니타스 출판사에서 정당론 클래식이라는 이름으로 가장 먼저 번역되었고, 최장집 교수가 직접 추천사를 쓸 만큼 최장집주의 이론체계에서 중요한 책이다. 우선 내게 있어서 강한 흥미를 끌었던 것은 책의 제목이었다. '절반의 주권(Semisovereign)'이라는 수식어는 현실문제로서 민주주의가 가지는 제한적 성격을 강조하고 있다. 1789년의 프랑스혁명 이래로 우리가 ‘신민(subjects)’이 아닌 ‘시민’이 되면서 주권을 얻게 되었다는 것은 역사의 상식이다. 그러나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이 역사적 상식이라는 것이 얼마나 불완전한 것인가를 경험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은 ‘민주주의’라는 개념에 어떤 이상을 투영하는 일을 서슴치 않는다. 특히 2008년 촛불정국의 사례에서 드러나듯, 한국의 많은 진보주의자들에게서 민주주의를 낭만적으로 사고하는 경향은 굉장히 보편적으로 존재한다. 아마도 형식적이고 제도적인 민주주의조차 실현되지 않았던 과거의 경험이 오래 지속되는 과정에서 ‘민주주의’의 쟁취는 사람들의 가슴에 불을 붙이는 단어였을 것이다. 민주주의의 쟁취를 위해 투쟁하는 과정에서 실질적 민주주의가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에 앞서 민주주의에 대한 신성화된 이데올로기가 만들어진 것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는 일이다. 하지만 ‘민주주의’라는 단어는 어떤 이상화된 정치도 내포하고 있지 않다. 우리가 국경을 맞대고 있으며, 지상 최악의 정치를 구현하고 있는 저 곳 역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표방하고 있다는 점은 이를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샤츠슈나이더가 생각하는 민주주의의 중심이 되는 개념은 ‘갈등’과 ‘정당’이다. 일반적으로 ‘갈등’에 대해서 사람들은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샤츠슈나이더에게 있어 갈등을 부정적인 것이 아니라 긍정적인 것이며, 정치를 구성하는 핵심적 역동성이 갈등으로부터 비롯된다고 보았다. 발전된 민주주의의 핵심은 바로 ‘갈등의 제도화’가 이루어질 수 있느냐 아니냐에 따라 갈린다는 것이다.

샤츠슈나이더에 따르면 갈등은 범위, 가시성, 강도, 방향의 네 가지 차원으로 구성된다. 첫 번째 갈등의 범위는, 하나의 갈등 안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관계하는가에 따라서 힘의 균형이 달라지며 결과가 바뀐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가시성으로, 가시성이 높은 이슈가 갈등이 발생할 가능성을 높여준다. 세 번째는 갈등의 강도인데, 보다 격렬한 형태를 띄고 많은 관심을 가지는 갈등일수록 사람들의 관심도 높아진다는 점이다. 네 번째는 갈등의 방향이다. 갈등의 가시성과 강도에 따라 갈등에 연관된 사람들이 서로 다른 분파 정당 계급 등으로 분열되고, 정당의 정치 전략이 결정된다. 각각의 갈등의 차원들은 서로 연관된다. 가시성과 강도가 높은 갈등일수록 그 범위가 넓어지며, 방향도 일정부분 결정하게 된다.

