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그 : 촛불
2015/04/21   08년 촛불의 확대는 광우병 때문이 아니었다 [48]
2011/06/08   반값 등록금, cool하게 떠드는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6]
2008/12/28   광화문 십자로에 대한 기억 [2]
2008/06/27   잘못되어간다는것은, 언제까지나 잘못되었음을 뜻하는것은 아니다 [4]
2008/06/12   깔건 까고 넘어가자는게 결벽증? 까고있네 [8]
2008/06/02   시위 참가 후기- 중요한건 불법과 폭력이란 사실이 아니라 그 정당성과 역사의식에 관한것 [3]
08년 촛불의 확대는 광우병 때문이 아니었다
보수언론과 수꼴들이 자꾸 08년 촛불정국을 '괴담'에 '선동'당한 사람들의 헛짓거리 정도로만 취급하고, 이런 인식이 포탈사이트등을 통해 꽤 광범위하게 퍼져있는데

촛불정국이 심각해진건 광우병 때문이 아니라 경찰의 과잉진압을 비롯한 민주주의 위기론이 생겼기 때문이었습니다.



관련 논문 자료에서 일부 인용하자면


http://academic.naver.com/view.nhn?dir_id=1&unFold=false&sort=0&query=%EA%B4%91%EC%9A%B0%EB%B3%91+%EC%A7%84%EC%95%95&gk_qvt=0&citedSearch=false&field=0&gk_adt=0&qvt=1&doc_id=56396219&page.page=1&ndsCategoryId=110


이를 위해 2008년 촛불집회에서 등장한 운동의 프레임을 크게 ‘먹거리 위기 프레임’, ‘민주주의 위기 프레임’, ‘공공성 위기 프레임’의 세 가지로 개념화하고, 전체 운동의 전개과정 속에서 각각의 프레임이 주류화 되는 양상을 ‘출현’, ‘내용’, ‘조직연계’, ‘과정’의 네 가지 차원에서 분석하였다. 
첫째, ‘먹거리 위기 프레임’은 촛불집회의 초기 국면에 부각된 프레임으로서, 한미 쇠고기 협상의 타결 전후로 형성되기 시작하여 MBC 의 방영 직후 참여자들의 동원을 효과적으로 이끌어냈다. 광우병 위험에 대한 불안감과 먹거리주권의 수호를 그 주요 내용으로 하며, 여러 시민단체들과 인터넷 까페, 야당으로 구성된 ‘광우병 국민대책회의’의 발족과 함께 프레임 연결의 과정을 거친다. 
둘째, ‘민주주의 위기 프레임’은 촛불집회의 확대와 함께 부각된 프레임으로서, 졸속적인 한미 쇠고기 협상 과정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하였다. 이는 정부의 재협상 불가 방침에 분노한 참여자들이 첫 거리시위에 나서고 이를 경찰이 과도하게 진압하면서 전면적으로 부상하는데, 87년 6월항쟁에 대한 회고와 맞물리면서 프레임 증폭의 과정을 거친다.
셋째, ‘공공성 위기 프레임’은 촛불집회의 확장과 더불어 부각된 프레임이다. 근본적으로는 정부의 신자유주의적 정책들에 대한 비판적 인식으로부터 비롯되었으며, KBS 특별감사와 함께 가시화된 정부의 이른바 ‘공영방송 장악’ 움직임에 의해 활성화되었다. 이는 광우병 국민대책회의가 ‘1+5 의제’를 공식적으로 채택함으로써 명확해졌는데, 여기에는 공영방송 사수뿐만 아니라 의료 및 공기업 민영화 반대, 물 사유화 반대, 교육자율화 반대, 대운하 반대 등의 내용이 포함되었다. 이것은 신자유주의에 대한 대중적 문제제기와도 같았다. 이러한 ‘공공성 위기 프레임’은 거리에서의 대국민토론회와 인터넷 공론장을 통해 프레임 확장의 과정을 거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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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회의 초기단계에서 가장 핵심의제는 분명 광우병이 맞았습니다. 확실하지 않은 광우병 위협에 대한 공포가 사회적으로 심했고, 동시에 그 확실하지 않은 위협을 막지 않은 정부에 대한 분노(검역주권 포기)가 시위의 핵심이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다만 당시 집회의 규모는 아무리 커도 1만명을 넘지 않는 규모였습니다. 시위가 한달 내도록 지속되었지만 사회적인 관심도 역시 그 뒤의 시기와는 명백히 차이가 있었습니다

