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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대선에 부쳐 - 나는 나를 선택할 권리가 있다!

나는 나를 선택할 권리가 있다


응답하라 2012, 우리의 선택은 안녕한가?

인생은 B(Birth)와 D(Death)사이의 C(Choice)라는 말이 있다. 지극히 사소한 선택들부터 인생을 결정할만한 중대한 선택들까지, 살아간다는 것은 결국 선택들의 연속일 것이다. 하지만 선택이란 언제나 자신의 뜻대로만 이뤄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자신이 원하지 않는 선택지 가운데 하나를 뽑는, 선택 아닌 선택을 해야만 하는 경우도 있다. 2012년 12월 19일, 우리의 선택권은 정말 자유롭게 보장될 수 있을까?

잠시 시계를 돌려 5년 전의 선택으로 돌아가 보자. 2007년 수많은 서민들이 경제대통령 이명박의 약속을 믿고 그에게 표를 던졌다. 그리고 5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그 선택이 결과적으로 비합리적인 선택이었다고 얘기한다. 국밥 광고를 통해 유명해진 ‘욕쟁이 할머니’ 강종순 씨는 매출이 반토막나고 월세가 밀려서 시장에서 쫓겨날 위기에 처했다. 사투리로 ‘살려주이소’를 외치던 청년백수 이영민 씨는 다니던 일자리를 잃고 지금은 일용직 노동자가 되었다. 그들은 언론에 의해 재조명되면서 어리석음과 무지함의 상징이 되었고, 많은 사람에게 비난과 조롱을 받고 있다.

그런데 사실 이런 상황에 대해 이명박 대통령과 그를 뽑은 사람들에 대한 조롱은 아무런 의미도 지니지 않는다. 따지고 보면 이명박 대통령뿐만 아니라, 역대 대통령의 5년차 국정운영지지도는 언제나 바닥을 기어 다녔다. 특히 2007년 이명박이라는 선택과 2012년 그 선택에 대한 실망은, 2002년 노무현이라는 선택과 2007년 그 선택에 대한 실망과 매우 유사하다. 노무현 정부 하에서 집안이 파산했다는 이영민씨가 이명박에 대한 지지연설에서 말한 “노무현을 찍은 손을 잘라버리고 싶었다”는 수사는 결국 “이명박을 지지한 입을 꿰매버리고 싶다”는 식으로 반복될 뿐이다. 5년마다 Cntl+C, Cntl+V 처럼 반복되는 이런 상황 속에서 사람들은 정치에 대한 열망과 기대를 포기하고 정치혐오에 빠지게 되었다.

투표율은 매 선거 때마다 역대 최저를 경신하고, ‘뽑을 사람이 없다’는 아우성이 곳곳에서 들린다. 하지만 언론은 이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그저 누가 1등이 될 것인가를 놓고 경마 저널리즘에만 바쁘다. 정작 중요한 것은 박근혜, 문재인, 안철수 중 누가 대통령에 당선되는가 하는 결과보다 그들의 정치가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줄 것인지 하는 문제, 그리고 5년 후의 결과에 대해 책임지는 정치가 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임에도 말이다.

차악을 뽑거나, 그놈이 그놈이거나

흔히들 투표를 두고 ‘차악을 뽑는 행위’라고 말하곤 한다. 투표의 본래 취지가 자신이 지지하는 최선의 후보를 선택하는 것임을 생각해보면 우스운 얘기지만, 우습게만 생각할 수 없는 슬픈 이야기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2010년 서울시장 선거 결과를 둘러싼 세간의 평가가 그랬다. 민주당 한명숙 후보가 한나라당 오세훈 후보와 1% 이내의 접전을 벌이고 석패하자 한명숙 후보의 지지자들은 진보신당 노회찬 후보와 그 지지자들을 공격했다. 결과론적으로 노회찬을 지지한 3.3%의 진보적인 사람들은 오세훈을 시장으로 만드는 ‘가장 보수적인 선택’을 하고 말았다는 주장이었다.

어떤 의미에서는 매우 합리적인 이런 주장은 ‘사표론’과 ‘비판적 지지론’으로 한국 선거에 막대한 영향을 끼쳐왔다. 진보 정당에게 던지는 표는 ‘사표’가 될 수밖에 없으니 최악을 막기 위한 투표를 하는 것이 올바른 투표라는 것이다. 민주화 이후 한국의 대부분 선거들은 언제나 ‘민주세력’대 ‘반민주세력’이라는 구도로 진행되어 왔으며, 민주세력의 승리를 위해서 좌파 성향의 지지자들은 자신이 원하는 후보를 선택할 자유를 빼앗겨왔다. 87년 대선에서 백기완의 후보사퇴가 그랬으며, 97년과 02년 대선에서 김대중, 노무현의 연이은 승리 또한 사표론과 비판적 지지론을 빼놓고 설명할 수 없는 것이기도 했다.

그러나 비판적 지지론의 결과는 당선된 차악이 곧 최악으로 드러나고, 낙선한 최악이 그 틈을 타 차악의 행세를 하는, 그래서 유권자는 다시 최선보다 차악을 선택하게 되는 악순환의 고리일 뿐이었다. 그 결과 정치인들은 자신이 최선의 후보임을 강조하기보다는 상대가 최악의 후보임을 보여주는 네거티브 공세와 이미지 정치에 더욱 열을 올리게 된다. 특히 이번 대선은 박정희와 노무현이라는 두 전임 대통령의 대리전 양상으로 진행되면서 더더욱 이미지 정치의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정치인들이 자신의 이미지 창출에 몰두하게 되면서 결과적으로 선거는 공약과 정책의 대결이 아니라 포퓰리즘에 기반한 구호의 대결이 되고 말았다. 올해 대선의 뜨거운 이슈인 ‘경제 민주화’라는 구호 또한 마찬가지다. 2년 전부터 학계와 진보진영에서 논의되던 복지국가 담론은 사라지고 후보마다 세세한 차이는 있지만 유권자들로서는 그 공약의 차이를 이해하기 어려운 가운데 ‘경제민주화’라는 실체 없는 구호만이 그 자리를 채우게 된 것이다.