갈등은 이익집단 사이의 이해관계의 충돌로부터 발생하며, 정치 전략은 바로 이 갈등의 차원들에 의해 결정된다. 다수파의 지도자는 특정 방향의 갈등이 만들어내는 균열을 이용한다. 그러나 반대파는 다수파 연합 내에 잠재된 갈등을 불러일으키는 이슈들을 동원하면서 갈등을 대체하는 방식을 선택하게 된다. 기존에 인식되지 않은 갈등이 정당 정치의 공간에서 새롭게 인식되고 주요 의제로 받아들여지는 것이야말로 정치의 역동성의 기원이라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정치 전략의 핵심은 바로 갈등의 치환, 새로운 갈등을 통해 기존 갈등을 대체하는 것이라고 샤츠슈나이더는 주장한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공적 영역에서 갈등의 치환을 가장 효과적으로 사회화할 수 있는 조직은 바로 정당이다. 샤츠슈나이더는 정당이야말로 대의 민주주의 체제에서 ’인민의 동의에 기반한‘ 현실적으로 유일한 정치조직이라고 보면서 ‘정당 없는 민주주의는 없다’고 주장할 만큼 정당 정치를 중시했다. 정당은 유권자의 동원을 위해 갈등을 조직하고 사회화하는 것을 그 핵심으로 하는 반면, 이익집단은 다루는 문제범위가 전국적인 수준에 미치기 어렵고, 조직의 성격 상 경제적인 여유가 있는 이들이 주로 활동할 수밖에 없는 구조이기 때문에 갈등을 사적인 것으로 만드는 것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샤츠슈나이더는, 미국정치의 지배적 패러다임이었던 다원주의를 강하게 비판한다. 이익집단들이 중심이 되는 다원주의적 정치구조에서는 정치의 주요 이슈가 부유층 편향으로 형성된다는 이유에서였다.

샤츠슈나이더는 미국의 낡은 정당들이 갈등을 조직화하는 데 실패했으며, 이는 사람들이 정치체제에 대해 거부하게 만들었으며, 이는 투표율의 저하로 나타난다고 보았다. 요컨대 민주주의에서 중요한 것은 인민들 개개인이 정치적 식견을 가지는 것이 아니묘 제한된 시간과 일상생활 속에서도 평범한 인민들이 정치문제를 쉽게 이해하고, 실질적인 대안을 선택할 수 있게 하는 구조와 제도를 구축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역할은 역시, 정당이 담당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샤츠슈나이더가 내리는 결론이다.

최장집은 샤츠슈나이더의 논의를 한국으로 끌어오면서 한국의 민주주의를 분석한다. 최장집이 보기에 한국 민주주의의 최대 문제는 정당정치가 안정화되지 못하면서, 새로운 갈등을 조직화하는 데 실패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으로 대변되는 두 개의 양당은 모두 보수적인 형태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갈등의 치환이라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 기껏해야 색깔론이나 지역주의를 동원하는 것은 바로 이런 보수 양당 구도에서 기원한다.

특히 최장집은 한국 민주주의를 ‘노동 없는 민주주의’라고 정의하면서 계급문제가 정당의 핵심 의제로 존재하지 않는 점을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사회화되는 갈등의 핵심에는 경제적 불평등이 존재하며, 정당정치는 경제적 불평등을 해소하는 데 기여해야하지만 오히려 사람들을 고통스럽게 만들 뿐이라는 점에서 한국의 정당정치는 왜곡된 형태로 존재한다는 것이 그의 비판이다.

그러나 이에 대한 비판적 의견 역시 적지 않다. 샤츠슈나이더는 부유층에 의해 장악되는 이익집단과 달리, 정당은 보편적인 수준에서의 정치활동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실제로 정당정치를 구성하고 있는 구성원들은 대부분 중산층 이상으로 한정된다. 이는 보수양당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서민들의 정당을 표방하는 진보정당들 역시 공유하고 있는 문제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는 사람들이 과연 정당활동에 관심을 가지고 참여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할 것인가?

게다가 갈등은 과연 정당에 의해서만 조직화될 수 있으며, 치환될 수 있는 것인가에 대해서 역시 많은 반론들이 존재한다. 특히 정당 정치가 올바로 자리 잡았다고 평가받는 서유럽의 경우에도 조직화되지 않은 사람들의 권리가 올바로 보장되고 있는지에 대해서 의문이 남는다. 게다가 정당이 이를 사회화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문제 또한 작지 않다. 올해 여름 노르웨이에서 발생했던 브레이빅의 우토야섬 학살은 조직화되지 않는 갈등들의 문제가 어떤 비극을 낳을 수 있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준 사례였다.