비록 신뢰도에 문제가 있긴 하겠지만 위키백과의 당시 집회 관련 일지에도 기록이 있습니다.http://ko.wikipedia.org/wiki/2008%EB%85%84_%EB%8C%80%ED%95%9C%EB%AF%BC%EA%B5%AD%EC%9D%98_%EC%B4%9B%EB%B6%88_%EC%8B%9C%EC%9C%84#2008.EB.85.84_5.EC.9B.94


저는 개인적으로 이 단계에서는 광우병 의제에 별로 공감하지 않았기 때문에 집회에 나가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제가 집회를 나가게된 계기는 5월말에 있었던 경찰의 과잉진압 이슈가 터지면서부터였습니다. 이 시기 집회의 규모는 1만명 수준에서 5만 이상으로 늘어났습니다. 광우병 이슈에는 소극적으로 반응하던 저같은 사람들이, '민주주의'와 '경찰의 폭력'에는 훨씬 민감하게 반응했기 때문입니다. 
시위대의 규모가 커지고, 경찰에 대한 분노가 커짐과 동시에 시위양상이 과격해지기 시작한것도 이시기부터입니다. 처음부터 유언비어에 낚인 사람들이 과격시위를 벌인게 아닙니다.


시위가 수십만명이 참가할 정도로 규모가 불어난 다음 1+5 의제라는게 채택되고 공영방송 사수, 민영화반대와 4대강 반대같은 이슈들이 광우병 못지 않게 커다란 이슈가 되었습니다. 나온 사람들이 전부 광우병 때메 나온게 아니라 다들 생각이 달랐던 겁니다. 특히 저같은 경우 신방과 학생이었기 때문에 저희과 전체가 공영방송 관련 이슈로 한강 건너서 행진하기도 하고 그랬습니다.


집회가 커지고 사람이 많아지면 어떤 집회를 가더라도 여러가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모이기 마련입니다. 구호도 다양해집니다. 그건 '순수하지 않은' 게 아니라 당연한 현상입니다. 


애초에 순수한 추모를 얘기하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당시 순수하게 광우병이 걱정되어서 갔다는 사람들은 유언비어에 낚인 좀비 취급하고, 광우병 관심없고 민주주의 위기 프레임때문에 광장에 나간 저같은 사람들은 '시위꾼' 취급하실건데 대체 원하는게 뭐냐구요. 그냥 시위 하는거 자체가 싫다고 솔직하게 얘기하시죠?
by Goldmund | 2015/04/21 00:00 | 트랙백 | 덧글(48)
반값 등록금, cool하게 떠드는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도대체 왜?

예전부터 자기반성할 일을 많이 만들어줘서, 재밌게 보던 블로그의 글인데, 이오공감에 올라있는 포스팅에는 동의하기 힘들어서 이렇게 트랙백한다.

나는 지금의 반값등록금 운동에 찬성하는 것만은 아니지만
그래도 집회에 갔다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미국산 쇠고기 문제때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광우병 위험이 다분히 과장된 수사임을 알고있었지만
그래도 광화문으로 향했었다. 이것은 나혼자만의 예가 아닌, 보편적 사례였을 것이다.

미군 장갑차사건은 내가 경험하지 못한 사건이니 차치하고서라도, 광우병때는 '기획되지 않은 자발적 촛불' 이었다는 분석에도 동의하지 않는다. 내게 있어 '자발적 촛불'이라는건 오히려 파괴해야할 신화라고 생각된다. 물론 작금의 대중 운동이 08년 촛불의 모방을 의도하며 기획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며, 비판하는 것은 타당하다. 그러나 애초의 대중운동은 기획없이 이뤄지지 않는다. 기획 의도와 자발적 참여가 중첩될 경우, 기획한 주체가 사라지면서 방향성이 바뀌기 때문에 그렇게 보일 뿐이다. 이것은 반값등록금의 사례에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의제만 봐도 그렇다. 장갑차사고와 광우병 쇠고기, 이슈 자체도 소모적이고, 감성적 대중동원의 성격을 띌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에 비하면 반값 등록금이라는 의제는 사회적 공론의 위치를 확보했다 할수있고, 현재 집회에서 요구하는 내용 역시 예전의 촛불 보다도 더욱 건설적이다.