차별화되지 않은 후보들 간의 경쟁은 유권자로 하여금 투표의 이유를 찾는 것을 어렵게 만든다. 대신 투표율이 떨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투표를 권리가 아니라 의무의 문제로, 선택이 아니라 당위의 문제로 해석하는 주장이 그 자리를 메운다. 선거가 끝날 때마다 ‘20대 개새끼론’을 비롯해 투표하지 않는 사람들에 대한 도덕적 비난의 광풍이 몰아치는 현상은 이를 잘 보여준다. 그러나 자신이 지지하고 싶은 후보가 없는 상황에서 투표를 포기하는 것을 의무의 방기라고 해석하는 것은 속편한 해석이다. 투표포기라는 행위는 정치가 그만큼 제 기능을 다하고 있지 못하다는 점을 정치인들에게 경고하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명백한 권리의 행사이기도 하다. 투표는 결코 차악을 뽑는 것이 아니라 최선을 선택하는 것이며, 최선의 선택을 투표용지 안에 담아낼 수 없다면 투표하지 않는 것도 정당한 권리의 행사인 것이다. 결국 문제는 투표를 포기하는 개인들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투표할 이유를 찾지 못하게 만드는 정치인들에게 존재한다.

‘갈등’의 부재와 정치적 무관심

‘정치적 갈등’이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부정적인 이미지를 떠올린다. 우리에게 익숙한 정치적 갈등이란 국회의 공성전과 법안의 날치기 통과, 최루탄 투척 같은 코믹하면서도 폭력적인 이미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역으로 생각해보자면 갈등이 없는 정치란 그야말로 앙꼬 없는 찐빵이며, 그래픽카드 없는 CPU에 불과하다. 민주주의의 강점은 다양성을 통한 합리적 결정에 있는데, 갈등이 없는 민주주의에는 다양성이 빠지기 때문이다. 현대사회에는 수많은 이해당사자들 간의 광범위한 갈등이 존재하고, 이런 갈등을 개인의 문제에서 사회의 문제로 만드는 것이 민주주의 정치의 핵심이다.

그러나 한국 사회에서 많은 갈등은 사회화의 과정을 거치지 못하고 개인의 문제로 국한될 뿐이다. 오히려 갈등은 부정적으로 묘사되고, 갈등 대신 ‘통합’과 ‘소통’만이 강조된다. 박근혜 후보는 국민대통합을 기치로 내세우면서, 국민을 편가르지 않는 정치를 하겠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는 노동문제나 환경문제처럼 명백히 존재하는 사회적 갈등들을 ‘좋은 게 좋다’는 식으로 힐링하려는 캐치프레이즈에 불과하다. 문재인 후보의 ‘상식이 통하는 세상’ 또한 마찬가지로, 자신과 다른 이들의 정치관을 비상식으로 규정하면서 갈등의 조정을 포기한다는 점에서 다르지 않다. 안철수 후보는 여기에 한 술 더 떠서 정치를 비효율적인 것, 갈등을 유발하는 것으로 규정하면서 정치를 혁신하겠다는 주장으로 그 인기를 얻었다. 하지만 ‘예산낭비를 줄이겠다’며 국회의원수 감축, 정당보조금 축소와 중앙당의 공천권 약화를 내세우는 방식의 정치 개혁은 사실 정당을 약화시키는 정치 파괴에 불과하다.

민주주의의 핵심이자 필연적인 ‘갈등’이 부정적인 것으로 인식되는 분위기 속에서, 갈등의 사회화에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해야할 정당들은 사회의 주요한 갈등들을 공론화시키기를 회피하게 된다. 일례로 올해 대선에서 얘기되는 ‘증세 없는 복지’라는 어처구니없는 역설 또한 조세를 둘러싼 갈등에 대해서 정당이 갈등의 사회를 포기하는 상황 때문에 발생하고 있다. 갈등의 사회화 대신 표를 얻기 위한 수단으로 지역감정이 이용되면서 지역 기반 정당 체제가 강화되며, 국회의원들 또한 의정활동을 통해 문제제기를 하기보다는 지역구관리에 애쓰게 된다. 정당 체제의 약화는 정치의 책임성 구현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새누리당이라는 정당에 소속된 박근혜 후보가 같은 당 소속 이명박 대통령과의 차별성을 강조하며 정체성을 ‘세탁’하는 아이러니한 상황 또한 정당의 책임정치가 구현된다면 일어날 수 없는 현상이다.

정치가 갈등의 사회화와 조정을 포기하면서 사람들은 정치가 자신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파악하기 힘들어진다. 다시 말해 정치효능감이 떨어지게 되는 것이다. 정치에 대한 무관심과 혐오는 바로 ‘갈등을 사회화하는 정치’의 부재에서 기인한다. 그동안 20대와 30대의 투표율이 낮았던 것도 이 때문이다. 청년 문제가 심각함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갈등’으로 의제가 되는 대신 개인의 문제로 국한되면서, 정치효능감이 떨어졌기 때문이었다. 정치적 행위에 참여하는 것보다 자신의 멘탈을 ‘힐링’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고 생각하는 청년이라면 투표에 참여하지 않는 것도 당연하지 않겠는가?

차악이 아니라 최선을 뽑기 위해

앞서 언급된 정치효능감의 감소가 투표율의 하락으로 이어지면서, 투표율을 높이기 위한 방안으로 투표시간 연장이 거론되고 있다. 투표시간 연장은 분명, 선거의 결과에 더 많은 비례성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바람직한 변화이다. 하지만 이런 변화는 단순히 투표율을 높이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못하다. 선거제도의 대표성과 책임성을 높일 수 있는 방안들이 필요한 것이다.

