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그 : 진중권
2009/01/16   100분 토론, 야후 끝장토론 보고 [4]
2007/08/11   발가벗은채 북을 치는 지식인의 슬픔에 관하여- 예형과 진중권 [7]
100분 토론, 야후 끝장토론 보고
개인적으로 100분 토론은 이제 토론 프로그램의 자격을 상실했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간단하게 말해서 토론 프로그램이 MBC간판 개그프로그램(정말?)인 '개그야' 보다 재미있다는 유머가 떠돌아다닌다는게 정상인건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한국에 질과 영향력을 동시에 갖춘 토론 프로그램 자체가 부재하다보니 그 이름값을 이어가는..그런 느낌이다.
오늘만해도 패널 섭외 자체가 심각하게 시청률을 노린 섭외였고 (특히 전원책 변호사같은 경우), 양쪽의 분배및 포지셔닝조차 제대로 되지않은, 좋은 토론이 될수 없는 한계를 타고 났다고 보는게 맞다.

전원책 변호사같은 경우엔 TV 토론 프로그램에 나올 역량이 안된다는 느낌. 그러니까 법조인으로써 살아온 만큼의 자기확신이나 가치관이라던가 말빨은 서있긴 한데 말이지. 그게 토론용으로 적합한가 하는 측면에선 낙제점 수준이다. 뭐 이 부분이야 지적하는 사람이 워낙 많은지라 생략. 어쨌건 이제 100분토론에서 다시 보지않았으면 좋겠다. ( 뭐 여전히 전원책 하악하악 하는 인간들이야 많겠지만 말이지;;;)
진중권 같은 경우는 토론스타일이 정말 짜증나는 것만은 사실이다. 뭐 그런 스타일이기 때문에 논리적으로 약점을 파고드는 순간의 전투력이 좀더 쎌수 있을수도 있긴 하지만, 이게 토론본좌쯤으로 인정되는것도 확실히 보기 좋은 일만은 아니고..
나머지 분들에 대해서는 별 언급할 거리가 없다. 다만 그 시립대 교수님은 좀 불쌍하다는 느낌이 들었을뿐-_-;; (같은편이 전원책인데 출연한것 자체가 자업자득...인건가)

100분토론 보고 있다가 답답한건 그런 부분이다. 소위 흥행을 노리는 섭외를 하더라도 항상 하는게 그런거다. 아니 토론 프로그램나와서 법정 분위기로 법리해석가지고 싸우면 어쩌자는 건가. 배경 지식으로만 간단하게 언급하는거면 모를까, 길게 싸워도 답이 안나오는걸 가지고 길게 싸우고 있는 겅미. 뭐 뚜드려맞아야할 한나라당 정치인이 안나온 이상 답이 없는 문제라고 쳐도 말이지. 법리 해석으로 가면 안되는 문제잖아. 핵심은 '미네르바' 구속이 아니라 미네르바 '구속' 인건데 말이지.


지금 야후에서 끝장 토론을 보면서 중간 중간 포스팅 하는중인데, 확실히 싸움을 한다고 쳐도 MBC 100분 SHOW 보다는 확실히 수준이 높아보인다. 얘기하는 범위도 다양하고, 역시 TV가 아닌 인터넷이란 매체가, 그리고 끝장토론이 스타일상 좋은 부분.

앞부분은 많이 놓치기도 했고, 그닥 새로운 부분도 없는 내용이긴 한데, 다만 변희재가 몇년전부터 지속적으로 주장하고 있는 포털사이트의 뉴스독점 부분과 같은 인터넷의 질서 기준 정립에 대해서는 짚고 넘어갈 필요는 있다고 본다. 물론 나로썬 변희재씨 주장인 '스탯을 보면 조중동의 오프라인 신문시장 지배력 이상의 문제다' 라는데는 동의하지 못하지만 말이지.. 포털사이트사의 영향력 자체가 강대한 이상, 이부분에 대해서 명확하게 언론사와 포털의 경계를 정해둘 필요는 있다는 느낌이다. 물론 굳이 이게 지금 미네르바구속토론에 왜 튀어나와야되는가 하는걸 생각하면 조금은 황당한 얘기긴 하지만 말이다 (진중권도 그렇지만 변희재도 키워 근성이 참 가득한 분이다 보니...)

