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우리들은 무엇을 '창조'할 수 있을까

-창조경제는 과학기술과 산업이 융합하고, 문화와 산업이 융합하고, 산업간의 벽을 허문 경계선에 창조의 꽃을 피우는 것입니다. 기존의 시장을 단순히 확대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융합의 터전 위에 새로운 시장, 새로운 일자리를 만드는 것입니다

-창조경제는 사람이 핵심입니다. 이제 한 사람의 개인이 국가의 가치를 높이고, 경제를 살려낼 수 있는 시대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의 취임사에서 가장 많이 사용된 단어 중 하나는 '창조경제'였다. 총 7번이나 사용된 창조경제라는 표현을 비롯해 '창조' '새롭다' '만들다'와 같은 일군의 단어들은 취임사에서 두드러질 정도로 사용되었다.


그런데 박근혜가 그렇게 강조하는 창조경제라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실체가 무엇인지조차 모호한 이야기다. 창조경제를 선도하겠다는 장관 내정자도 창조경제가 뭔지 설명을 못하는 형편이다. 창조경제에 대해 지금까지 나온 정책들을 통합해 가장 기초적인 설명을 하자면 결국 ICT산업. 즉 방송과 통신기술에다가 다른 부서들을 협조시켜서 돈좀 벌어보자는 얘기다. 그런데 이 주장을 바로 15년전에 했던 선각자가 하나 있었으니 그게 바로 김대중 대통령이었다. 김대중 정부의 신지식인 육성 얘기랑 창조경제론은 굉장히 많은 부분에서 겹친다. 이미 많은 언론에서도 지적하는 얘기지만, 결국 예전에 김대중 노무현이 했던 IT육성 정책을 말만 바꾼 것에 불과하다. 창조경제란 결국 약파는 소리에 불과한 셈이다.


뭐 그래도 ICT산업을 성공적으로 발전시키면 그럭저럭 성장동력이 될 수는 있을거다. 그런데 여기서 하나 더 핵심적인 부분이 남는다. 과연 창조란 누가 할 것이며, 그 창조의 결과물은 누구에게 돌아갈 것인가의 문제다. 미안하지만 국부와 당신의 행복은 상관없을수 있으니까 말이다.

여기서 굳이 국부가 국민 개개인의 행복 증진에 얼마나 기여하는가를 놓고 벌어져온 유구한 이론적 싸움에 대해서 얘기하고 싶지는 않고, 어쨌거나 창조경제를 하는 사람이 돈을 벌 수 있는건 맞다고 치자. 그런데 그 창조란 도대체 무엇을 통해서 가능할까? 까놓고 말해서 핵심적 질문은 이거다 "우리들은 과연 창조할 역량이 있는가"


한강의 기적을 창조했다 말하는 이들. 예를 들자면 정부를 수립하고 한국전을 지휘하던 사람들의 나이는 몇이었을까? 요즘 전쟁영웅으로 TV에 오르내리는 백선엽씨는 30세에 장군을 달았다. 5.16 쿠데타 당시 핵심이었던 장교들 중 김종필은 36세, 이후락 38세, 차지철 같은 경우 고작 28세에 불과했다. 

장교들과 함께 국가정책의 핵심을 담당했던 미국유학 출신 관료들은 또 어떤가? 김종인씨가 박정희 정권 하에서 의료보험정책을 입안한 나이는 30대였다. 


그리고 산업화 이후 민주화의 시대. 자신들이 민주화를 달성한 덕에 부끄럽지 않은 대한민국을 창조했다고 말하는 이들, 그리고 오늘날 젊은이의 패기없음을 성토하는 사람들은 어떤가? 그들은 IMF 이전 학점을 개차반같이 받고 졸업을 해도 취직이 되던 사람들이다. 80년대 중반~90년대 초반은 대한민국 사상 가장 중산층들이 안정적인 삶을 영위하던 시대였다. 일례로 과외의 페이는 90년대에 이미 오늘날과 별 차이없는 월 30~40만원이었다. 전두환이 사교육시장 억압을 하다가 이게 풀린 이후 사교육시장은 급격히 팽창한다. 현재 사교육시장을 지배하는 큰손들이 386인데(예를 들어 NL의 분파 울산연합의 거두인 김창현씨는 울산의 학원재벌이다) 이건 우연이 아니다. 386은 놀아도 취직이 되던 사람이고, 창업이 망하거나 하는 실패를 겪어도 최소한 사교육시장에 편입되는 방법을 통해 돈을 벌수 있었다는 사실은 매우 핵심적이다.