학계와 진보정당들은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일환으로 결선투표제의 도입을 주장하고 있다. 결선투표제에 따르면 1차 선거를 치뤄 과반수 득표자가 없을 시, 1위와 2위를 차지한 두 후보는 2주 후에 결선 투표를 통해 승부를 가리게 된다. 만약 결선투표제가 도입된다면 문재인과 안철수는 단일화 방식을 둘러싸고 지루한 싸움을 반복하는 대신 1차 선거에서 2위안에 들기 위해 서로 간의 차별화된 공약을 내세우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새누리당이 자신의 표 이탈을 막기 위해 전설의 철새 피닉제(이인제)와 다시 손잡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또한 결선 투표제의 도입은 ‘비판적 지지론’대신 소수 정당과 진보 정당들이 후보를 내서 더 높은 지지를 얻게 만든다는 점에서 사표를 방지하고 정치적 다원주의를 보장할 수 있다. 1차 투표와 2차 투표 사이에 2주의 시간을 두고서 후보를 검증할 수 있다는 점도 장점이다. 과반이 넘는 지지를 얻는 대통령을 탄생시키면서 당선자의 민주적 정당성을 높이고 국정운영의 동력을 제공해줄 수도 있다.

결선투표제라던가 정당명부제 등의 도입은 정치적 다원주의와 책임정치 구현의 가능성을 높이는 중요한 제도적 변화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제도적 변화가 모든 것을 해결해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제도적 변화보다 중요한 것은 무엇이 좋은 민주주의인가에 대한 끊임없는 고민과 성찰, 그리고 참여다. 민주주의란 그 자체로 완전무결한 가치를 지닌 예술품이 아니다. 오히려 민주주의가 가진 진정한 가치는 다양한 내용물을 수용할 수 있는 그릇으로써의 성격에 있다. 끊임없는 견제와 균형을 통해 독점적 권력의 출현을 방지하고 소수자들의 권리를 보장해 줄 수 있는 것이야말로 민주주의의 힘이다.

유감스럽게도 한국의 민주주의는 이런 점에서 아직 부족한 부분이 많다. 정당을 기반으로 한 정치는 제대로 자리 잡지 못했고, 제왕적 대통령의 권력을 바탕으로 한 행정부의 힘은 입법부와 사법부를 압도한다. 민주주의 권력의 기반인 시민들 또한 ‘국민’이라는 말은 많이 사용하지만, ‘시민’이라는 말은 잘 쓰지 않는다. 경제민주화가 시대정신이 되어있는 상황에서 정치의 민주화, 민주주의의 민주화가 잘 되고 있는지를 다시 한 번 고민해 볼 필요가 있는 상황이다.

존재를 배반하지 않는 투표를 기대하며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정치적이다”라는 말이 있다. 우리는 흔히 정치를 두고 나와는 상관없는 사람들의 밥그릇 싸움이라고만 생각한다. 하지만 정치란 사회적인 것인 동시에 개인적인 것인 것이기도 하다. 정치의 장이란 결국 자신이 가진 소신과 생각을 표현하면서 타인들과의 소통과 연대를 모색하는 일종의 대자적 자아 형성의 장인 것이다.

투표 행위 또한 마찬가지다. 우리는 비록 투표용지에 기입된 후보들의 이름에 투표를 하지만, 그들은 사실 나의 이익을 대변해주겠다고 말하는 대리인들에 불과하다. 진정한 의미에서 투표란 결국 자신를 위한 선택 행위다. 차악을 선택해야 된다는 주변의 말이나, 시대정신 같은 당위는 당신을 위해 아무 것도 해주지 않는다. 다만 중요한 것은 진정으로 자신을 대변해줄 수 있는 후보를 선택할 권리가 있을 것인가 아닌가의 문제일 뿐이다.

2012년 12월 19일, 투표장에서 당신의 권리를 위해 싸워줄 수 있는 사람을 선택할 수 있기를 바란다. 도저히 나를 위해 싸워줄 사람을 찾지 못하겠다면? 그 때는 차라리 투표용지에 자신의 이름을 적고 나오는 것이야말로 가장 당당한 선택이 되지 않을까?


- 이 글은 <중앙문화> 63호에 실린 글입니다.

by Goldmund | 2012/12/12 20:38 | 트랙백 | 덧글(4)
감히 이명박시대를 살아가기를 두려워해본다

선거가 이제 6일앞으로 다가왔다. 
대선의 마지막 변수였던 BBK의 무혐의 판정과 鄭-文 단일화 협상이 불발되면서
이제 이명박의 당선은 기정 사실화 단계에 도달했다.
그렇다면 이제까지의 소모적인 안티MB 논쟁들 대신, 이명박 당선후의 정부 (노무현의 참여없는 참여정부..이명박은 뭐라고 지을까 궁금하다..)는 어떤 색깔을 가지고 국정을 운영하게 될지에 관해서, 흥미로운 상상을 해보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우선 이명박 대통령 개인이 가지고 있는 장점으로 꼽히는 것은 (말도 많긴 하지만) 추진력이다. 이 추진력은 국가를 건설적인 방향으로 개선시킬 수도 있고, 회생불가능의 단계로 만들어 버릴수도 있다. 이 양날의 검이 어디로 향할지는 이제 국민적 역량에 달려있다. (제발 운하만은)

다음은, 이명박 대통령을 뒷받침하는 환경. 국회를 보자.
이명박 대통령이 취임한 직후 총선이 열린다. 집권직후에 이명박및 한나라당이 크게 뻘짓하지만 않는다면, (이재오 등의 위험요소도 있고, 이명박 신당의 창당가능성도 있지만, 확률은 크지 않아 보인다) 한나라당은 과반수 의석을 확보하게 된다..현재 상황으로 봐서는 2/3 확보도 가능해보일 정도로, 한나라당 지지세는 압도적이다. 물론 이 압도적인 지지가 한나라당의 가치관에 동의한다기 보다는 열린우리당의 무능력에 질려서 얻는 감이 크긴 하지만, 대안세력이 없다는 것이 국민의 현재인식이다. 대선용 통합신당은 곧 분열할것이고, 호남 미니당 민주당이나, 아직 마이너한 민노당역시 대안이 되기는 어렵다. (개인적으로 내가 문국현 후보를 지지하는 것은 이번 대선에서 문후보가 15%정도의 지지율을 확보함으로써, 이 총선에서 한나라당 견제 세력으로써 기능하기 위한 동력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국회를 장악한 여대야소의 정권은, 그 정책을 추진함에 있어서 상당한 동력을 얻을수가 있다.