나로써는 진중권씨의 '인터넷은 자정작용에 의해서만 깨끗하게 돌아갈수 있다' 는데 완전히 동의하기가 힘들다. 어느공간이건 나름대로의 질서를 잡아주는 사람 혹은 상식은 필요한 법이다. 그렇다면 일단 인터넷 상의 자유를 억압하려는 시도의 부당을 지적하기에 앞서서 현실상의 억압에 대해 지적을 언제나 선행해야 하는게 아닌가 싶다.
토론중 진교수가 말한것처럼 인터넷 실명제를 왜 할필요가 없느냐 - 주민등록번호를 통해 어느 국가보다도 개인의 신상을 알아내기에 유리한 환경이기 때문이다- 와 같은 논리의 사회적 공론화 말이다.


어제 백분토론 시청중 계속 느낀건데 말이지. 이거 한마디 속시원하게 지적하는 사람 없다는게 정말 아쉬웠다.
" 청와대가 1년간의 경제지표를 유리하게 만들어내기 위한 환율 관리를 할떄, 이걸 이용해서 환차익을 얻으려하는 개개인에게 당신은 공익을 해쳤소! " 라고 말하는게 과연 옳은걸까?  (청와대의 경제지표 조작은 확실히 공익이라는 목적을 위한 최고가치의 수단에 해당하는가?)
정말이지 한국은 자유주의 국가를 추구하는 주제에 민족주의, 그 이상으로 국가주의가 너무 심한 나라다. 그런 기분에 새삼 어제 밤 내내 기분이 나빴다.
by Goldmund | 2009/01/16 18:16 | 트랙백 | 덧글(4)
발가벗은채 북을 치는 지식인의 슬픔에 관하여- 예형과 진중권

삼국지는 엄밀히 말하면 고전으로 보기는 어려울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삼국지가 고전으로 취급받을수 있는것은 그 서사의 장엄함과 함께 등장인물의 다채로운 매력때문일 것이다.
그중 '정평 예형'은 잠깐스쳐가면서도 꽤나 강렬한 인상을 준다. (닮은 꼴로는 양수가 있다)

어진 사람과 어리석은 사람을 알아보지 못하니 눈이 혼탁해졌고
글을 읽지 않으니 입이 탁해졌고,  충언을 안들으니 귀가 탁하고,
고금사를 모르니 몸이 탁하고,  제후를 용납하지 못하니 배가 탁하고 항상 역적질을 생각하니 마음이 탁하고,  나같은 천하명사를 북치기로 채용하니 그 오장육보가 썩어 문드러진 것이다

-발가벗은채 북을 치며 예형이 조조에게 날린 일갈-

 
이사람이 자의식 과잉인것만은 분명하다. 재야에서 이름을 높이던 예형의 나이 25, 인재 욕심이 있는 조조는 이 콧대높은 선비를 자기휘하에 들이고 싶어했을 것이다. 그러나 예형에겐 애시당초 그럴마음이 없었던 것 같다. 글속에서 사는 선비는 한나라의 존속을 원했던것 같다.

 
문장속에서 빛나는 재능과, 현실에서 실천하는 재주는 다르다. 조조는 문장속에서만이 아니라, 지극히 현실적인 지식인이다. 사람 볼줄 아는 군주, 조조가 예형의 한계를 못 꿰뚫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 모욕을 당하면서까지 데리고있어야만 할정도의 재능은 아니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거기다 조조는 기본적으로 자신의 지적 수준에 대해 굉장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무장에 대한 그의 대접과, 문사(책사와는 다르다)에 대한 그의 대접이 달랐던 것에서도 이런 부분은 여실히 나타난다.(그리고 그의 이런면모는 뒤로 갈수록 심해진다.. 사람은 늙을수록 완고해진다)

조조와 맞붙은 예형 쪽은 또 얼마나 오만한가. 예형이 원래 유명해진 이유도 상대를 가리지않는 독설과 그 꼿꼿한 성품에 있었다고 한다. 그 꼿꼿함은 결국 조조및 그 휘하의 모든 장수와 책사들을 깔아뭉개는 안하무인이 되고만다. 안하무인의 독은 결국 그의 죽음까지 빠르게 치닿게 만든다. 이후 그의 말로는 그다지 언급할 가치가 없을 것이다. 사자로 보내진 유표의 진영이나, 황조의 앞에서 한 행동은.. 현실의 독함에 꺾여버린 지식인의 죽음에 대한 발광 수준이었던 것 같다. 그는 그렇게 강한 사람이 아니었을 것이다..