3. 조직화될 수 없는 갈등의 문제와 직접민주주의의 한계

알버트 허쉬만은 갈등의 종류를 크게 두 가지로 구분했다. 하나는 계급과 같이 '(정치로서)나눌 수 있는 갈등'이고, 다른 하나는 종교나 민족, 성소수자 같은 '(정치로서)나눌 수 없는 갈등'이다. 샤츠슈나이더나 최장집이 말하는 안정된 정당정치는 분명히 정치로서 나눌 수 있는 갈등을 제도화하는 데 있어서는 탁월한 분석을 하고 있다. 그러나 정당정치가 해결해줄 수 없는 갈등은 분명히 존재하고, 여기 대해서 최장집주의 이론이 할 수 있는 역할은 분명 공백으로 남는다. 허쉬만은 후자의 갈등 같은 경우 정당정치가 아닌, 운동을 통한 해결이 적절하다고 주장한다.

정당정치가 가지는 한계는 결국, 정당정치는 선거의 승리를 위해 기능한다는 점에 있다. 득표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아무리 사회적 강도가 높은 징후들일지라도 그 고통은 정 당들의 중심의제가 될 수 없는 것이다. 대의 민주주의라는 제도에 요구되는 대표와 합의에 경과되는 시간 속에서 정당 정치의 희생자는 필연적으로 발생한다.

많은 급진민주주의자들은 정당 정치가 가지고 있는 독점적 역할을 해체해야한다고 주장한다. 정당은 민주주의의 독점적 위치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캠페인과 봉기로 인해 인민 스스로가 부담해야할 막대한 사회적 비용의 소모를 막기 위한 잠정적 대안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정당 정치를 넘어서서 인민들이 직접 참여하는 직접민주주의로의 이행 가능성을 긍정적으로 본다.

그러나 다원화되고 복잡화되고 대규모화된 현대사회에서 직접민주주의의 실현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정당의 독점적 지위를 해체하고 다양한 이익집단이 운동을 통해 정치적 액션을 취한다고 하더라도, 그 최종적 결과물은 법과 제도의 형태가 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직접민주주의를 기반으로 한 제도들이 정치적으로 악용되는 사례는 결코 적지 않다. 주민들이 정책결정에 직접 참여하게 한다는 주민투표제도의 취지와 달리, 한국의 주민투표제도는 중앙정부의 결정을 정당화하는 장치로 악용되고 있다. 2005년 최초로 시작된 주민투표제도는 경주시와 포항시, 영덕군, 군산시에서 동시에 치러진 방폐장 부지 선정에 관한 것이었으며. 올해 오세훈 시장의 무상급식 주민투표를 둘러싸고 벌어진 투표거부와 투표독려 운동은 주민투표제도가 양날의 검이라는 점을 확인시켜준 사례였다.