다음은 재계와 언론의 협조 문제이다.
소위 '잃어버린 10년' 의 기간동안 조.중.동으로 대표되는 기존 활자언론들의 親한나라당적 논조에 대해서는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대부분이 알고있으리라 믿는다. 비교적 진보적 스펙트럼을 가졌다는 한겨레나 경향의 영향력은 미비한 수준이다.
KBS같은 공영방송은 정권이 바뀐다면 그 정권의 코드에 맞춰서 방송하는 수 밖에 없다. MBC나 SBS등의 방송 역시 정부를 비판하기에는 걸리는 것이 너무 많다.
당장 내년부터 시행될 IPTV (인터넷 기반의 새로운 방송매체를 말한다) 의 경우는 아직 변수가 남아있다. IPTV의 채널은, 방송사뿐만이 아니라, 통신사가 상당부분을 할당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때 초기 시장을 장악해야하는 통신사들 역시, 정부를 비판하기에는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삼성으로 대표되는 족벌기업의 권력들은, 노무현 정권하에서도 그 영향력을 꾸준히 강화시켜왔다. 2005년 노무현 대통령은 '권력은 이미 시장에 넘어갔다'는 말과 함께, 이들의 힘을 인정한 상태이다. 이들은 이미 언론사와의 혼인관계등을 통해 정-경-언을 아우르는 거대한 권력집단으로 성장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이 거대한 권력에 손을 댈것이라는 상상은 하기 힘들고, 이들 역시 정국 운영에 협조할 가능성이 높다.
-이상의 조건을 보면 이명박 정부는, 87년 민주화 이후 가장 강력한 행정부가 될것임을 유추할수 있다.

이 강력한 정부의 원칙은 무엇보다도 '시장 제일주의' 가 될것이다.
이명박 후보는 CEO출신답게, 이미 여러차례 친시장적 발언및 공약을 발표한바 있다. 특히 금-산 분리 법안의 폐지 (이것은 족벌기업의 순조로운 사업 승계를 허락한다) 가 대표적인 예가 될 것이다.
나는, 이명박 후보 집권이후 경제지표는 분명 긍정적인 형태를 보일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이명박 후보는, 국민에게 경제를 살리겠다면서 취임한 대통령이다. 경제지표가 좋아지지 않는다면, 차기 2012년 대선에서의 집권연장이 어려워지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특히 이명박 후보는 서울시장 재임때 강행했던 청계천 복원과 같은 공사들을 전국적으로 장려할 가능성이 높다. 그의 한반도 대운하 공약이나, 전국 주택 50만호 건설등의 공약을 보면 이는 쉽게 유추할 수 있다. 건설사업은, 대부분의 경제공황과 실업문제에 대해서, 가장 빠르게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올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또한 친시장적인 규제 철폐안은, 일정부분 기업활동을 원활하게 하고 수출을 증대시킬 수 있는 방안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 당장 경제지표가 상승곡선을 그리기 시작하면, 얼어붙은 소비심리가 회복될 가능성도 있다.

그런데 이 건설경기 호황 이후 발생하는 문제에 대해서 이명박 후보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나는 궁금하지 않을수 없다. 전국적으로 부동산 투기가 성행하는 가운데, 새로운 주택을 공급한다고 한들 누가 혜택을 얻을 것이며, 과연 고가의 주택에 대한 구매가 끝없이 발생할 수 있을까? 일본의 경제 공황 모델을 보면, 수요 없는 공급은 언젠가 한계에 부닥치기 마련이다. 현재의 부동산 거품이 어떤 식으로든 걷히는 시점이 오면, 그 파급효과는 겨우 부동산 가격의 폭락 정도에만 그치지 않을 것이라는 걱정이 든다.
(게다가 건설붐의 가운데에서 발생할 환경파괴의 문제 역시 간과하기 힘든 문제이다.)

이명박 후보의 복지 정책 역시 공약만 봐서는 나쁘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꾸준하게 법인세등 고소득층에 대한 세금을 줄이자는 주장을 해온 한나라당이, 적어진 예산으로 어느 정도의 복지 정책을 펼 것인지 쉽게 상상이 가지 않는다.
'시장 제일주의'가 결국 빈부격차의 확산을 가져온다면, 복지정책과 상관없이, 빈민층 비율은 높아질 것이다. 그렇다고 빈민층에 대한 지원을 늘리자면, 그 부담은 고스란히 중산층및 서민층에게 가중될 것이다.
이명박 정부의 '국민 성공시대' 모토는 과연 국민 모두의 성공으로 나타날 수 있을까?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7/11/28/2007112800937.html
위 기사는 얼마전 한창 논란이 되었던 총학 지지선언에 관한 기사이다.
철지난 자료이기는 하지만, 지지선언을 보면서 나는 엄청난 분노를 느낄수 밖에 없었다. 그것은 총학생회장들이나 한나라당에 대한 분노는 결코 아니었다. 지지선언의 전문중 한문장이 눈에 밟힌 까닭이었다.

지금, 대한민국은 '경제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 청년실업처럼 꺼져가는 희망들은 결국 정체된 한국경제에서 기인하므로, 경제를 살리는데 어떠한 이념과 가치충돌도 있을 수 없다. 이에 우리는, 이번 대선 후보군에서 한나라당의 이명박 후보만이 경제를 살려낼 최적임자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지지선언 전문중-

그들의 결론 도출방법에 문제가 있었다고 탓하고 싶지는 않다. 현실은 그만큼 암울하다. 하지만 어떤 암울한 상황에서도 지켜야할 원칙은 있다. 그리고 저 한문장은 그 원칙을 깡그리 무시하자고 외치고 있었다.