반값등록금에 대한 숙의는 물론 이루어져야한다. 그러나 올초 카이스트의 징벌적 등록금을 비롯해서, 등록금 이슈가 의제로 다뤄지기 시작했을때, 언론의 반응은 어떠했나? 등록금문제는 결코 보편의제로써 다뤄지지 못했다.
이제까지의 등록금 투쟁은 기본적으로 개별 학교내부에서만 이뤄졌고, 학교본부대 총학(운동권)의 구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상위권의 몇몇 사립대학교에서 사학재단이 '경쟁력'을 이유로 일방적으로 등록금을 인상하면, 다른 사학재단이 따라서 등록금을 올린다. 총학은 이에 항의해서 단식도 하고 삭발도 하고 본관점거도 하고 난리를 피운다. 그럼 학교본부는 선심쓰듯이 학생들에게 몇만원을 돌려주고, 등록금에 대한 저항은 동력을 잃는다. 그리고 이런 일이 매년 반복되면서, 일상화된 등록금 투쟁은 학생들의 지지를 잃고 말았다. 이 과정에서 학생사회들 사이의 연대는 없다. 이러한 구도는 기본적으로 국립대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현재의 반값등록금 운동은 이런 구도를 깼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기본적으로 개별 학교에서 벌어지는 경제주의 투쟁의 한계를 극복하고, 구조를 공격하면서 보편담론을 위한 투쟁으로 나아간 것이다. 이미 등록금 집회는 장기화 국면으로 향하고 있고, 20대 사이에서 점점 화제가 되어가고 있다. 기본적으로 등록금 투쟁은 총학(운동권)대 학교본부의 구도에서 이뤄질 수 밖에 없는 회의론(그게 바로 나였다)자들을 무색케 하는 결과이다.

지금까지 오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그리고 절대로 숙의만으로, 반값등록금이 상징하는 '사람의 재생산을 위한 사회적 배려'가 공론이 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이는 역사의 교훈을 되짚어보는 것으로 충분하다. 도대체 운동없는 숙의가 대중을 향했던 적이 있는가?! 운동없는 숙의는 대중에게서 나오는것이 아니다. 이는 기본적으로 지적 엘리트주의의 산물이며, 관료들이 대중을 체제 내부로 포섭시키기 위해 제시했던 당근들을 먹음직스럽게 포장해놓은것에 불과하다. 결국 세상을 바꾸는 것은 운동없이는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반값 등록금운동은 여전히 유효성을 가진다. 다만 운동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들 속에서 운동권이 향하는 방향성이 문제가 될 뿐.

동맹 휴업 소식을 들었다. 한신대, 고려대, 서강대, 이화여대, 숙명여대 모두 결국 한대련이 영향력을 지닌 학교들이다. 이들이 선택한 동맹휴업이라는 방법에 대해서 나는 우려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기본적으로 학생사회 연대 방안으로서 동맹 휴업이 가지는 상징적 유효성에는 동의한다. 하지만 지금은 기말고사의 기간. 동맹 휴업이 과연 각자의 학교 내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의 참여를 얻어낼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생각이 든다. 그리고 한대련 이외의 다른 학교 총학들과의 연대 동맹 휴업이 가능할 것인가? 에 대해서도 역시 부정적이다.

서울대 본부 점거의 사례를 보자. 이들 역시 동맹 휴업이라는 방법을 고민했지만, 현실적으로 학우들의 지지를 얻을 수 없다는 판단에서, 역풍을 각오하고 본부를 점거하는 결단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점거된 본부 안에서 학생들은 과제를 하고, 기말고사를 공부한다. 혹자는 이것 역시 체제 내에의 자진 포섭이라고 비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좋은 '학점'을 따내야하는 내면의 갈등은 현실이다. 반값등록금운동은 이 공부하는 학생들을 배제하고 진행되어서는 안된다.