그리고 하나 더, 생산수단의 소유문제와 함께 이데올로기의 문제가 남는다. 여기서 알튀세르의 얘기를 빌리자면,

모든 사회구성체는 존재하기 위해서 생산을 해야하며, 동시에 그 생산조건들을 재생산하지 않으면 안된다. 생산조건의 재생산은 생산력의 재생산과 생산관계의 재생산으로 나뉘는데 여기서 생산력의 재생산을 위한 핵심이 임금이라면, 생산관계의 재생산을 담당하는 핵심은 바로 이데올로기의 생산이다.

 

한국사회 이데올로기의 주요한 갈등축을 거칠게 요약하자면, 이는 결국 박정희와 함께 한국을 창조한 세대와 그의 자식들인 386의 헤게모니 싸움으로 요약될 수 있다. 

예를 들어 흔히 우리가 말하는 역사교육의 문제를 들여다보자. 2030세대의 다수는 이승만과 박정희가 건국의 영웅으로 추앙되는 것은 역사를 왜곡하는 친일파들의 소행이라 말한다. 그리고 뉴라이트와 같은 이들의 주장을 '비상식'으로 일축한다. 그런데 여기서 역사에 상식과 비상식을 나눈다고 할때, 합의된 상식은 누구에게서 나오는 것인가? 다수에 의해 공유되는 역사란 과연 옳은 것인가?


유감스럽게도 많은 이들에게 있어, 이승만 박정희의 카운터 헤게모니는 고작 김구나 장준하에 머무르는 것이 오늘날 대한민국의 저렴한 역사의식이다. 친일파 청산이 안되서 역사의식이 없다는 식의 맨날 거기서 거기인 이야기들.. 뉴라이트의 주장 중 맞는 부분을 인정하면서도 거기서부터 새롭게 나아가기보다는 뉴라이트를 묻어버리는게 우리의 일차원적 역사관이다. 한국사회에서 역사의식이란 보편적 관점에서의 역사를 합의하려는 시도가 아니다. 그냥 정답을 만들어내고 거기 안맞는걸 도덕으로 거르는 도구에 불과하다.

 

우리 청년세대는 결국 그들의 이데올로기를 대신할 다른 것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다.

386의 이해관계와 우리의 이해관계는 명백히 다르다. 그들은 90년대 중반 절정이었던 한국사회의 경제적 안정속에서이미 내 집을 마련한 사람들이지만, 우리들 청년세대는 앞으로도 영원히 전세와 월세를 떠도는 유랑극단처럼 살아야한다. 김어준같은 인간은 학교를 개같이 다녀도 포스코에 취직이 되고 그걸 박차고 나올수도 있었지만, 지금의 젊은 세대에게 그런 일은 허락되지 않는다. 김어준이 그런 경험을 자랑하며 자신을 하나의 섹시한 롤모델로 제시할때, 청년세대는 그를 비웃지 못한다. 앞으로 다시 오지 않을 시대에 기반한 주장을 우리가 지향해야할 미래로 착각하고 오인한다. 그리고 이 오인이 투표라는 동원으로 연결된다. 노무현이 만든 단일화게임이 그랬고, 안철수 현상 또한 이런 오인을 통해 몸집을 불렸다.


우리 청년들에게는 우리만의 이데올로기가 없다. 철학도 없고 문학도 역사도 없다. 철학이 없으면 창조는 못한다. 생산수단을 소유하지 못하고 그나마의 벌이를 전월세의 형태로 착취당하는 가운데, 카운터 헤게모니조차 없으면 재생산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지금 세대는 부품에 머무른다.