유감스럽게도, 대한민국은 파시즘적 전통을 가진 국가이다. 대한민국 국민인 이상, 인정하고싶지 않을 수도 있지만.. 박정희 정권은 분명 파쇼정권이었다.. 국시인 反共과 경제성장을 위해서는, 그야말로 어떠한 이념과 가치충돌도 허락되지 않았다. 노동자의 인권은 짓밟혔고, 농민은 그들의 노동력만큼의 소득을 가져갈 수 없었다. 그렇다고 해도 파이를 크게 하는 일은 당시 국민적 염원이었고, 그런 점에서 나는 박정희 정권의 공이 과보다는 크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공이 과보다 크다고 해서, 그 잘못을 용서해주자는 논리가 타당한 것일까? 짚고 넘어갈 것은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한다. 파쇼는 결코 특수한 집단이 아니다. 군대 문화와, 교내 체벌등 폭력과 복종으로 상징되는 질서들.. 우리 안에 어떤 의미의 파시즘적 성향이 내재되어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정말로 경제를 살리는데 어떠한 이념과 가치충돌도 있을 수 없는 것인가?
나는 이 지지선언문이 누구의 머리에서 나온 것인지 궁금하다. 이것이 우리 젊은이들의 수준인 것일까? 혹은 위정자들의 수준을 보여주는 것일까? 혹은.. 그저 일부 또라이 집단에 의한 반동적 사상일 뿐인 것을 내가 확대해석하는 것일까? (제발 내가 틀린 것이었으면 좋으련만..)

간접민주주의의 상징이라고 할수 있는 투표권을 뜯어보면, 한표한표의 힘은 그다지 크지 않다.
대의 민주주의의 한계- 실제로 권력은 국민에게서 나오는가?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권력을 감시하고 처벌하는 것은 누구이며, 그 행위가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는가? - 는 이미 여러번 지적된 문제가 아닌가.. 왜곡된 대의민주주의에 대해 과연 책임은 누가 지게 되는것인가? 지금까지 그 책임은, 모두 국민들의 몫이었다.

19일 밤 뉴스에서는, 투표율 60% 지지율 40% 정도로 이명박 대통령의 당선을 발표한다. 이 대통령은 5년간 국민의 뜻을 가장 잘 대변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선거에서 드러난 국민의 24%의 지지가 전부인것으로 착각은 하지 말아주었으면 싶다.. 나는 이번만큼, 지지율1위 후보에 대한 안티세력이 강한 선거를 본 적이 없다.
박영선 동영상을 보는 네티즌들을 모두 적으로 간주한다는 그들의 국정운영에 나는 쉽게 신뢰감을 가질 수가 없다. 설사 동영상이 불법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을 본 모든 네티즌들을 처벌해달라는 그 오만함은 도대체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감히 인터넷 공론장에서의 토론을 멈추려하는 그들의 오만을... 과연 무엇으로 다스릴 수 있을것인가?

결국 이명박 후보를 찍은 이상, (그리고 그를 증오하는 사람들도 역시) 자신의 선택에 대한 책임을 질 수 있어야된다. 그들이 가진자만을 위한 정책을 펼때,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의 고통이 된다. 이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는 한, 한국 대의정치의 미래는 없다고 단언할 수 있다.

이제 대선은 사실상 끝나버린 듯 싶다. 나의 바램과는 상관없이 이명박은 대통령이 될 것이고, 내년 총선에서 한나라당은 과반수 이상의 의석을 확보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아직 총선의 경우 희망은 남아있다. 안티 MB를 자처하는 세력이건, 혹은 이명박 지지자들 중에서도, 그들의 무한 권력을 견제할 수단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무능한 범여권이 싫을 수도 있고, 꼴통 주사파 하나 처리못하는 민노당이 싫을수도 있으며, 온라인에서 그들의 논리를 강요하는 문국현 빠들이 미울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개인적 호불호의 문제 때문에, 국가의 권력을 온전히 하나의 집단에 맞긴다는 것은, 진정으로 두렵고 또 두려운 일이다...


당신은 당신이 가진 권력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입니까?
그렇다면, 당신은 해야할 일을 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보여주세요.
이번 대선이건, 다음 총선이건, 누가 되고말고를 떠나서..
당신이 그 권력에 책임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세요.

늦은밤, 많은 사람들이 소통하고 움직이는 시대를 바라고 또 바라면서...
'감히' 이명박시대를 살아가기를 두려워해본다...

by Goldmund | 2007/12/14 04:33 | 트랙백 | 덧글(9)
밴드웨건효과: 대선에 관해 말하고싶은 이야기들

유행에 따라 상품을 구입하는 소비현상을 뜻하는 경제용어로, 곡예나 퍼레이드의 맨 앞에서 행렬을 선도하는 악대차()가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효과를 내는 데에서 유래한다. 특정 상품에 대한 어떤 사람의 수요가 다른 사람들의 수요에 의해 영향을 받는 현상으로, 편승효과 또는 밴드웨건(band wagon)효과라고도 한다.

미국의 하비 라이벤스타인(Harvey Leibenstein, 1922∼1994)이 1950년에 발표한 네트워크효과(network effect)의 일종으로, 서부개척시대의 역마차 밴드웨건에서 힌트를 얻은 것이다.

밴드웨건은 악대를 선두에 세우고 다니는 운송수단으로 요란한 음악을 연주하여 사람들을 모았으며, 금광이 발견되었다는 소식을 들으면 많은 사람들을 이끌고 몰려갔다. 이러한 현상을 기업에서는 충동구매를 유도하는 마케팅 활동으로 활용하고, 정치계에서는 특정 유력 후보를 위한 선전용으로 활용한다.