주민투표제도와 함께 가장 대표적인 직접민주주의제도로 꼽히는 주민소환제도 역시 마찬가지다. 주민소환제도 도입 이후 전국에서 45명의 지방자치단체장과 지방의회 의원에 대한 소환 투표가 있었지만 시의원 2명 정도가 의원직을 잃었을 뿐 자치단체장의 주민소환이 이뤄진 사례는 없다. 자치단체장을 대상으로 주민소환제도 투표가 진행되었던 사례인 하남시장, 과천시장에 대한 주민소환의 경우 NIMBY현상을 바탕으로 부동산 가격의 문제 때문에 소환이 이루어진 것이었으며 그 마저도 낮은 투표율 때문에 투표함을 열어보지도 못한 채 예산만을 낭비하고 말았다. 적어도 한국에서 제도적 측면에서의 직접민주주의를 말하는 것은 시기상조이며, 악용의 소지가 많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게다가 직접민주주의 제도가 정착된다고 하더라도, 그 것이 마냥 훌륭한 민주주의로의 연결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직접민주주의를 시행하고 있는 대표적 국가인 스위스는 최근 몇 년 동안 주민투표를 바탕으로 모스크 건설 금지, 부르카 착용 의무화와 같은 반이슬람적이고 인종주의적인 법안이 통과되었다. 아무리 좋은 제도를 만든다 하더라도 그 제도를 운용할 주체인 주민들이 성숙한 의식을 보여주지 않다면, 그 제도는 민주주의의 탈을 쓴 포퓰리즘이나 파시즘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정당정치의 농경성과 운동의 유목성의 결합을 긍정적으로 얘기하는 들뢰즈적 기획은 철학으로서는 훌륭하다. 그러나 들뢰즈 철학의 기초가 되는 니체의 철학이 그 참다운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고 오히려 파시즘적 기획의 이론적 기초로 전락해버린 데서 볼 수 있듯, 철학적 기획을 섣불리 정치의 영역에 접목시키는 것은 위험을 동반한다. 대의민주주의를 대신해 직접민주주의를 만드는 것은, 정당정치가 가지고 있는 문제점을 해결하지 못하고 자칫 동일성의 폭력만을 강화하는 역효과를 가져올 수도 있는 것이다.

제도적 차원에서의 민주주의는 결국 쉐보르스키가 얘기한 것처럼 ‘야당이 선거를 통해 집권할 수 있는 체제’에 불과할 지도 모른다. 중요한 것은 ‘비어있는 기표’로서의 민주주의 안에 무엇을 채워 넣을까의 문제이다. 이 채움의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바로 ‘권리들을 주장할 수 있는 권리’이다. 하버마스가 공론장에 관한 자신의 이론을 통해서 보여주듯,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갈등을 사회화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며, 이 과정에서 정당정치와 급진적 운동은 서로를 배척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공존해야할 수단이 되어야 한다.


4. 서울시 학생인권조례와 갈등의 제도화 사례

서울시 학생인권조례의 원안 통과 과정은 갈등의 제도화 과정에서 급진적 시민운동과 정당정치가 만나는 과정을 보여준 사례였다. 특히 이 과정에서 가장 긍정적이었던 점은, 소수자들의 권리가 무시되지 않고 제도화되었다는 점이었다는 점이었다.

학생인권조례는 지난 8월 20일 9만 7천명의 주민 발의를 통해 제출되었다. 주민 발의는 기본적으로 직접민주주의의 방법에 속한다. 그러나 주민발의는 단순한 ‘의견의 제출’이며 주민소환이나 주민투표제와는 달리 갈등의 제도화 그 자체를 목적으로 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이제까지 서울시에서 조례가 주민발의에 의해 이뤄진 것은 총 3번이었는데 앞의 두 가지 사례인 친환경급식조례와 광장조례의 경우 이익집단에 의해서 그 의견이 모아졌었다. 그러나 학생인권조례 서명 과정에서 가장 돋보였던 것은 이익집단이 아니었다. 서명 단위들 중 가장 컸던 곳인 전교조 서울지부조차 고작 7천명의 서명을 얻어온 게 전부였던 반면, 길거리 서명만 3만이 넘는 등 조직화되지 않은 사람들의 서명이 많았다. 그리고 그 서명들을 모으는 중심에 있었던 것이 청소년 활동가들의 열정이었다.

학생인권조례 운동본부의 구성원 또한 매우 다양하고 다채로웠다. 청소년 인권행동‘아수나로’와 청소년의회 등 청소년단체, 불교와 원불교의 인권위원회, 동성애자인권연대와 ‘친구사이’등 성소수자단체, 전교조를 비롯한 교육단체, ‘공감’과 민변 등의 법률 단체, 인권운동사랑방 등의 인권단체 등 수많은 시민사회단체들에다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사회당까지 연대를 통해서 주민 발의가 가능했던 것이다.