과연 한대련 쪽에서는 6월 10일 이후의 반값 등록금 운동에 대해 어떠한 계획을 가지고 있는가? 애초에 집회를 기획한 것도 11일까지로 한정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지금은 개별 학교에서의 동맹 휴업 따위에 힘을 낭비할 것이 아니라, 운동을 더욱 장기적으로 이끌어나갈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해야할 시점이다. 현재 MB정부가 레임덕 상황이고, 내년의 총선과 대선을 위해서 복지담론이 계속적으로 제기되는 현재의 상황은 분명 호재이다. 기말고사라는 시간을 극복하고, 방학때까지도 장기지속되면서 관심있는 대학생들을 끌어모을수만 있다면, 반값등록금 운동은 또다른 국면으로 나아갈 수 있다.

한대련쪽에서 과연 얼마나 고민을 하고 있을까? 이제까지의 운동이 가진 관성을 탈피할 수 있을까? 걱정은 된다. 부정적 조짐들도 보인다. 하지만 나 역시 원자가 되는것을 거부하지는 않으리라. 6월 10일, 광화문에서 많은 얼굴들과 마주하기를 기대해본다.
by Goldmund | 2011/06/08 16:24 | 트랙백 | 핑백(1) | 덧글(6)
광화문 십자로에 대한 기억
친구들과 밤새 술을 먹고 6시쯤에 집에 들어왔다. 언제나처럼 지나다니던 거리로..

광화문 사거리에 대한 기억은 왜인지 일을 마치고 깊은밤이라던가 오늘밤처럼 동트기 전의 이미지로만 기억된다. 생각해보면 분명 낮이라고 여길 지나다니지않을리는 없는데 말이지. 아무래도 사람이 버스안에서 창밖을 바라보는건 밤에 혼자 다닐때 더 많다..라는 이유에서일까.

세종로및 광화문사거리 인근에 대해 좋은 기억은 딱 2가지가 기억난다.
첫번째 충격은 택시를 탔는데 세종로에서 기사가 150넘게 밟는 순간... 이건 농담안보태고 뻥뚤린 대로를 날아가는 기분이 들더라;;; 그야말로 십초정도의 짧은 순간이었음에도 그 공포와 환희는 쉽게 잊혀지지가 않는다.. 
두번째는 역시 촛불집회때의 충격이다. 뭐 월드컵도 있었고, 사람이 많다거나, 그 결집에 대해서 딱히 감동을 느꼈다거나 하는건 아니다. 광우병 이슈에 대해서 그닥 공감한것도 아니고, 나는 그저 거기서 인간의 여러가지 모습을 보려했을 뿐이니까 말이지. 나름대로 전경과 대치선상에서 비폭력을 외치며 대열을 짜고 몸싸움을 막는 역할도 해보았지만 내가 할수 있었던건 엄한데 끼어있다 버스밑에 깔릴뻔한 수준의 에피소드들의 나열밖에 없었던 느낌이다. 그런데도 왠지 그날을 떠올리면 시원한 느낌이 먼저 떠오른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내가 최근 광화문을 지나면서 촛불을 떠올리는건 너무나 당연스럽게 꺼져버린 촛불들에 대한 아쉬움이나 연민같은 감정은 아니었던것 같다. 아마도 내 젊음이 진행되고 있고, 아마도 진행되어야할 서울이라는.. 3년이 지났음에도 낯선 동네에서 느끼는 갑갑함을 조금이라도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하고 싶어서가 아닐까 싶은 기분이 갑자기 든다.
 뭐 어쨌거나 내가 알고있는 도로중에선 가장 넓은 대로이고 도로원표상으로 서울특별시의 중심, 전국국도의 시작점이자 종착점인데다 경복궁부터 청계천광장, 세종문화회관, 덕수궁, 시립미술관, 교보문고, 언론사(음..언론사?)들이 줄줄이 모인 문화의 중심인데도(혹은 이어야하는데도) 여기 대해 내가 느끼고, 부여할수있는 장소감이란건 왜 이모양일까.