사례1. 이번 대선에서는 정말 뽑을만한 후보가 없어-?
뭐 그렇게 생각하는거야 유권자의 자유이다. 하지만 그렇게 말을 하면서도 결국에 투표를 할 생각이라면, 이런 생각은 지양할 필요가 있다. 이런 종류의 말은 정치불신과, 또다른 사람의 정치에 대한 무관심을 조장하고, 올바른 선택을 위한 정보수집을 게을리하는 효과를 가지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97년 대선을 보자. 주요 후보인 이회창. 김대중. 이인제3인을 생각하면, 누구를 뽑아야겠는가?
-IMF라는 엄청난 경제적 환란을 일으킨 신한국당 김영삼의 뒤를 잇는 이회창?
-DJP야합이라는 반민주적이고 반역사적인 행위를 저지른 김대중?
-당내 경선이라는 민주적 과정에 불복하고 독자적으로 출마한 이인제?
(한국사회의 대통령 후보는 언제든 완전무결했던 적은 없다. 유권자의 몫은 그중에서 나의 뜻에 가장 부합하는 사람을 대통령으로 만들어주는 일일 뿐이다)


사례2. 여론조사에서는, 1위후보와 2위후보의 격차가 실제보다 크게 느껴진다.
02년민주당경선- 노무현 후보는 광주의 한여론조사에서 대통령적합도 1위를 차지한다. 이후 당내에서는 노풍이 강하게 불고, 노무현은 결국 민주당 후보가 된다.
02년대선 - 정몽준 바람, 지방선거이후 이회창 대세론, 단일화 이후의 노풍등.
07년 한나라당 경선- 이명박 대세론, 여론조사에서는 이명박후보가 박근혜후보를 크게 앞섰다. 그러나 실제 당내에서는 박근혜 후보의 근소한 승리, 국민여론조사>당원조사라는 경선의 룰에 의해 이명박 후보가 신승을 거둔다.
현재까지의 판도- 이명박 후보및 한나라당의 거듭되는 실책에도 불구하고 지지율 격차는 쉽게 좁혀지지 않고있다. 여론조사에서는 부동층및 무응답자, 유선전화 미보유자의 의견이 크게 나타나지 않는다. 이 결과는 다시 부동층에게 전달되어, '소수 표본중의 이명박 지지'를 국민전체의 이명박 지지로 착각하게 만드는 효과를 가진다.

대한민국 정치를 종종 '여론조사의 정치' 라고도 불리워진다. 각 언론들은 판매부수를 위해 앞다투어 여론조사를 의뢰, 시행하고 있지만 조사자의 정치적 중립성에 대해서는 누구도 아는 바가 없다. 나는 어떤 음모론을 이야기하는게 아니라, 단순히 '중립이 아닐수도 있는 누군가에 의해' 조사된 결과를 믿고, 자신의 선택에 활용하는 것의 위험성을 경고하고 있는것 뿐이다. 마크트웨인은 가장 악랄한 거짓말가운데 하나로, '통계'를 얘기한 바가 있다.


사례3. 될 사람을 뽑아주자는 논리-
개인적으로 대선에 관한 여러 주장들중 가장 쓰레기로 취급하고 싶다.
대통령선거는 스포츠 토토가 아니다. 물론, 자신이 뽑힌 후보가 대통령이 되는것을 보면 뿌듯한 것은 인간 심리상 당연하다. 하지만 그 뿌듯함을 위해서 아무것도 알아보지 않고 지지율 1위를 뽑는다는 건 그야말로 말도 안되는 소리다.
연장선상으로, '군소정당에 대한 표는 사표이기 때문에 지지율2위 후보에게 몰아주자' 등 사표론의 논리도 이에 해당한다. (물론 지지율 2위 후보와 합의점이 있다면야 말이 안되는 얘기는 아니지만)
주로 보수층을 지지하는 나이많으신 분들에게서 많이 나타나는 현상이고, 사회적으로 보수 색채가 많이 남아있는 전라, 경상도에서 특히 심하게 보여지는 논리이다.


사례4. 허경영효과
현재 대선후보들중 허경영 후보의 인지도는 얼마나 될까?
내 주위를 비롯, 인터넷 사용계층에서는 '허경영 대세론' 따위의 글을 심심찮게 찾아볼 수가 있다. 물론 허경영 관련 게시물의 대부분은 정치적 성향과는 관계없는 유희의 차원에서 올라오는 것들이지만, 노출빈도가 높아지면 그에 대한 지지 역시 높아지는 것이 사실이다. 이 지지는 미약하나마 대선결과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도 있으며, 주요후보를 제외한 군소후보들은 더욱 약화시키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한국사회당 금민 후보가 허경영보다도 낮은 지지율을 얻는다는건, 아무리 생각해도 좀 쪽팔리는 일이다.
 허경영은 그저 하나의 광대일 뿐이다. 자기가 내야할 세금조차 체납하는 사람이 감히 대통령선거에 나와 유권자의 지지를 받는다는 것은 정치판에 대한 모욕이다. 물론 기존 정치판이 모욕당할 만큼 지저분한 곳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자유이다. 하지만 허경영 후보에 대한 지지로 자신의 정치판에 대한 조롱을 보여준다고 해도 얻어지는 것은 없다. 결국 그러한 정치판을 만들어낸 것은 국민들의 의식수준이다. 무관심과 침묵은, 협력의 다른 이름이 될 수도 있다.


반론- 밴드웨건효과 VS 언더독효과
밴드웨건효과에 대해 연구하는 학자들은, 밴드웨건 효과가 투표결과에 미치는 영향을 3~5%정도로 얘기하고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는 밴드웨건효과가 국민을 여론조사에 일희일비하는 존재로 격하시키고 있으며, 밴드웨건 효과의 낮은 영향력은, 언더독 효과에 의해 상쇄된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언더독효과란?  약자에 대한 연민이, 후보에 대한 지지를 결정하는 효과를 말한다

02년대선 전날, 정몽준 후보의 지지철회선언에 위기를 느낀 민노당원들이 노무현후보를 지지한 경우
-현재 인터넷상에서 일부 젊은 층에서의 이명박 지지자들은, 그의 추진력과 CEO이미지를 믿고있고, 이에 대한 네거티브를 펼친다고해도 이를 의식하기는 커녕, 자신의 의사를 강화시키는 경우가 많다. 안티 MB 세력 역시 중요한 것은 네거티브가 아니라 논리의 전개임을 놓치고 있다. (이는 상당부분, 범여권및 昌이 이명박 네거티브에만 힘을 쏟은 탓이 크다)



Goldmund의 결론- 밴드 웨건 효과와 신념에 관하여..