최장집주의자를 자처하는 논객 송준모씨 역시 트위터를 통해 “학생인권조례 통과는 그 자체로도 훌륭한 일이지만, 활동가들의 희생과 노고가 제도화되어 결실을 맺었다는 점 역시 주목되어야 할 것이다. 앞으로 활동가들의 헌신이 제도화된 열정으로 구현될 수 있도록 하는 데에 좋은 참고사례가 될 것이다.”는 의견을 밝히기도 했다. 2004년의 친환경급식조례, 2008년의 광장 조례가 모두 제정에 실패한 반면, 학생인권조례는 성공했다. 주민발의라는 직접민주주의제도가 긍정적으로 기능한 최초의 사례라는 점에서 학생인권조례는 앞으로 주민발의제의 활성화 가능성을 보여준다.

학생인권조례 제정과정에서 특히 흥미로웠던 것은 인권조례 상정을 며칠 앞둔 12월 15일에 있었던 서울시의회 점거농성에 있었다. 서울시의회 점거농성의 주역은 다름 아닌 성소수자 단체들이었다. 흔히 LGBT그룹이라고 칭해지는 성소수자 단체들은 지난 몇 년 동안 자신들의 상징인 무지개색의 깃발을 들고 각종 집회에 참석하면서 조직화를 시작했다. 그러나 서울시의회 점거농성은 기존처럼 다른 단체가 중심이 된 집회에 LGBT단체가 결합하는 형태가 아니라, 성소수자들이 중심이 되어서 전면에 나섰던 최초의 사례였다. 성소수자들은 자신의 얼굴이 언론에 노출되면서 아웃팅(이성애자들에게 동성애자임이 알려짐) 당할 수 있는 위험조차 감수하면서까지 자신의 의견을 언론에 노출할 수 있는 기자회견 등의 행위를 굽히지 않았다. 성소수자 운동 역사에 있어서 점거농성은 쉽지 않은 결정이었고, 승리의 경험을 할 수 있었기 때문에 다음의 운동으로 이어질 수 있는 가능성을 얻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작지 않다.

학생인권조례에서 성소수자들이 주체로 나서게 된 이유는 학생인권조례에 포함된 ‘성적지향’과 ‘임신출산’에 대한 조항 때문이었다. 많은 성소수자들은 학교를 다닐 때부터 성적 정체성 때문에 고통을 겪어야했던 경험을 크든 작든 가지고 있으며, 2003년에는 동성애자인권연대의 활동가중 한 사람이 학교에서 아웃팅을 당하고 집단따돌림으로 인해 자살하기도 했다. 때문에 성소수자 진영이 학생인권 조례에 포함된 ‘성적지향을 이유로 차별받지 않을 권리’에 대해 가지는 관심은 각별한 것이었다.

그러나 학생인권조례의 통과에 대한 여론은 그리 긍정적이지 않았다. 특히 교총을 비롯한 많은 보수단체들은 학생인권조례가 교육현장의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고 있지 못하며 교권을 침해한다면서 폐기를 주장했다. 특히 이들은 성적지향의 문제가 사회에서도 해결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섣불리 학교에서 교육받아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도대체 ‘차별받지 않을 권리’가 왜 교육받아서는 안되며, 사회에서는 합의되지 않은 것인지 의문이지만 이들 단체의 대부분은 기독교적 가치관을 바탕으로 동성애를 죄악시하기 때문이라는 결론밖에는 얻을 수 없었다. 많은 성소수자들이 이들 반대론자들의 의견에 분노했지만, 현실적으로 이들의 힘은 결코 작지 않았다. 서울시 교육위원 서윤기씨에 따르면, 학생인권조례를 담당하는 교육위원들을 대상으로 하루에도 수십에서 수백통의 문자가 쏟아졌다고 한다. 이들의 조직화된 힘은 학생인권조례 원안에 보장된 성적지향과 임신출산에 관한 조항들을 수정해서 제출하도록 만들었다.

