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레이드 러너, 그들은 누구인가?

  영화를 보고 나서 도대체 이 영화가 무엇을 말하려는 거지? 라고 느껴질 때가 있다. <블레이드 러너>역시 수많은 상징들이 삽입된만큼이나 해석이 분분한 작품이다. 이런 경우 영화의 주제의식을 파악하는 가장 유용한 방법이 영화제목에 대한 분석이다. 언어는 그 자체로서 고유한 뜻을 가지는 동시에, 맥락에 따라서 새로운 의미를 부여받는다. 영화의 제목은 단순히 한가지의 뜻을 가지기보다는 중의성을 띄는 상징인 경우가 많다. 제목이야 말로 그 영화의 핵심 메시지를 함축적으로 전달해주는 수단이기 때문이다.

  ‘블레이드 러너’를 직역하자면 ‘칼날 위를 달리는 사람’이다. 칼날 위를 달린다는 것은 매우 아슬아슬하고 위험한 일이다. 레플리컨트를 감별하고 그를 ‘은퇴’시키는 것은 그만큼이나 위태롭다는 뜻이다. 하지만 그 위험성이라는 것은 단순히 물리적인 것에 그치지 않는다. 이들은 인간과 복제인간을 구별하는 임무를 맡으면서 필연적으로 정체성의 위기를 겪는 존재이다. 주인공 데커드가 겪게 되는 심경변화는 ‘블레이드 러너’가 인간과 복제인간 사이에서 경계자적 존재임을 보여준다.

  데커드와 레이첼이 처음 조우했을 때 레이첼은 데커드에게 질문한다. ‘실수로 사람을 은퇴시킨 적은 없나요?’ 데커드는 ‘그런 적은 없다’고 확신에 찬 대답을 한다. 테스트를 거치면서 자신에 대한 확신을 잃어버린 레이첼이 그의 아파트를 찾아왔을 때, 데커드는 레이첼의 기억이 이식된 것에 불과하다고 얘기한다. 레이첼은 눈물을 흘리지만, 데커드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잔인한 말을 이어간다. 이 과정에서 ‘인간대 인간’의 배려는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데커드가 죽음에 위기에 처했을 때, 레이첼은 ‘내 일이 아니지만’ 데커드를 구한다. 과연 레이첼과 데커드중 누가 더 인간다웠던 것일까? 레이첼은 데커드에게 ‘자신이 복제인간이 아닌지 테스트해본 적은 없냐’고 질문한다. 데커드는 예전처럼 확신에 차서 대답하지 못한다.

  이런 의미에서 블레이드 러너는 삶과 죽음의 경계위에 서있는 동시에 인간과 복제인간의 모호한 경계선 위에 서있는 존재이다. 하지만 경계 위에 서있는 블레이드 러너는 그렇기에 더욱 냉혹한 존재가 되어 행동한다. 길거리에서 총을 쏴서 사람을 죽이더라도 아무렇지 않게 넘어가는 환경 속에서, 블레이드 러너는 더더욱 인간성을 잃고 ‘기계’가 되어 행동한다. 사회 안정이라는 가치를 위해 스스로를 버리고 ‘타자’를 파괴하는 칼날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과연 ‘칼을 구동하는 자’들은 가상적으로만 존재하는 것일까? 감독의 의도대로 데커드 역시 복제인간이라는 결말을 수용하는 순간, 그러한 의심은 영화를 보는 수용자에게도 옮겨온다. 사실은 자신도 복제인간에 불과하지만, 자신은 인간이라는 만들어진 믿음 속에서 동족을 죽여야 하는 운명의 블레이드 러너. 블레이드 러너의 이야기는 영화 속 미래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의 문제로 연결된다. 성별, 인종, 국적, 지역, 계급.. 갖가지 가치관에 따라서 만들어진 경계선에 따라 ‘나’와 ‘타자’가 구분되고, 적대가 형성된다.

  주말에 희망버스를 타고 한진중공업 집회에 다녀왔다. 대치하는 전경들 속에는 오랜 친구가 있었고, 우리는 서로를 걱정하면서도 맞설 수밖에 없었다. 자본가의 부당한 권력을 둘러싸고 수많은 청춘이 밤을 새워야했던 이 상황에 대해 주류언론은 철저히 침묵했다. 정당한 권리와 인간다운 삶을 위해 모인 수많은 사람들을 ‘범법자’로 만들고 야만적으로 진압했던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많은 사람들은 불법시위는 나쁜 것이니 합법적으로 시위를 해야한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이들은‘법이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를 고민하지 않는다. 이미 ‘나’라는 개인을 규정짓고, 반대편에서 벌어지는 위법행위에 대해서 적대를 드러내는 것이다. 이런 종류의 경계라는 것이 어떻게 만들어진 것인지 우리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경계선 너머에 대한 이유없는 적대는 끝없이 반복된다. 우리야말로 경계선상을 아슬아슬하게 달리고 있으면서도, 자신의 잣대를 ‘정의’의 이름으로 휘두르는 블레이드 러너가 아닐까?

by Goldmund | 2011/07/12 00:42 | 트랙백 | 핑백(1) | 덧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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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세그위버 at 2011/07/12 11:14
그 영화에서 데커드가 결국 복제인간이었던가? 나름 인상깊게 봤는데 기억이 안나눼??? 뭐 여하튼 그 영화속 세계관은 영원히 도래하지 않겠지만, 이렇게 글을 끄적이는 너님은 밥은 잘 챙겨먹늬?ㅋ
Commented by Goldmund at 2011/07/12 14:46
방금 라면 끓여먹었음;;;
요즘 식단이 참 햏햏...
Commented by 세그위버 at 2011/07/12 14:59
햏햏이라늬 어느 시대 말이야 너 몇살이야
Commented by Goldmund at 2011/07/12 21:05
몇년안됐던걸로 기억하는데...

이것도 취향이라능...존중해달라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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