'친구따라 강남간다' 는 속담이 있다. 밴드웨건 효과는 비단 정치권에만 관련된 이야기가 아니라, 사회 전반에 관한 이야기이다. 다수에 대한 지지는 많은 경우에 있어서, 자신의 선택에 영향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한가지 고약한 버릇을 가지고 있다. 일정량 이상의 정보에 노출되면, 더이상의 정보수집을 거부한채 자신이 인지하고 있는 범위내에서 판단하려고 하는 인지적 게으름이 그것이다. 인지적 게으름 그자체는 惡이 아니다. 인간이기에 당연히 가지고 있는 성격이고, 이에 대해 선악을 논한다는 것은 뻘짓일수밖에 없다. 그러나 게으름이 개인의 덕목으로써 자랑거리가 아니라는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더욱 치명적으로, 게으름이란 것은 습관이 되고 생활이 되는 것이 보통이다.
다수의 의견을 따라간다는 것은 많은 경우에 있어서 유용한 해결책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가끔은 선택이라는 것이, 개인에게 절체절명의 위기를 가져올지도 모른다. 이런 경우 자신의 의견을 결정하는 것은, 결국 그가 가진 지성과 신념에 의해서 최종적으로 이루어진다.. 비록 신념이란 것 자체도, 그사람이 처한 환경에 의해 상당부분 결정되는 것이라는 문제가 있기는 하다. 그러나 원칙적으로 유권자의 한표는 그의 뜻을 가장 잘 대변해주는 후보에게 행사되어야 한다는 것을 생각하면, 누가 자신의 신념에 가장 부합하는 후보인지를 결정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다.

어쨌거나 나는 희망하고 있다.
12월 19일, 되도록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신념을 보여주기를.. 
by Goldmund | 2007/12/10 16:46 | 트랙백 | 덧글(10)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문국현을 지지하는 이유
만약 문국현이 대통령이 된다면 어떨까?

확실히 이글루스 내의 反 이명박 기류및 문국현 찬양은 지나친 감이 있다. 뭐 이명박이 까이는거야, 이유도 있고 재미도 있으니 당연한거라고 본다. 문제는, 이명박 지지자들을 그저 바보..? 로 몰아가는 사람들이 온라인상에서는 꽤 많이 보인다는 점이다;;;

물론 이명박 지지자들의 다수는 특별한 신념을 가지고 지지하는게 아니다. 항상 말해져오듯 조중동등 언론의 세뇌, TK (이명박씨가 정말 TK사람이라고 아는 사람이 의외로 꽤나 많다;;;) 지역의 한나라당 지지성향, 그리고 '잘살게 해줄거라는' 막연한 기대
비록 단순한 기대는 위험한 것이라고 하나, 경제대통령 이명박을 기대하는 사람들을 모두 바보로 몰아버리는 사람들은 도대체 누구에게 기대를 하고 있는것인가?

추석때 즈음 난 집에 내려갔다가 봉변을 당했었다. 문국현씨의 광적인(-_ -) 지지자인 엄마와 말싸움이 붙은것이다. 집안에서 꽤나 냉전이 이어졌다. 나원참, 추석때 용돈도 못받는데, 집안에서 대피하게 될줄이야;;;;;;;;; 여기서 어머니 흠이나 잡고 있는 아들이 되어버린듯도 하지만, 그분의 인식이 인터넷상의 소위 '문국현 알바'로 불리는 집단과 다르지 않다는 것이 그동안 내가 느껴온 바이다. 문국현씨를 추종(이 표현이 가장 알맞다고 생각한다..) 하는 집단이야말로 그들의 dogma에 빠져있다는 생각이 들수밖에 없었다. 문국현은 갑자기 하늘에서 내려온 구세주가 아니다

잠깐 노통 얘기를 해보자. 난 02년의 노무현 대통령을 (그때는 비록 투표할 수 없었지만) 믿고 있었다. 선거일 아침 갑작스런 정몽준의 배신에 놀란 사람들이 투표장에서 노무현을 찍었던 기억이 난다. 내 아버지는 권영길을 찍으려고 했었지만, 마지막에 노무현을 찍었다. 국민들은 그때 노무현을 무엇으로 인식했던 것일까? 그때 노무현을 찍었던 사람들은 지금 무엇때문에 그를 욕하는 것인가?
개인적으로 이번 삼성 비자금 수사와 관련한 노통의 태도에 정떨어져 버리긴 했지만, 난 노통을 꽤 좋아한다. 노무현 정부의 경제 지표만 봐도, 부동산 이외의 경제 지표는 나쁘지 않다는게 정설이다.(물론 부동산 크리가 굉장히 크지만, '이게 다 노무현 탓은 아니다' 실물 경제가 나쁘다고? 경제 학도가 아니기에 단언은 못하지만, 난 이렇게 말하고 싶다. 실물 경제가 나빠진게 아니라 당신들이 경제를 보는 눈이 달라진거라고 ! 대부분의 사람들은 IMF직후나 지금이나 가난할뿐이다. 중산층은 이미 IMF로 인해 분해되었다. 핵심 중산층에 속하는 국민들마저도 자신을 하층민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좌파 정부'가 경제를 망쳤다는 식의 비아냥을 듣고 있다. 이건 경제의 문제가 아니라 인식의 문제라고 할 수 밖에..
그렇다면, '깨끗한 경제대통령 문국현' 이 집권한 세상은 유토피아가 될까? 정말? 난 그렇게 생각 못하겠는데 말이지...