예형은 조조의 앞에 무슨 생각으로 갔을까. 그는 과연 조조에게 이길 자신이 있었을까. 정확히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역사의 기록도 왜곡되어 있기에, 후세 사람들은 그저 추측할 뿐이다. 내가 예형이라면 어땠을까. 아마도 이길수 없는 싸움 앞에서 지식인은 발가벗은채 북소리를 울렸을 것이다. 어차피 그는 모욕을 당하면서 살아남는다는 것을 포기했을 것이다. 어쩌면 혼탁한 세상을 욕하며 살수밖에 없는 자기의 인생이 지루했을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그래서 그는 죽음을 선택한다.

 제목에서부터 알수 있듯이, 내가 지금에 예형을 떠올리는 것은 100분토론에서의 진중권씨 때문이다. 진중권씨는 토론에 나가면서 무슨 생각을 했던 것일까. 지금 진중권에게 테러를 가하는 네티즌들은 어차피 이길수 없는 상대라는 점에서 조조와 비슷하다. 이길수 없는 상대와 맡붙는 지식인은 슬프면서도 오기를 부리게 된다. 그리고 가끔은 이것이 아집이 되기도 하고..

토론을 본 바로, 디워 찬성 측의 논리는 진중권씨의 논리에 압도당했다. 이건 기본적으로 디워 찬성에 대한 논리가 굉장히 빈약한 탓이다. 애시당초 한국이란 시장에서 1000만이 보는 영화가 나오고, 지금속도의 흥행이 가능하다는것 자체가 우스운 일이다. 물론 애국심은 나쁜게 아니다. 그러나 애국심이 '영화의 작품성을 평가하는 잣대'에 포함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게다가 디워는 '평론가들이 보기에는' 당연히 서사가 엉망인 영화다. 300이나 트랜스포머나 반지의 제왕 등은 원작이 있다. 그의 말대로 단순한 서사와 '너무도 우연적이어서 딱히 평론할만한 가치가 없는' 영화는 아니다. (그 여자방청객의 경우에는 '그닥 평론할 의향이 안생기는' 이라는 표현을 '평론할 가치가 없는'으로 둔갑시킨채 자기할말만 하고 논리의 대응을 받아들이지않는 태도는.. 좆선일보나 '리타 스키터'를 떠올리게 하는 편집술이었다.)

진중권씨는 처음부터 그렇게 이성적으로만 토론하지는 않았다. 그는 원래부터 자의식, 자부심이 강한 사람이다. 마지막에 그가 감정적으로만 대응했다고도 하는데, 원래 토론자체는 감정없이 이성으로만 성립되는 것이 아니다. 물론그가 토론장에서 보인 태도는 적절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마지막까지 자신이 생각하기에 옳은 말을 했다. 그가 어떤 태도로 말을 했건 간에 그는 '그의 표현대로 아그들'을 상대로 승리하지 못할 것을 알았을 것이다. 현재 그에 대한 테러 역시도 그의 논리에 대한 테러가 아니라, 그의 실수에 대한 말꼬리잡기와 토론태도에 대한 감정적 비판이 주를 이루고 있다. 나역시도 예상했던대로 '비정상적으로 정상적'이다.

상식적인 말을 1대1로 들려주면 그것은 개인을 상대로 효력을 발휘할수 있다. 하지만 그 개인이 집단이 되고 군중이 되었을때, 개인은 논리의 비약을 가지고도 당당하게 행동하게 된다. 그런면에서 '개인은 똑똑하지만 대중은 바보다' 어떤 측면에서는 400만 관객은 좀비보다 무서울 수 있다. 아니, 원래 사람은 좀비보다 무섭다.

나는 그를 동정한다. 예형을, 진중권을, 이길수 없는 세상을 상대로 그 논리를 펴고자하는 지식인의 정신을 동정한다.
작금의 사태는 소위 '지식권력'에 대한 일반 대중들의 아니꼬운 시선이 작용하여, 계급간의 전쟁을 방불케 한다.
지식권력의 오만이 도를 넘을때도 많다. 하지만 이번 경우 지식인 개인이 그 지식의 오만을 공격하는 대중을 상대로 지금 승리할 확률은 0에 가깝다. 그래서 난 블로그에서까지 악플러들을 약올려야하는 그를 동정한다.

그것은 개떼이즘속에 변질되어가는 이오공감을 매일매일 보면서, 이렇게 읽히지도 않을 글을 쓰고야 마는 것이 나역시도 개떼들의 일부가 되고싶지 않다는 '자의식 과잉' 이기 때문이겠지....후우;;;;;

by Goldmund | 2007/08/11 16:53 | 트랙백 | 덧글(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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