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가벗은채 북을 치는 지식인의 슬픔에 관하여- 예형과 진중권

삼국지는 엄밀히 말하면 고전으로 보기는 어려울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삼국지가 고전으로 취급받을수 있는것은 그 서사의 장엄함과 함께 등장인물의 다채로운 매력때문일 것이다.
그중 '정평 예형'은 잠깐스쳐가면서도 꽤나 강렬한 인상을 준다. (닮은 꼴로는 양수가 있다)

어진 사람과 어리석은 사람을 알아보지 못하니 눈이 혼탁해졌고
글을 읽지 않으니 입이 탁해졌고,  충언을 안들으니 귀가 탁하고,
고금사를 모르니 몸이 탁하고,  제후를 용납하지 못하니 배가 탁하고 항상 역적질을 생각하니 마음이 탁하고,  나같은 천하명사를 북치기로 채용하니 그 오장육보가 썩어 문드러진 것이다

-발가벗은채 북을 치며 예형이 조조에게 날린 일갈-

 
이사람이 자의식 과잉인것만은 분명하다. 재야에서 이름을 높이던 예형의 나이 25, 인재 욕심이 있는 조조는 이 콧대높은 선비를 자기휘하에 들이고 싶어했을 것이다. 그러나 예형에겐 애시당초 그럴마음이 없었던 것 같다. 글속에서 사는 선비는 한나라의 존속을 원했던것 같다.

 
문장속에서 빛나는 재능과, 현실에서 실천하는 재주는 다르다. 조조는 문장속에서만이 아니라, 지극히 현실적인 지식인이다. 사람 볼줄 아는 군주, 조조가 예형의 한계를 못 꿰뚫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 모욕을 당하면서까지 데리고있어야만 할정도의 재능은 아니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거기다 조조는 기본적으로 자신의 지적 수준에 대해 굉장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무장에 대한 그의 대접과, 문사(책사와는 다르다)에 대한 그의 대접이 달랐던 것에서도 이런 부분은 여실히 나타난다.(그리고 그의 이런면모는 뒤로 갈수록 심해진다.. 사람은 늙을수록 완고해진다)

조조와 맞붙은 예형 쪽은 또 얼마나 오만한가. 예형이 원래 유명해진 이유도 상대를 가리지않는 독설과 그 꼿꼿한 성품에 있었다고 한다. 그 꼿꼿함은 결국 조조및 그 휘하의 모든 장수와 책사들을 깔아뭉개는 안하무인이 되고만다. 안하무인의 독은 결국 그의 죽음까지 빠르게 치닿게 만든다. 이후 그의 말로는 그다지 언급할 가치가 없을 것이다. 사자로 보내진 유표의 진영이나, 황조의 앞에서 한 행동은.. 현실의 독함에 꺾여버린 지식인의 죽음에 대한 발광 수준이었던 것 같다. 그는 그렇게 강한 사람이 아니었을 것이다..

예형은 조조의 앞에 무슨 생각으로 갔을까. 그는 과연 조조에게 이길 자신이 있었을까. 정확히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역사의 기록도 왜곡되어 있기에, 후세 사람들은 그저 추측할 뿐이다. 내가 예형이라면 어땠을까. 아마도 이길수 없는 싸움 앞에서 지식인은 발가벗은채 북소리를 울렸을 것이다. 어차피 그는 모욕을 당하면서 살아남는다는 것을 포기했을 것이다. 어쩌면 혼탁한 세상을 욕하며 살수밖에 없는 자기의 인생이 지루했을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그래서 그는 죽음을 선택한다.

 제목에서부터 알수 있듯이, 내가 지금에 예형을 떠올리는 것은 100분토론에서의 진중권씨 때문이다. 진중권씨는 토론에 나가면서 무슨 생각을 했던 것일까. 지금 진중권에게 테러를 가하는 네티즌들은 어차피 이길수 없는 상대라는 점에서 조조와 비슷하다. 이길수 없는 상대와 맡붙는 지식인은 슬프면서도 오기를 부리게 된다. 그리고 가끔은 이것이 아집이 되기도 하고..

토론을 본 바로, 디워 찬성 측의 논리는 진중권씨의 논리에 압도당했다. 이건 기본적으로 디워 찬성에 대한 논리가 굉장히 빈약한 탓이다. 애시당초 한국이란 시장에서 1000만이 보는 영화가 나오고, 지금속도의 흥행이 가능하다는것 자체가 우스운 일이다. 물론 애국심은 나쁜게 아니다. 그러나 애국심이 '영화의 작품성을 평가하는 잣대'에 포함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게다가 디워는 '평론가들이 보기에는' 당연히 서사가 엉망인 영화다. 300이나 트랜스포머나 반지의 제왕 등은 원작이 있다. 그의 말대로 단순한 서사와 '너무도 우연적이어서 딱히 평론할만한 가치가 없는' 영화는 아니다. (그 여자방청객의 경우에는 '그닥 평론할 의향이 안생기는' 이라는 표현을 '평론할 가치가 없는'으로 둔갑시킨채 자기할말만 하고 논리의 대응을 받아들이지않는 태도는.. 좆선일보나 '리타 스키터'를 떠올리게 하는 편집술이었다.)