역시 나는 서울과, 혹은 대한민국과, 그리고 이 답답한 구조를 해체하고 새로운 구조를 만드는데 별 관심이 없는 대한민국 사람들과 쉽게 친해지기는 힘들 모양이다. 그렇다면 그저 이 감정이 단순히 젊은날의 치기와 힘들었던 기억으로 끝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군 입대 날짜가 확정되었다. 2009년 2월 2일, 논산훈련소다.
by Goldmund | 2008/12/28 08:29 | 트랙백 | 덧글(2)
잘못되어간다는것은, 언제까지나 잘못되었음을 뜻하는것은 아니다
6월 26일 100분 토론 관련 실시간 포스팅(새벽 1시부터 기록)

오늘의 백분토론은
겉으로 보면 사실 최근 토론들 중엔 가장 수준있는 토론이었다.
보수쪽 막장도도 여느때보다 덜했고, 진보쪽도 나쁜 패널 하나 없었던 모습.
다만 사안이 사안인만큼, 논제에 어울리는 토론이었다기엔 아쉬운 부분이 많았다.
뭐 어쩔수 없을지는 몰라도, 최근의 주제가 이렇듯 촛불정국에 한정되고 마는것에는 조금은 지칠수밖에..

확실히 걱정스런 부분은, 포탈사이트의 독점적인 뉴스편집자의 위치이다. 분명 아직 포탈사이트의 지배력은 오프라인에 그것에 비할바 못되며, 상업적인 부분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이미 상당한 힘인 상태. 이제까지는 '포털' 이라는 성격상 소위 우익포털로 분류되는 NAVER조차도 분명 진보진영의 세를 불리는데에 실보다는 득이 많았다. 다만 정식언론사의 기능을 하지 못하는 포털사이트의 힘이 커져가는것은, 장기적으로 언론 지배의 가능성을 높이는 것임은 분명하다. 여기대해서 어떤 식으로 논의를 해야하는가.. 하는 점은 인터넷 실명제 논의보다 분명 훨씬 중요한 부분이다.

사실 보수진영쪽에서도 쓰잘데기 없는 배후론이나 퍼뜨릴시간에 포털 뉴스의 방향성을 통제할 방법에 대해서 논의하는게 생산적일텐데, 이쪽으론 확실히 역량이 부족한 모양이다. (다행이 아닐수 없다;;;)

확실히 인터넷은 도구에 불과하다. 개인적으로 아고라가 '토론의 성지'로 불릴만큼 역할을 하고 있는가에 대해선 상당히 비판적이었지만, 이것 역시 어쩔수 없는 과정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터넷은 잘못된 정보의 전파속도를 빨리 하는것 못지않게, 잘못된 정보에 대한 정정 역시 신속하게 이뤄질수 있다.  예를 들자면 1989년의 우지파동의 잘못된 정보는 지금까지도 영향을 끼치고 있지만, 2004년의 쓰레기만두파동은 그보다 신속하게 정상화되는 모습을 보였다. 먹거리에 대한 두려움은 언제나 존재하고, 그것은 인터넷이 없었더라도(PD수첩 보도는 필요했겠지만) 입소문을 통해 전파되었을 것이다. 지금까지 광우병에 대한 괴소문들은 분명히 있었다. 돈까스를 먹고 광우병에 걸릴까 두려워하는 누군가로부터 촛불이 시작되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모든 것은 시간을 필요로 한다. 옳은 것은 (언제나는 아닐지 몰라도) 언젠가는 옳다고 인정받는다. 기술의 발전이란 항상 그것을 위해 이뤄져왔다. 물론 활용을 하는것은 어디까지나 '인간' 이었지만..

지금 스피커에서는 라디오헤드의 Creep이 흘러나온다. 라디오헤드는 10년동안 이곡을 라이브로 연주하지 못했다. 그들이 10년만에 라이브콘서트에서 이곡을 연주할때, 모두는 이곡을 따라불렀다. 모든일에는 시간이 필요한 법이다. 젊은이에게 있어서는 적어도 정체보다는 퇴보가 낫다. 퇴보는 재생의 가능성을 만들지만, 정체는 아무것도 변하지 않음을 말하기 때문이다.

