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언론과 수꼴들이 자꾸 08년 촛불정국을 '괴담'에 '선동'당한 사람들의 헛짓거리 정도로만 취급하고, 이런 인식이 포탈사이트등을 통해 꽤 광범위하게 퍼져있는데 촛불정국이 심각해진건 광우병 때문이 아니라 경찰의 과잉진압을 비롯한 민주주의 위기론이 생겼기 때문이었습니다. http://academic.naver.com/view.nhn?dir_id=1&unFold=false&sort=0&query=%EA%B4%91%EC%9A%B0%EB%B3%91+%EC%A7%84%EC%95%95&gk_qvt=0&citedSearch=false&field=0&gk_adt=0&qvt=1&doc_id=56396219&page.page=1&ndsCategoryId=110 이를 위해 2008년 촛불집회에서 등장한 운동의 프레임을 크게 ‘먹거리 위기 프레임’, ‘민주주의 위기 프레임’, ‘공공성 위기 프레임’의 세 가지로 개념화하고, 전체 운동의 전개과정 속에서 각각의 프레임이 주류화 되는 양상을 ‘출현’, ‘내용’, ‘조직연계’, ‘과정’의 네 가지 차원에서 분석하였다. 첫째, ‘먹거리 위기 프레임’은 촛불집회의 초기 국면에 부각된 프레임으로서, 한미 쇠고기 협상의 타결 전후로 형성되기 시작하여 MBC 의 방영 직후 참여자들의 동원을 효과적으로 이끌어냈다. 광우병 위험에 대한 불안감과 먹거리주권의 수호를 그 주요 내용으로 하며, 여러 시민단체들과 인터넷 까페, 야당으로 구성된 ‘광우병 국민대책회의’의 발족과 함께 프레임 연결의 과정을 거친다. 둘째, ‘민주주의 위기 프레임’은 촛불집회의 확대와 함께 부각된 프레임으로서, 졸속적인 한미 쇠고기 협상 과정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하였다. 이는 정부의 재협상 불가 방침에 분노한 참여자들이 첫 거리시위에 나서고 이를 경찰이 과도하게 진압하면서 전면적으로 부상하는데, 87년 6월항쟁에 대한 회고와 맞물리면서 프레임 증폭의 과정을 거친다. 셋째, ‘공공성 위기 프레임’은 촛불집회의 확장과 더불어 부각된 프레임이다. 근본적으로는 정부의 신자유주의적 정책들에 대한 비판적 인식으로부터 비롯되었으며, KBS 특별감사와 함께 가시화된 정부의 이른바 ‘공영방송 장악’ 움직임에 의해 활성화되었다. 이는 광우병 국민대책회의가 ‘1+5 의제’를 공식적으로 채택함으로써 명확해졌는데, 여기에는 공영방송 사수뿐만 아니라 의료 및 공기업 민영화 반대, 물 사유화 반대, 교육자율화 반대, 대운하 반대 등의 내용이 포함되었다. 이것은 신자유주의에 대한 대중적 문제제기와도 같았다. 이러한 ‘공공성 위기 프레임’은 거리에서의 대국민토론회와 인터넷 공론장을 통해 프레임 확장의 과정을 거친다. ----------------------------------------------------------------------------------------------------------- 집회의 초기단계에서 가장 핵심의제는 분명 광우병이 맞았습니다. 확실하지 않은 광우병 위협에 대한 공포가 사회적으로 심했고, 동시에 그 확실하지 않은 위협을 막지 않은 정부에 대한 분노(검역주권 포기)가 시위의 핵심이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다만 당시 집회의 규모는 아무리 커도 1만명을 넘지 않는 규모였습니다. 시위가 한달 내도록 지속되었지만 사회적인 관심도 역시 그 뒤의 시기와는 명백히 차이가 있었습니다 비록 신뢰도에 문제가 있긴 하겠지만 위키백과의 당시 집회 관련 일지에도 기록이 있습니다.http://ko.wikipedia.org/wiki/2008%EB%85%84_%EB%8C%80%ED%95%9C%EB%AF%BC%EA%B5%AD%EC%9D%98_%EC%B4%9B%EB%B6%88_%EC%8B%9C%EC%9C%84#2008.EB.85.84_5.EC.9B.94 저는 개인적으로 이 단계에서는 광우병 의제에 별로 공감하지 않았기 때문에 집회에 나가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제가 집회를 나가게된 계기는 5월말에 있었던 경찰의 과잉진압 이슈가 터지면서부터였습니다. 이 시기 집회의 규모는 1만명 수준에서 5만 이상으로 늘어났습니다. 광우병 이슈에는 소극적으로 반응하던 저같은 사람들이, '민주주의'와 '경찰의 폭력'에는 훨씬 민감하게 반응했기 때문입니다. 시위대의 규모가 커지고, 경찰에 대한 분노가 커짐과 동시에 시위양상이 과격해지기 시작한것도 이시기부터입니다. 처음부터 유언비어에 낚인 사람들이 과격시위를 벌인게 아닙니다. 시위가 수십만명이 참가할 정도로 규모가 불어난 다음 1+5 의제라는게 채택되고 공영방송 사수, 민영화반대와 4대강 반대같은 이슈들이 광우병 못지 않게 커다란 이슈가 되었습니다. 나온 사람들이 전부 광우병 때메 나온게 아니라 다들 생각이 달랐던 겁니다. 특히 저같은 경우 신방과 학생이었기 때문에 저희과 전체가 공영방송 관련 이슈로 한강 건너서 행진하기도 하고 그랬습니다. 집회가 커지고 사람이 많아지면 어떤 집회를 가더라도 여러가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모이기 마련입니다. 구호도 다양해집니다. 그건 '순수하지 않은' 게 아니라 당연한 현상입니다. 애초에 순수한 추모를 얘기하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당시 순수하게 광우병이 걱정되어서 갔다는 사람들은 유언비어에 낚인 좀비 취급하고, 광우병 관심없고 민주주의 위기 프레임때문에 광장에 나간 저같은 사람들은 '시위꾼' 취급하실건데 대체 원하는게 뭐냐구요. 그냥 시위 하는거 자체가 싫다고 솔직하게 얘기하시죠? # by Goldmund | 2015/04/21 00:00 | 트랙백 | 덧글(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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