진중권씨는 처음부터 그렇게 이성적으로만 토론하지는 않았다. 그는 원래부터 자의식, 자부심이 강한 사람이다. 마지막에 그가 감정적으로만 대응했다고도 하는데, 원래 토론자체는 감정없이 이성으로만 성립되는 것이 아니다. 물론그가 토론장에서 보인 태도는 적절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마지막까지 자신이 생각하기에 옳은 말을 했다. 그가 어떤 태도로 말을 했건 간에 그는 '그의 표현대로 아그들'을 상대로 승리하지 못할 것을 알았을 것이다. 현재 그에 대한 테러 역시도 그의 논리에 대한 테러가 아니라, 그의 실수에 대한 말꼬리잡기와 토론태도에 대한 감정적 비판이 주를 이루고 있다. 나역시도 예상했던대로 '비정상적으로 정상적'이다.

상식적인 말을 1대1로 들려주면 그것은 개인을 상대로 효력을 발휘할수 있다. 하지만 그 개인이 집단이 되고 군중이 되었을때, 개인은 논리의 비약을 가지고도 당당하게 행동하게 된다. 그런면에서 '개인은 똑똑하지만 대중은 바보다' 어떤 측면에서는 400만 관객은 좀비보다 무서울 수 있다. 아니, 원래 사람은 좀비보다 무섭다.

나는 그를 동정한다. 예형을, 진중권을, 이길수 없는 세상을 상대로 그 논리를 펴고자하는 지식인의 정신을 동정한다.
작금의 사태는 소위 '지식권력'에 대한 일반 대중들의 아니꼬운 시선이 작용하여, 계급간의 전쟁을 방불케 한다.
지식권력의 오만이 도를 넘을때도 많다. 하지만 이번 경우 지식인 개인이 그 지식의 오만을 공격하는 대중을 상대로 지금 승리할 확률은 0에 가깝다. 그래서 난 블로그에서까지 악플러들을 약올려야하는 그를 동정한다.

그것은 개떼이즘속에 변질되어가는 이오공감을 매일매일 보면서, 이렇게 읽히지도 않을 글을 쓰고야 마는 것이 나역시도 개떼들의 일부가 되고싶지 않다는 '자의식 과잉' 이기 때문이겠지....후우;;;;;

by Goldmund | 2007/08/11 16:53 | 트랙백 | 덧글(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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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김광현 at 2007/08/11 16:59
잘 읽었습니다.
Commented by softdrink at 2007/08/11 20:49
자의식 과잉이시군요...^^
Commented by Goldmund at 2007/08/12 01:38
김광현/ 읽어주신데 감사할 따름입니다.
softdrink/ 좀더 명확하게 해석할수 있는 평가를 주세요^^
Commented by coneco at 2007/08/15 22:42
저도 잘 읽었습니다. '개떼들의 일부가 되고 싶지 않다'는 게 스스로 자의식 과잉이라고 하실 정도는 아니라 생각하구요.
Commented by Goldmund at 2007/08/18 06:44
coneco/ 잘 읽었다니 감사합니다;
그들중 하나가 되고싶다는것만으로 자의식과잉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지요. 단지 그렇지않다고 차별화하기를 노력하는일엔 엄청 게으르면서.. 말은 번지르르한 자신에게 짜증이 나서 그러는겁니다..ㅋ
Commented by 심리 at 2007/12/02 02:26
저는 디워 논란 당시에 진중권 님의 블로그에 가본 적은 없습니다만, 하도 사람들이 말이 많길래 호기심에 근래에 가보았습니다. 그런데 지인 공개로 바꿔놓았더군요. 그래서 대중에게는 안 보이나봅니다. 블로그 글과 관련해서 뭔가 논란도 있었던 듯 합니다.

이성적이라고 스스로를 생각하는 사람도 사실은 감정과 제한된 지식에 의해 지배받기 쉽다고 생각합니다. 제 직간접적 경험으로 그렇더군요. 그래서 자신을 이성적이라고 자신하는 태도야말로 위태로울 수 있습니다. 겸손하게 자신을 의심해보고 다른 사람들의 입장도 이해해보려 노력하는 태도가 그래서 소중하고 유익한 거지요.

너무 자신만만하다보면 다른 사람들의 반발을 사는 것을 넘어서서 사실을 정확히 잡아내지 못하는 위험을 저지를 가능성도 높아집니다. 이래저래 안 좋은 현상이지요. 사람은 너그럽고 겸손한 게 역시 좋은 겁니다. 이성과 감성을 겸비하는 게 좋다고 봅니다.
Commented by Goldmund at 2007/12/03 19:01
그렇죠;;;; 이성에 대한 광신적인 믿음이야말로 경계하고 또 경계해야할 일이기도 하지요. 확실히 진중권씨의 경우 이성에 대한 믿음이 지나친 모습을 보여주었지요... 비록 상호대화가 통할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지만, 진씨의 행동은 실망스러운 것이었지요 ㅇㅅ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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