촛불은 잘못되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잘못되어가는것이 언제나 지속되지는 않는다. 멈출때가 오면 그것은 멈출수밖에 없다. 그러나 더 큰 잘못 앞에서 촛불은 다시 타오를수 있다. 그것이 이번 촛불이 가진 궁극의 의미가 되겠지..

p.s 제목은, 그래도 엄청 길게 남은 임기를 남은 그분께도 해당되는 얘기다. (사실 기대는 크지않지만)

p.s2 그나저나 블로그의 촛불을 어떻게해야 될지 모르겠다. 이제 내려야할까, 아니면 언젠가의 날을 위해 계속 켜둬야할까?
by Goldmund | 2008/06/27 03:11 | 트랙백 | 덧글(4)
깔건 까고 넘어가자는게 결벽증? 까고있네
결벽증적이라느니, 잘난척 글어렵게 쓴다느니 하는 공격을 보거나 당하면서 화가 나서 끄적인다.

지적받을부분은 지적받아야한다. 이거야말로 이명박이 안되는 '소통' 이다.
테제는 안티테제 없이 발전하지 못한다. 완벽한 테제는 인간으로부터 나올수 없다.

주말, 집에 내려가는 버스안에서 읽은 한겨레 21은 유난히 불편했다. 모두가 시위2.0의 새로운 형태와 가능성에 주목할 뿐이었다.

누군가가 이명박을 뽑았고 안뽑고가 문제가 아니다.
이명박 안뽑은게 잘한 일이긴 하지만 동네방네 자랑하고 다니면서 변명할 거리는 못된다.
한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으로써, 적어도 공동책임이라는 역사의식정도는 있어야된다.

대선때 투표안한(투표못한 일부는 제외하고) 사람들은 말할것도 없거니와, 이명박 당선을 위해 전력을 다했다고 믿는 사람들역시  예외는 될수 없다.

그토록 노무현을 욕하면서 유사 노무현, 엄청나게 다운그레이드된 2MB를 대통령으로 뽑은 시대정신. 그 정신의 영향을 받고 있는 이상, 그 누구라도 연대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촛불이 그 책임감으로 이루어진 저항이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정녕 그러한가?
위법이냐, 합헌이냐. 폭력이냐 비폭력이냐 하는것만 중요한게 아니다.
촛불문화제(촛불시위)는 더욱더 즐거워야하지만, 동시에 더욱더 순결해야한다.

많은이들이 책임이 자신에게 있음을 묻어둔다. 인간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데 완고한 동물이다. 그많던 이명박의 지지자들은 다 어디에 있는가. 그를 찍은 사람이건 안찍은 사람이건 반성은 하고 나오는걸까?   아니 그보다 중요한게, 촛불시위에 나오지 않은 절대다수의 국민들은 정말 반성은 하고 있는걸까?

미물을 자신들의 대장으로 만들어버린 괴물들이 있다. 그런채로 어떤 괴물들은 사냥감을 찾고 있다. 반대여론은 알바이고, 프락치로 의심받는다. 광우병 위협이 다분히 과장되었다는 상식은 조중동식 찌라시로 격하되고, 경찰력은 한국 최고의 부패, 폭력집단처럼 보인다. 분명 대통령은 이성적인 정책비판보다는 다분히 감정적인 퇴진압력을 받고 있으며, 이는 청와대측의 감정적인 반응으로 이어지고 있다. 2MB는 충분히 자격미달인 국가수반이지만, 결정적으로 헌정질서를 어지럽힌 바는 없다.

반대로 아고라는 정녕 토론의 성지이며, PD수첩이나 백분토론, 조율의 손석희는 실제로 언제나 공정한가?
일련의 비생산적이고 소모적인 소고기 논쟁에서, 앞서는 것은 논리가 아니라 머릿수이어 왔다. 아고라는 그 상징이다. 종이 울리면 침을 흘린다는 파블로프의 개들처럼, 글은 읽지도 않고 하루 수백개씩 추천을 누르고 있는 사람들은 자신이 이명박을 뽑지 않았으므로, 자신에겐 잘못이 없다고 믿는것 같다. 이명박을 대통령으로 선출한건, 근거없는 숫자의 논리였다. 그리고 아고라를 지배하는건, 나아가 광화문의 다수에게 퍼져있는건 자기가 믿고싶은것만 믿고, 배우고싶은것만 배우는 숫자의 논리다.