-문국현 대통령이 겪게될 시행착오에 대해서는 트랙백된 원본 글로 대체합니다. 노통 이상의 견제속에, 그가 할수있는건 없겠죠..;;

말이 길어져서 말인데, 단언코 '이명박'이 절대 악의 축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惡이라는 것의 대상은 명확하지가 않다만, 나는 적어도 현 정치권에서의 惡을 이렇게 정의하고 싶다. '民意가 아닌것을 민의라고 생각하고 실행하는 집단'

사실 난 신방과 학부생이고, 국민의 진정한 정치참여에 대해서 전혀 달콤한 상상 따위는 하지 않는다. 민의라는 것은 추상적인 개념에 가까울뿐, 정의가 아니다. 오히려 한국 국민의 정치의식은 매우 저열한 것이며, 서구 시민 사회의 전통을 따라잡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생각하는 쪽이다. 
게다가 일본의 전공투세대 이후와 같이, 한국의 포스트 386은 그때에 비해 사회변혁의 열정을 잃었으며, 한국이 결국 일본을 닮아갈 수 밖에 없을까봐 크게 두려워하고 있다. 저 탄핵반대 시위 이후의 한국에는, 더이상 열정도 담론도 없다는 것이 침통할 뿐이다.

그러나 나는 아직까지 한국사회에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가능성이 남아있다고 믿고있다. 선거라는 것은 결국 사표 논쟁이건, 차악을 뽑느냐마느냐 하는 얘기건 간에 '민의를 대변하는 행위' 이다. 난 언제까지나 한국사회가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는데 도움이 되고 싶고, 그러기 위해 민의라는 것을 쫓을 것이다.

민의가 '경제 대통령'을 요구한다면 그것은 받아들여야할 일이다. 그렇다면 지지율 1위를 달리는 이명박 후보가 왜 정의가 아니냐고 누군가 물을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오히려 이명박 지지자들에게 묻고 싶다. 인터넷상에서 지지선언조차 함부로 하기 힘든 이명박 후보가 과연 민의를 담고 있느냐고, 장애우와 여성과 서민들을 무시하는 수많은 말실수와 대운하공약이 국민의 뜻이냐고. 국민이 아직도 부의 분배에는 관심이 없으며 부동산 가격이 올라가고 보유주식이 뛴다고 춤추는 사람들로만 보이냐고. 자기집, 자기차, 자기땅이 없는 진짜 서민들은 전부 호구로 보이느냐고!!!! 뉴라이트-신자유주의가 해답이 될수 없다는것은 이미 현실이다.
이명박씨의 도덕성을 가지고 그를 까고 싶지 않다. 그거야 이미 정동영씨를 비롯해서 수~많은 후보가 하고 있는 짓이니까 말이다. (물론 문후보도 마찬가지) 어차피 정치인들의 도덕성이란 난형난제이다. 그래도 한가지 언급하자면, 적어도 이명박 후보의 '대국민 사기극' 정도가 가장 심하다는 것일까? (난 체사레 보르자나 나폴레옹을 굉장히 좋아한다. 그들이 도덕이라고는 모르는 공포정치를 시행했고, 수많은 사기를 쳤을 지언정, '이탈리아인''프랑스인'들을 상대로 사기극을 벌인 적은 없었다. 백성들은 그를 사랑했다. 지금의 시선에서는 몰라도, 그때의 그들은 분명, 민의를 등에 업은 정치가였다.) 
민의를 얻지못한 지지율 1위후보... 내가보는 이명박후보는, 냄새나는 인공하천 하나와, 소통없이 강행한 GRYB개혁 둘로.. 노무현이 잃어버린 지지의 반사세력을 얻고 있는, 실체가 없는 허상에 지나지 않는다.
-정동영, 이회창 후보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하고, 언급하지 않겠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난 이번 대선에서, 문국현 대통령을 지지하는 것이 아니다. '문국현 후보'에 대한 지지가 국민의 뜻을 조금이라도 대변해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문국현 후보측 역시 이번 대선보다는 내년 총선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다고 하니, '허경영 킹왕짱' 따위의 조롱성 리플을 날리기 보다는 문후보에게 한표를 행사하는게 낫지 않을까?

비록 이렇게 글을 쓰는 나역시도, 민의가 정말로 무엇인지는 모르겠다. BBQ 치킨이 맛있건 없건 이명박이 될지도 모르겠고, 미끄러진 이명박을 상대로 이회창 후보가 역전승을 거둘지도 모르겠다. (어차피 별 차이는 없다고 본다.. 이명박이 좀더 다이나믹하게 빈부격차를 늘려줄지도 모르려나? 쿨럭...)  아무튼 난 기존 정치권의 '민의가 아닌것을 민의라고 착각하는' SHOWTIME에는 완전히 지쳤다. 결국 국민 다수가 가지고 있는 민의는, 기존 정치권에 대한 조소. 그리고 그이상으로, 좀더 나은 사회를 만들고자 하는 이상! 그것이 아니겠는가.. '민의가 아닌것을 민의로 왜곡하는 사람들을 처벌할수 있는것'.. 그것이 진짜 민의이고, 언젠가 우리 국민들이 해낼 수 있는 일이라고 나는 믿는다.

선거는 carnival, 축제이다. (무한도전보다, 돌발영상이 더 재밌다!) 국민들 모두 자신의 뜻을 마음껏 보여주며, 축제를 즐겼으면 싶다는 원론적인 얘기와 함께 글을 마치고자 한다.


- 별 내용도 없는 장문의 글을 읽어준것에 대해 감사하고 죄송스럽다.
그동안 꽤 진지하게 기권 혹은 투표 포기를 고려해보았지만 (이건 정말이다-_-) 이제서, 문국현 후보에 대한 한표를 결정했기에 조심스레 포스팅을 해본다.


-그런데 정말 상호 소통하려는 마음도 없이 문국현 짱! 깨끗한 대통령 문국현! 을 외치는 사람들은 정말 반성좀 해야 하지 않을까?특히나 그 가르치지 못해 안달난 선생님같이 거만한 말투로, 무지몽매한 자들을 교화해야할 사명감에 넘치는 사람들...
혹시, 지능형 안티가 아니라면 말이다.
by Goldmund | 2007/12/03 19:34 | 트랙백(1) | 덧글(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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