성소수자들은 이런 상황 전개 속에서 학생인권조례가 통과되더라도 소수자에 대한 차별을 바로잡을 수 없게 되는 것을 우려했기 때문에 시의회 점거를 결정했다. 이 과정에서 많은 여성주의 단체들과 청소년 단체, 인권단체들, 진보신당과 사회당 등의 많은 활동가들이 추위에도 불구하고 함께 연대했다. 나 역시 농성장에서 별다른 단위 없이 개인적 차원으로 연대하러 갔었다. 물론 농성 과정이 긍정적이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농성장이 지나치게 성소수자를 중심으로 돌아가면서 남성과 이성애자들이 역차별을 받는 경향이 있었으며, 두 그룹은 서로 잘 섞이지 못했다. 특히 기존의 학생 운동권 단체의 연대는 이 경우 거의 아무런 긍정적 영향을 하지 못했으며, 오히려 분위기를 망치는 역효과를 보여주기도 했다.

결과론적으로 수많은 호모포비아의 장벽과, 교권 수호를 위한 보수단체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서울시 학생인권조례는 거의 원안 그대로 통과되었다. 다만 학내에서의 집회는 허가제로만 가능하며, 그 외의 경우 처벌이 가능하다는 내용, 그리고 두발 자율화에 대해서 학칙을 통해 처벌 가능하다는 단서조항이 따라붙었다는 점에서, 원안통과를 염원했던 청소년 활동가들의 소망은 절반의 성공으로 끝났다.

그런데 원안통과의 과정과 관련해서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했던 것은, 당초 인권조례를 발의했던 민주노동당이나 진보신당이 아니었다. 이 두 당은 최근 진보정당 통합과 관련된 문제로 당력을 기울여 소수자 운동에 연대하는 것을 포기했으며, 아이러니하게도 인권조례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것은 민주당이었다. 농성장을 점거한 성소수자들은 트위터등의 SNS와 오프라인을 통해 민주당(현 민주통합당)을 압박하는 전략을 사용했다. 특히 민주당이 중심이 된 FTA집회에 방문해서 정동영 의원으로부터, 학생인권조례 원안통과 약속을 받았던 것은 엄청난 성과였다. 정동영의 영향력 때문인지, 원안통과에 대해 회의적인 사람들도 다수 포함되어있던 민주당 또한 원안통과를 당론으로 확정짓겠다고 공식 발표했다. 당초 원안통과가 불투명했던 인권조례가 통과된 것은 이런 의미에서 정동영과 민주당의 공이 가장 컸던 것이다.

나는 정치인 정동영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는 전북의 지방유지 출신이며, 그가 노동운동에 아무리 관심을 기울인다고 한들 이해할 수 없는 영역은 분명하다고 생각한다. 사실 정동영이 노동을 비롯한 계급과 소수자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게 된 것은 틈새전략으로부터 기반한다. 친노 세력으로부터 배척받고, 민주당 안에서도 자신의 계파 이외 당원들에게 환영받지 못하는 입장에서 대권 주자급의 지지도를 얻기 위한 수단으로 선택한 것이 좌파정당의 이슈였던 것이다. 십수년전부터 같은 문제에 대해 고민해온 좌파정당의 정치인들에 비하면 진정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점은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동영의 변신이 한국의 정치진영에 변화를 가져오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한진중공업 투쟁과정에서 김진숙을 크레인에서 내려오게 한 원동력은 민주노총이 아니라, 정동영의 힘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물론 정동영에 대한 기존의 부정적 인식이 존재하기 때문에 당장 그의 지지율이 크게 오르지는 않았다는 점에서 본인은 그리 만족스럽지 않겠지만, 그가 선택한 전략의 결과가 단시간에 성과를 낼만한 것은 아니었다는 점을 고려해본다면 앞으로도 본인의 정치적 영향력을 높이기 위해 좌파 의제에 관심을 기울일 가능성이 크다.