대의민주주의가 단순한 숫자의 논리로 전락하는것을 우리는 '중우정치' 라고 부른다. 민주주의의 반대말은 '독재' 가 아니다. 지금이야말로 모두가 반성하고, 대의민주주의의 발전방향을 논의해야할 때다. 비례대표 할당량 증가건, 중.대 선거구 제도이건.. 목소리를 높여야한다. 어떤 곳이건 정당인이 되는것도 좋은 방법이다.

다시 생각해보자.
고대 그리스의 아고라는 정녕 직접민주주의의 꽃이었던가?
대한민국에 진짜 토론은 존재하고 있는가? 

불편하다. 물론 인간은 자기 자신을 소중히 여길줄 알아야한다. 그러나 역사의식이란건 가끔 개인에게 자해를 요구한다. 우리는 이명박이 던진 질문들을 소화하지 못하고 불편해 하고 있다. 손가락 끝을 바늘로 찌르자. 새빨간 피가 나옴을 확인하자.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몇년후에 또다른 이명박을 보게 될 것이다.


※ 물론 치열한 자기반성으로 촛불시위에 나가시는 당신에게는 이 글이 불편하지 않으리라고 믿겠습니다. 아무쪼록 저를 채찍질해주소서.
by Goldmund | 2008/06/12 04:10 | 트랙백 | 덧글(8)
시위 참가 후기- 중요한건 불법과 폭력이란 사실이 아니라 그 정당성과 역사의식에 관한것
20대의 역사의식 - 연장되면 10대 역시 같은 비판을 면키 어렵겠지- 에 대한 불만들을 들으면 솔직히 어이가 없다.
이건 노력을 하고 안하고의 문제가 아니라, 교육받을 환경이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 나같은 특수케이스 역시 결국 5월의 광주와 같은 사건들에 대해 어떤 인상을 받게 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경우가 많다. 이건 독서량의 문제가 아니라 가르치는 방식의 문제이고, 가르치는 사람의 역사의식의 문제이다. 

적어도 내가 어제본 시위에서 20대의 대부분은 축제중이었다. 유리병을 던지는건 술취한 386들이었고..
하지만 모두가 그랬던 것은 아니었다. 전경과 시민은 그 존재 자체로 상대를 적대할수 밖에 없는 것으로 보였다.

어떤이들은 닭장차에 불을 놓았고, 그때마다 소화기는 시민들의 얼굴을 공격했다.
어떤이들은 길을 가로막은 버스를 끌어당겼고, 버스를 대신한것은 빽빽한 전경의 인간방패였다.
어떤이들은 귀가를 원했으나, 전경들은 청와대방향 통로를 모두 막아버린채 길을 열지 않았다.
어떤이들은 대화를 원했으나, 대화를 대신한것은 나의 앞에 서있던 버스의 마구잡이 후진이었다.

비폭력을 외치는 나의 언어와, 비폭력으로 저항하는 나의 몸은 한없이 무력했다.
어딘가의 누구에게서 맞은것인지 전경 하나가 화를 내며 나를 때렸다. 나는 그에게 저항하지 않았다. 그는 하사관에게 뺨을 맞고 뒤쪽으로 사라져갔다..괜스레 적의를 내보인것까지 미안해졌다. 아니면 내가 아직 너무 약한걸까..

전경의 압도적인 전력상 우위는 한번도 작전 실패를 보이지 않았다. 그것은 아름다울 정도였다. 살아남기위해 도망치는 나야말로 적전분열의 원흉이었을까? 이런저런 생각속에서 이미 전경들은 敵이 되어있었다. 어쨌거나 새벽 4시경 상황은 종료되고 차들은 아무렇지않게 지나다녔다. 그것 역시 참 아름다웠다.


논의의 대상은 아무렇지않게 저질러지는 불법이 아니라, 아무렇지 않게 불법을 저지르는 모든자들의 역사인식이 되어야한다. 나 자신의 역사인식이 되어야하며, 싸워야할 누군가의 역사인식이 되어야 하는것이다. 시민들의 적의가 장관 경질이나 강경진압으로 누그러질 것이라고 생각하는 누군가에게, 착각에 대해 심판할 필요는 지금 이순간에도 존재하고 있다.
by Goldmund | 2008/06/02 16:28 | 트랙백 | 덧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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