혹자는 이거 보고 너무 암울한게 아니냐고, 싸이같은 케이스도 있는게 아니냐고 반문할지도 모른다. 유감스럽게도 그건 우리에게 보편적으로 주어진 기회가 아니다. 싸이의 성공은 싸이가 강남물을 쳐먹고 강남뽕을 맞아서 가능한거다. 벤처기업은 어떻냐고? 다음과 네이버 창업자인 이해진과 이재웅은 청담동 같은 아파트 살던사이다. 황무지에는 싹이 트지 않는 법이고 창조는 전 세대의 기반을 바탕으로 그 위에서 탄생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오늘날 대중문화의 트렌드를 리드하는 거의 모든 것은 강남에서 나온다. 사실은 세대론에서 말하는 세대라는게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세대론이 아니라 계급론 혹은 계층론에 가까운건 이것 때문이다. 소유한 문화자본의 양적 차이는 쉽사리 메울 수가 없다. 아비투스가 다른데 동일한 세대라고 말할 수 없다. 박근혜 대통령은 싸이의 음악이 창조경제의 훌륭한 표본이라며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지만, 싸이의 성공은 결코 청년세대의 성공도 한국사회의 성공도 될 수 없다. 강남엘리트들의 자유주의 개인주의적 문화가 마침내 글로벌 스탠다드에 근접했다는 신호를 보여줄 뿐이다.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한 3포세대. 청년세대의 현재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표현은 3포세대라는 말일 것이다. 전국평균 합계출산률은 부부 한 쌍당 1.24명에 불과하며, 그 중에서도 서울은 1.02명에 불과하다. 재생산을 위한 기반이 존재하지 않는 사회의 지속은 결국 노동력의 재생산이라는, 사회 유지를 위한 가장 기초적인 재생산조차 불가능한 상황으로 만들어가고 있다.

거기다 이렇게 줄어든 합계출산율은 현재의 청년세대를 더욱 비참하게 만드는 악순환을 낳는다. 장기적으로 10대와 20대 인구수 자체가 절대적으로 감소함에 따라 앞으로는 창업을 해도 젊은 세대의 취향에 맞춰서 소비할 인구가 줄어들 것이고, 비정규직이 확산되면서 개개인의 소비력이 줄어들 것이다. 이런데도 창업을 하고 도전을 하고 창조를 하라고?
망할 놈의 정부가 무책임한데도 정도가 있어야하는거 아닌가 싶은 기분이다.

창조경제론을 들으며 무엇보다도 빡이 오르게 만드는건 창조경제를 통해 양질의 고용이 창출된다는 개소리다. <열정은 어떻게 노동이 되는가>에 나오듯 벤처업계의 노동은 열정이란 이름의 착취에 불과하며, 전문직의 탈을 쓴 불안정노동들로 가득할 뿐이다. 자기들끼리 마지막까지 남은 사업들을 융합하고 또 융합해서 팔아먹고나면 청년들에게 돌아갈 몫은 없다. 80,90년대 미국에서 불었던 IT혁명의 결과 사회적으로 일자리는 창출되지 않았다. 오히려 슈퍼바이저, 즉 중간관리자 계층의 대량해고와 비정규직 고용의 증가라는 노동의 질적 하락이 나타났을 뿐이었다.


여기까지 암울한 얘기를 힘겹게 떠들었다. 그래서 희망이 없다고 말하고 싶은거냐 하면 사실 그러고 싶은게 아니긴 하다. 문제의 해결은 결국 지금 우리가 처한 현실을 오인하지 않고 직시하는 것에서 출발해야한다. 그게 안되면 우리세대는 산업화의 기성세대들과 빌어먹을 386들이 다 은퇴할때까지 기다린다음 빈 껍데기만을 받은다음 연금으로 그들을 먹여살리느라 영원히 고통받을지도 모른다. 그냥 그럴 수도 있겠다는 그런 얘기다.

by Goldmund | 2013/04/23 14:50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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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ㅠㄴㅇ at 2013/04/23 22:54
창조경제나 주체사상이나 정말 비슷해요 김씨가문을 숭배하는 북한인들도 주체사상이 뭔지 제대로 표현 못 합니다 둘다 애매하게 말을 이리저리 꼬아서 그럴듯하게 보이게한것
Commented by 레이오트 at 2015/01/01 10:03
애시당초 학교 교육에서 인문철학을 완전히 제거한 시점에서 이미 제대로 끝난거나 다름없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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