간과하지 말아야할 사실은 학생인권조례의 통과는 분명 정당정치를 바탕으로만 가능한 것이었으며, 아마도 한나라당이 의회의 과반수를 차지하는 구도였다면 통과에 실패했을 거라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한국 정치의 보수 양당구도를 깨고 실질적 민주주의의 달성을 위해서 제시되는 세 가지길 중 하나는 민주당이 좌파의 의제를 적극 반영하게 만드는 방향이다. 그리고 민주당은 ‘복지국가’의제를 통해 느리게나마, 조금씩 계급적 의제를 정치에 반영해나가고 있다. 민주노동당이 국민참여당과 합당하면서 계급정치노선을 일정부분 포기한 것과는 상반되는 모습이다. 적어도 경제적 불평등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서 정당정치는 여전히 가장 유효한 틀이며, 소수자들의 권리에 대해서도 일정부분은 관여할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5. 결론 및 제언

앞서 학생인권조례의 과정에서 정당정치의 중요성과 정동영이라는 정치인 개인의 포지셔닝이 가지는 의미에 너무 집중해서 말한 느낌이 있어 보이지만, 정치인 개개인의 리더십이 실질적 민주주의의 구현을 위해 절실하다는 결론에 나는 동의할 수 없다. 필요한 것은 계급의 문제, 노동의 문제가 계속적으로 공론장에서 논의될 수 있게 만드는 사회적 합의이며, 이 사회적 합의가 존재할 때에야 정치인이 리더십을 가지고 갈등을 사회화하며 치환할 수 있는 가능성도 나타날 수 있는 것이다.

결국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이 시민사회단체들의 운동이다. 최장집은 학생운동의 종언을 비롯해 운동이 할 수 있는 역할을 제한적으로 본다. 확실히 이제까지의 사회운동은 경제적 중산층 이상만이 전유할 수 있는 것이었으며, 학생운동 역시 이러한 경향성 위에 서 있었다. 그렇다면 정당정치를 통해 갈등을 사회화하기 전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정당이 사회화시키지 못하는 갈등들을 의제로 설정해낼 수 있는 능력이다. 경제적 불평등에 관한 문제 역시 한국의 기존 정당들이 반영하지 못하는 이상은, 계속적으로 운동이 관여해야할 몫으로 남을 것이다.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계급의 이해관계가 제대로 반영될 수 있는 정당체제의 건설이 핵심적 과제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그리고 정당정치가 보장해줄 수 없는 민족, 여성주의, 성소수자를 둘러싼 갈등들에 대해서라면 시민사회운동의 영역은 더욱 그 역할이 무거워진다. 분명한 것은, 이제까지의 중산층 이상의 이해관계만을 반영한 시민단체를 뛰어넘어서 성소수자와 여성, 이주자들의 문제에 대해서 시민사회가 더욱 노력해야한다는 점이다. 특히 여성주의는 기존의 ‘가진 자들의 페미니즘’을 넘어서 여성이 지닌 소수성을 바탕으로 현실정치에 있어서 더욱 폭넓게 개입해야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글을 쓰다 보니 정당정치와 시민사회 운동 중 어느 한 가지만을 중요하게 본다는 것은 결국 학자들의 이론적 위치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편가르기의 진영논리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든다. 양자는 서로 모순되는 개념이 아니라 공존하는 개념이며, 그 중요성에 대해서는 어느 한 쪽의 손을 들어줄 수 없는 문제인 것이다. 2011년의 마지막, 시대는 변하고 있다. 어느 쪽이 옳고 그른가에 대한 가치 판단이 아닌 서로의 공존을 위한 새로운 합의를 모색하는 자세가 어느 때보다도 요구된다.

by Goldmund | 2012/01/02 23:49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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